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인생] 경영 맡은 회사마다 정상궤도 ‘미다스의 손’
[나의 일, 나의 인생] 경영 맡은 회사마다 정상궤도 ‘미다스의 손’
  • 권오훈 기자
  • 승인 2023.06.02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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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퇴직 후 3개 회사 CEO로 인생 이모작, 이태준 대표
은행업무 경험 살려 성공적 경영으로 승승장구
노사문화 유공 대통령 표창 수상
이태준 대표는 법정관리에 있던 ㈜세기리텍을 흑자로 돌려놓았다.

우스개 얘기로 직장인은 은퇴하면 6개의 대학에 입학한다고 한다. 가장 좋은 대학이 ‘하바드대학’, ‘하고 싶고 바라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자기 사업을 하거나 중견 이상 기업에 임원으로 초빙받아 활동하는 사람이다. KB 국민은행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 후 연거푸 세 개 회사의 CEO를 맡아 성공적인 경영으로 승승장구하는 ‘하바드대학생’이 있다. 바로 (주)세기리텍 이태준 대표이사(65)다.

◆ 늦은 입행, 지방 출신으로는 파격적인 지역 본부장 승진

이 대표는 군대까지 다녀와 1980년에 고교동기들보다는 5년이나 늦게 국민은행에 입행했다. 젊은 행원 시절 노동조합 대구·경북지부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뛰어난 친화력과 조직 장악력을 발휘했다. 업무능력도 탁월하고 상사들의 신망도 두터워 동기들과의 격차를 따라잡아 비슷한 시기에 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2010년 뛰어난 영업실적과 선후배 직원들의 세평에 힘입어 대구·경북지역본부장으로 승진 발령받았다. 당시로서는 본부부서 근무자가 승진하여 내려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지방인 대구지역에만 근무했던 그가 발탁된 것이다.

 

KB 본부장 시절의 이태준 대표.
KB 본부장 시절의 이태준 대표.

◆ (주)세기리텍에 오게 된 계기는

은행 근무하면서 늦깎이로 학업을 이어가 51세 때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본부장 재직 중에는 한국생산성본부가 주관한 ‘기업회생 전문가’ 과정을 매 주말 서울까지 오르내리며 수강하여 자격증을 획득했다. 본부장 임기가 만료되어 2013년에 퇴직하자 2014년 부실 경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주) 알프스레저산업의 법정관리인(대표이사) 제의를 받았다. 먼저 조직개편을 통해 효율적인 팀제로 바꾸고 팀장에게 권한과 의무를 부여했다. 1년이 지나자 40억이던 매출액이 50억으로 늘었다. 수시 재고 파악에 의한 적절한 자재 구입으로 연간 6천만 원의 자재비도 절감했다. 담당 부장판사를 수차례에 걸쳐 설득한 끝에 직원들의 노고에 합당한 급여 인상을 관철했다. 3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주)가산수피아 대표를 잠시 거쳐 2018년에는 (주)세기리텍의 대표이사를 제안받았다.

 

◆ (주)세기리텍은 어떤 회사인지

회사는 영천시 금호읍 오정기계공단 내에 2010년에 설립한 배터리 재활용 전문회사이다. 원자재의 95%를 수입하고 있으며, 배터리를 분리하여 추출한 납을 제련과 정련 과정을 거쳐 재생 연괴(납덩어리)를 제조한다. 회사는 설립 후 영업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경영난으로 4년째 직원 급여가 동결되었고 부도 직전에 이르러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 은행에서의 경험이 회사 경영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

2018년 8월에 법정관리인(대표이사)을 제안받고 부임했다. 은행에 근무할 때 체득한 나름의 경영노하우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운영방식이 주효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심사할 때 회사를 방문하면 일부러 화장실을 이용하며 청결 상태를 살피고 생산 현장 직원들과 인사도 나누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음식의 질과 직원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런 관찰로 회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회사가 근무 환경에 관심이 적다는 의미이고, 직원들이 외부 손님에게 불퉁스러우면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있고 애사심과 주인의식이 결여된 것으로 판단되죠.”

이 대표는 노사문화 정착에 대한 공으로 작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대표는 노사문화 정착에 대한 공으로 작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법정관리 회사를 어떤 방법으로 살렸나

먼저 경영 목표를 내걸었다. ‘주주가치 극대화’, ‘재해 없는 사업장 구현’, ‘출근하고 싶은 직장 분위기 조성’ 등이다. 안전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첫 출근 다음 날 안전관리 담당자를 찾았다. 세기리텍은 24시간 제련기가 가동한다. 4인 1조 3교대 근무시스템이다. 열흘 말미를 주면서 사고의 개연성이 있는 시설은 모두 바꾸게 했다. 또한 구내식당 식자재 구매비를 증액했다.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와 사기가 높아졌고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기존 기계와 설비인데도 50%를 밑돌던 생산수율이 56%로 높아졌다. 반면 46%던 원자재 구매 비율은 41%로 낮아졌다. 당연히 적자이던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57명의 직원에 연매출 870억, 순이익 50억 원에 이른다. 이 대표는 그렇게 올린 순수익의 상당 부분을 성과급과 특별상여금으로 직원들에게 보상했다. “직원의 사기진작이야말로 확실하고도 최고의 투자지요”라며 강조한다.

◆ 노사문화 정착에 대한 공으로 대통령 표창

지난 12월에 이태준 대표는 고용노동부 주관 ‘2022 노사문화유공 정부포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근로 현장에서 상생 협력의 노사문화 정착과 확산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유공자에게 주는 최고의 상이다. 지역 내 업체 대표로는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코로나 위기에도 고용유지, 2자녀까지 대학 학자금 전액 지급, 초과 이익 성과금 지급, 정시 퇴근, 비정규직 제로 등 좋은 일자리 창출과 노사 상생을 위한 차별 해소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았다.

(주)세기리텍은 경영정상화가 이루어졌고 관련 산업의 호황으로 회사 내재가치도 엄청나게 높아졌다. 이제 역할을 다했으므로 또 다른 곳에서 자신의 노하우와 경영철학을 펼칠 생각이다. 세간에선 경영을 맡은 회사마다 정상궤도에 올려놓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과찬이라 생각한다. 그저 은행에 근무하며 체득한 경험을 살리고 몸에 밴 보편과 상식을 실천한 성과일 뿐, 특별한 기술 같은 건 없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은퇴하는 후배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서 전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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