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죽음을 기억하자
(9) 죽음을 기억하자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4.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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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국가는 로마제국이다. 로마제국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하여 세계 대제국이 되었다. 여기에는 장군과 군대의 힘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장군에 대한 특별한 예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성대한 개선식을 거행하였다.

개선장군은 말 네 마리가 끄는 전차를 타고 행진한다. 로마 시내를 돌아 최고의 신을 모신 유피테르 신전에 도착한다.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황제나 신과 같은 존재로 부각되었다. 실제로 그들이 집정관이 되고 황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화려한 개선식에 특이한 사항이 있다. 장군 옆에 노예 한 명이 타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친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그리고 개선장군에게 수여되는 관에는 다음 경고 문구들이 적혀 있다.

“Memento mori”(그대는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te hominem esse”(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는 단순히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정도의 의미는 아니다.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교만하거나 우쭐대지 말라는 뜻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영어로는 시저로 부름)는 갈리아를 정벌하고 로마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등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로마시민들로부터 영웅 칭호와 함께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을 받았다.

그런데 스스로 종신 독재관이 되어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원로원을 무력화하고 황제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황제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 결국 브루투스(Brutus)를 비롯한 심복들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그것도 경호원 없이 단독으로 정적이 있는 원로원으로 갔으니 말이다. 교만하자 말라는 메멘토 모리의 경고를 잊은 것일까.

율리우스 카이사르 조각상    프랑스 루부르박물관
율리우스 카이사르 조각상 프랑스 루부르박물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얘기이다. 늑대 한 마리가 들판을 걷다가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사슴처럼 긴 다리와 황소처럼 큰 덩치,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형상이었다. 이 정도면 동물의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자 정도는 별 것 아니라고 자만했다.

그때 마침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났다. 늑대는 우쭐대면서 사자가 도망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늑대는 단숨에 사자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우리는 가끔 정치인이나 운동선수, 연예인 등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잘났다고 교만하게 굴다가 망하는 경우를 본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자만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절제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도 그렇다. 우리나라가 지난날보다 잘 살게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자만하여 노력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후진국으로 밀려날 수 있다. 무사안일, 이기심, 과소비, 배금주의 등의 나쁜 사고와 태도는 버려야 한다. 더욱 절제하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 스스로 낮은 자세를 취하고 겸손하라는 뜻이다.

 

미국의 초대 5성장군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퇴역 후의 일이다. 마을에 홍수가 나서 시냇물이 불어 있었다. 중령 계급장을 단 군인 한 사람이 냇가에 서있던 워싱턴에게 다가왔다. 군화 때문에 내를 건널 수 없으니 좀 업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워싱턴은 흔쾌히 응했다.

업혀가면서 군인이 군대 갔다 왔느냐며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계속해서 묻기 시작했다. “사병이냐?” “위관급이냐?” “소령이냐?” “중령이냐?” “대령이냐?” 워싱턴은 계속 아니고 더 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군인이 미안한지 내려달라고 했다. 워싱턴은 얼마 안 남았으니 다 업어드리겠다고 했다.

군인이 또 물었다. “준장이냐?” “소장이냐?” “중장이냐?” “대장이냐?” 그럴 때마다 아니고 더 위라는 대답이었다. 다 건너와 내린 다음에 군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계급입니까?” “, 저는 5성장군 워싱턴입니다군인이 까무러치게 놀란 것은 당연하였다.

조지 원싱턴                    위키백과
조지 원싱턴 위키백과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항상 낮은 자세를 취하고 더욱 겸손해야 한다. 권위의식이나 과시욕을 버려야 한다.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의 사정과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갑질 행위는 통하지 않는다. 배려하는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말했다. “자기도취적인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극히 주관적인 자기만족의 테두리를 뱅뱅 돌고 만다. 예술가 건, 사업가 건, 정치가 건 자기도취가 심하면 반드시 비참한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거나 서운해 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학이(學而) -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학이(學而) -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능력이 없음을 근심하라.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헌문(憲問) -

 

성경에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이 있다(마태복음 2312). 지위가 높을수록, 재산이 많을수록, 지식이 많을수록 자세를 낮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 및 사회지도자들 중에서 권위의식과 자기도취에 빠져 조직과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 경우가 많다. 그 피해와 고통은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국민을 섬기고 국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다. 형식논리와 권위의식은 우리 사회의 큰 병폐의 하나이다. 이를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셋째,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미국 애플(Apple) 회사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2005612일 스탠포드(Stanford) 대학에서 졸업식 연설을 했다. 그때 그는 만약 당신이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강조했다. 그리고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남의 인생을 사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고 했다.

 

라틴어 중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를 즐겨라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의 시에서 나온 문장이다. 즉 카이사르(Caesar)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팍스 로마나(라틴어: Pax Romana : 로마의 평화)를 구가하면서 사용한 말이다. 그간 고통과 시련을 겪은 로마 시민들이 이제는 마음 편히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라는 의미로 시집에 이렇게 썼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현재를 즐겨라. 미래에 최소한의 기대만 걸면서)”

아우구스투스        위키백과
아우구스투스 위키백과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소설가 솔 벨로(Saul Bellow)는 이를 원용하여 ‘Seize the day(오늘을 잡아라)’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과거는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솔 벨로 위키백과

 

1989년에 개봉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이 말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키팅 선생은 대학 입시와 좋은 직장 등의 미래를 위해 학창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외친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

카르페 디엠의 오늘을 즐겨라는 말은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에 충실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진정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주위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에 등의 이유를 든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 속에서 항상 꿈을 가지고 오늘에 충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유행하는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라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삶은 오직 한번 뿐이다.

여기서 수필가 피천득의 이 순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넷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삶을 성찰하라는 의미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말이 있다. 독일 철학자 니체(Nietzsche)의 책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Amore(사랑)Fate(운명)가 합성된 라틴어이다. 영어로는 Love of Fate로서 운명을 사랑하라(運命愛)’가 된다.

니체는 인간이 다시 산다 해도 생애의 고통과 기쁨,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동일한 순서로 되풀이될 것이니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것이 아모르 파티라고 했다. 자신이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가진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의미이다.

니체 위키백과

 

메멘토 모리는 죽음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삶에 대한 얘기이다. 삶의 유한성과 죽음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삶을 성찰하라는 의미이다. 소크라테스의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