국가유공자 ‘손과 발’이 되다...‘보훈섬김이’ 김정희 씨
국가유공자 ‘손과 발’이 되다...‘보훈섬김이’ 김정희 씨
  • 조광식 기자
  • 승인 2019.04.08 09: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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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처럼 모시고... 딸처럼 생각한다
‘보훈섬김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직
김정희씨가 국가유공자를 위해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있다
김정희씨가 국가유공자를 위해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있다. 조광식 기자

국가보훈처는 2007년 8월부터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국가유공자 재가복지서비스 대상자들에게 건강하고 명예롭게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맞춤형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동보훈복지서비스인 보비스(BOVIS · Bohun Visiting Service)는 65세 이상 고령 국가유공자에게 직접 찾아가서 도와드리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크게 보훈재가복지서비스, 노인생활지원용품지급, 후원연계지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보훈재가복지서비스인 ‘보훈섬김이’이다.

국가유공자 김해수 어르신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보훈섬김이' 최고!
국가유공자 김해수 어르신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보훈섬김이' 최고라 말하고 있다. 조광식 기자

안동보훈지청 ‘보훈섬김이’ 김정희씨, 봉사를 ‘봉사’라고 느껴 본 적이 없다

‘희생을 사랑으로’ 라는 보비스의 슬로건을 그대로 구현하는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이 있다. 오늘 소개할 김정희씨는 안동보훈지청 의성지역 ‘보훈섬김이’ 담당자로서 5년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하루 8시간씩 세 분의 유공자를 찾아 손과 발이 된다. 국가유공자 할아버지들의 가사활동 및 생활상담, 말벗, 병원, 은행 동행 등 보훈어르신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말씀드리기가 좀 쑥스럽습니다“라고 하면서 ”저는 원래 어르신들을 좋아하고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며 남을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어 익숙하다“고 했다. 그녀는 “보훈섬김이를 하기 전에 청소년센터에서 잠시 근무 했는데, 그 때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고 이것이 내가 찾던 직업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선천적으로 어르신들을 도와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음식을 만들 때면 어르신들이 부모님처럼 느껴져 “김치 담그거나 국을 끓이면 어른들 생각이 나서 조금 더 요리를 만들어서 갖다 드리는 일이 일상생활화 되었다”고 전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2017년 경북북부보훈지청장으로부터 재가복지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고 표창장도 받았다.

2017년 김정희씨가 모범 섬김이로 경북북부보훈지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2017년 김정희씨가 모범 섬김이로 경북북부보훈지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조광식 기자

휴무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초월정사’라는 안동 옹천에 있는 절에 가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며 불자로서 보시를 하고 있다. 이밖에도 고운사요양원, 의성 요양원 등을 방문하여 어르신 손톱을 깎아드리고, 운동도 시키고, 박수치며 노래도 함께 부르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 그녀는 “봉사가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지만 평소 하는 것이라서 봉사인지는 모르겠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기자가 보훈섬김이를 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가 언제였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3년 전 억울한 소리를 들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면서 “7남매 자식을 둔 미망인 할머니 집을 방문했는데 마당에서 유선케이블 공사가 한창이었어요, 할머니가 거짓으로 딸에게 “제가 유선방송기사를 소개해 주고 소개비를 받았다고 보훈처에 신고했다”고 했다. 그때 너무 억울하여 며칠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면서 “그 후 진실이 밝혀졌지만 얼토당토 아닌 일로 인해 스트레스 받아서 일주일 동안 몸살이 났다”고 했다. 또 “자식들은 시골에 엄마를 수년간 찾지도 않으면서 섬김이의 명예를 단번에 실추시켜버린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고 했다.

김해수 어르신이 전용자가용인 오트바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해수 어르신이 전용 자가용인 오트바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광식 기자

노래는 내 인생멋진 유공자 김해수어르신

지난 7일 오후 그녀를 따라 의성군 봉양면 문흥리에 사는 국가유공자 김해수(89세)어르신을 만나러 갔다. 나이에 비해 젊고 멋쟁이 할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6․25참전국가유공자인 그는 짧게 깎은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으면서 건강하게 보였다.

한국전쟁 당시 징집 2기로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부산동래보충대를 거쳐 양구 카추샤(KATUSA)부대에 배속되어 2년간 근무를 했다. 제주도 훈련 기간 중 눈병을 앓았던 것이 재발하여 수술을 몇 번 받아도 낫지 않아 의병제대를 했다.

그는  멋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릴 적 종조부한테서 천자문과 명심보감, 사서 등을 배워서 관혼상제와 풍수, 제문, 축문 등에 능하여 지인과 이웃들에게 재능 기부를 하고 있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의성군참전유공자 부회장과 의성김씨종친회 고문, 중부농협휴게실 회장직을 맡아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특히 소형카세트와 노래반주기를 사용하여 손수 노래가사 적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산다고 했다.

김해수 어르신이 노래반주기를 듣고 직접 적어 친구분들께 나누어 주는 노래가사
김해수 어르신이 노래반주기를 듣고 직접 적어 친구분들께 나누어 주는 노래가사. 조광식 기자

취재 중에 가사를 적은 용지를 보이면서 직접 노래 몇 곡을 불러 주기도 했다. 김정희 섬김이는 “참, 멋진 어르신입니다. 참전명예수당을 월 30만원과 의성군에서 10만원, 경북도에서 3만원을 매달 받아서 친구 분들에게 술과 밥을 사드린다”고 했다. 나이 드신 어르신네가 지갑을 여는 것이 쉽지 않는 일이라서 어르신께 돈 씀씀이에 대해 여쭈어봤더니 그는 “욕심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 돈이 없는데 안 써도 욕하고 돈이 있는데도 안 쓰는 사람은 더 욕을 얻어먹는다”고 하면서 “나이 들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사는 동안 친구들과 즐겁게 살다 가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다”라고 했다.

화창한 봄날에 김해수 어르신과 텃밭에 잡초를 뽑는 김정희 섬김이
화창한 봄날에 김해수 어르신과 텃밭에 잡초를 뽑는 김정희 섬김이. 조광식 기자

보훈섬김이의 하루는 길고...보수는 짧은 최저임금에 불과

의성지역 ‘보훈섬김이’는 8명이 활동을 하고 있다. 섬김이 1명당 10여명 정도의 유공자를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한다. 가장 먼 방문거리는 의성읍에서 신평면까지 자동차로 45분 정도 걸리며 하루에 평균 30km 이상 방문한다. 하루하루 케어일지를 작성하여 카톡으로 안동보훈지청 복지사에게 보고를 하며 일주일 분량의 케어일지는 금요일 날 보내고 있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만나 봉사활동을 공유하며 반성하고 개선할 사항 등을 토론한다. 그들에게 국가보훈처에 하고 싶은 말을 청했더니 “봉사하는 사람이 돈 얘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남편의 박봉에 집안일도 미뤄두고 어르신들 뒷바라지를 하는데 기름 값이라도 넉넉하게 나와야 식구들 보기에 덜 미안하다”고 하였다.

또 다른 섬김이는 “섬김이 대부분이 월급이 낮아 생활하는데 부족하다”고 하면서“가정방문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쌀 약 심지어 무거운 세멘트까지 사다드리는 심부름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추석과 설 명절에 상여금조로 40만원을 받는데 하는 일에 비해서 상여금이 너무 적으며 상여금을 기본금 정도는 올려 줘야한다”면서 보수에 대한 불만의 소리를 토로 했다.

국가보훈처는 작년에 보훈섬김이들을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 했지만 보수에 관한 변동은 별로 없으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해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아 정부차원의 논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