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밝힌 「객주」 김주영 작가의 삶과 문학
한밤 밝힌 「객주」 김주영 작가의 삶과 문학
  • 전용희기자
  • 승인 2023.06.02 17: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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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인문학 콘서트
한국문학계의 거장이 들려주는 삶과 문학
박목월 때문에 시인 아닌 소설가 되었다고
초등학생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자리를 메워, 김주영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전용희 기자
초등학생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자리를 메워, 김주영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전용희 기자

계절의 여왕 5월의 마지막 날,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금호강변에 있는 안심도서관 시청각 실에서 '5월 한밤의 인문학 콘서트, 김주영 작가의 삶과 문학'이란 제목으로, 김주영 작가의 강연이 있었다. 저녁 7시 반부터 시작한 강연은 밤 9시 가까이 이어졌으며, 백 명 정도 참석했다. 엄마와 같이 온 초등학생부터 머리가 흰 노인까지 전 연령대의 사람들이 골고루 자리를 채웠다.

소설 「객주」의 저자로 유명한 김주영 작가는 올해 만 84세이다.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강연을 통하여 자신이 겪어온 진솔한 삶의 얘기를 들려주며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가끔 약간은 우스갯소리로 참석자들을 웃기기도 하였다.

김주영 작가는 1939년 경북 청송 출생이다.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으며, 1971년 소설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1993년에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은 후, 아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2007년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13년에 제4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을, 2020년에는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하였다.

강연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얘기를 풀어 나갔다. 청송에서 대구로 온 후 대구자연과학고의 전신인 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가출하여 서울 서라벌예술대에 입학한 얘기로 시작하였다. 서라벌 예대 1년 동안 박목월과 김동리 선생 등을 만났다고 전했다. 특히 자신이 시를 써서 박목월 선생에게 평가를 위해 드렸는데 아무런 얘기가 없어, 나중에 찾아가서 알아보니 시인 자질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하였다. 그 연유로 시인이 되는 꿈을 일단 접고, 입대를 하여 고생한 얘기로 이어 나갔다. 제대 후 복학하고 나서 생활이 어려워 가정교사를 하려 했으나 구할 수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군대에서 소설 쓰기를 시작하였으며, 복학 후 김동리 선생 덕분에 장학생으로 학비를 해결하고 졸업하였다고 털어놓았다.

소설 객주를 1979년 서울 신문사에 연재할 때 작은 평수 아파트에 살면서 담배를 많이 피워서 폐가 안 좋아져 병원에 갔던 일화도 소개하였다. 단어 하나 찾는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였으며, 많은 경우 하루에 담배 3갑을 피웠다고 했다. 아파트 안에 꽉 찬 담배 연기를 마시는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문을 열면 연기가 빠져나가고, 멀리 한강을 바라보며 울었던 소회를 털어놓기도 하였다.

방송국 리포터로 일하며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코바까지 러시아 거주 한민족을 취재하기 위해 40여 일 걸린 이야기로 이어 나갔다. 당시에는 책보다 이런 여행에서 삶에 대하여 더 많이 배우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모스코바 시내에 있는 스탈린 레닌 동상 앞에는 꽃이 없었는데, 생화가 놓여 있는 초라한 동상이 나중에 알고 보니 푸시킨의 동상이라는 것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집 뜰에서 직접 키운 생화를 푸시킨 동상 앞에 가져다 두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가 쓴 시 때문이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대부분 외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시를 직접 낭송하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은 반드시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항상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니

지나간 것은 훗날 그리움이 되리니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김주영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전용희 기자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김주영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전용희 기자

김주영 작가는 이 시가 말하는 것은 “인생의 고난에 고개 숙이지 말라”는 것이라 간단명료하게 해석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때 문학이 위로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시간을 뒤로 돌려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었다. 청송의 첩첩산중 외딴 마을에서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도 그런 가난이 없이 자랐다고 하였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도시락 한 번 못 싸고 다녔을 뿐 아니라, 집에 오면 물밖에 먹을 것이 없다 하였다. 바깥에 나가 진달래도 따먹고, 무도 캐먹고 하다가 밭주인한테 혼난 얘기도 들려주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엔 엄마가 혹시나 도망갈까 봐 걱정되어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엄마가 하신 말씀, “네가 나를 속상하게 하면 도망간다”는 말이 항상 뇌리에 박혀 학교에서도 항상 엄마 생각뿐이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 번은 수업이 끝나기 전에 집에 가서 엄마의 존재를 확인까지 하는 일도 있다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초등학교 시절에 구구단을 외울 수 있었겠냐는 말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객주 문학관 개관식에서 그 사실을 누군가가 공공연하게 말했다는 말에 한 번 더 웃음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른들이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도 곁들였다. 어린 시절의 얘기를 들려주시는 작가는 팔순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어린이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이 소설가가 된 것은 가슴에 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끝 부분에서 밝혔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쓰고 나서 만족하는 책”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의 신작 「아무도 모르는 기적」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얘기인데, 여든에 이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활기찬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0쪽으로 소설의 분량치고는 작은 이 소설이 30만부가 팔려나갔다는 말씀도 하였다.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가치를 돌이켜보게 하는 ‘호랑이보다 비정한 어른들에게 버림받은 소년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의 진실’에 독자들은 여전히 열광하고 있다는 증표가 아닐까 싶다.

강연이 끝나고 “왜 작가가 되려하였나?”란 청중의 질문에, “작가는 면허증이 없다. 평생 공부해야 한다. 단어 하나 때문에 밤새운 적도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작가의 자세를 전해주었다.

작품속의 그의 모든 글은 작가의 자서전이자 자신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고자 한 작가의 지나온 길을 아는 좋은 기회였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투철한 작가관을 바탕으로, 오늘도 쉬지 않고 길을 가는 작가 김주영의 앞날에 건강과 무궁한 은총을 기원한다.

그의 작품연보는 아래와 같다.

1971. 10. 소설 <휴면기(休眠期)> 발표‧등단

1982. 03. 장편소설 <객주(客主)> 전9권

1992. 03. 장편소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

1998. 02. 장편소설 <홍어>

2000. 07. 장편소설 <아라리 난장>

2002. 02. 장편소설 <멸치>

2003. 02. 장편소설 <겨울 속 여행>

2007. 09. 그림소설 <똥친 막대기>

2009. 05. 장편수필집 <달나라 도둑>

2010. 05. 장편소설 <빈집>

2012. 05. 장편소설 <잘가요 엄마>

2013. 05. 소설그림집 <엄마를 읽다>

2013. 09. 장편소설 <객주(客主)> 10권(개정판)

2017. 04. 장편소설 <뜻밖의 生>

2021. 05. 장편소설 <광덕산 딱새 죽이기>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을 중심으로 민중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 객주문학관은 한국 역사 소설의 지평을 넓힌 이 소설을 테마로 폐교된 진보 제일고 건물을 증·개축하여 문을 열었다. 3층 건물로 「객주」를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담은 전시관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 객주, 영상 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연수 시설 그리고 작가 김주영의 집필실인 여송헌(與松軒)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을 내어 한 번 방문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