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입구에서
인생 2막 입구에서
  • 전용희
  • 승인 2023.05.30 15: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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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예외가 있지만, 나이가 들어 퇴직이라는 시기를 누구나 마주하게 된다. 좋든 싫든 그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야 한다. 그 시점은 인생의 제1막을 마무리하고, 제2막을 여는 어떤 시간의 경계점이다. 제1막을 잘 마무리하고, 제2막을 열 준비를 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그 후에는 소위 인생 제2막을 살아야 한다. 펼쳐질 2막의 인생을 어떻게 꾸며 나갈지 생각해 보는 시기이다.

소위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제2막을 여는 시점은 과연 어느 시점에 해당할까? 2015년 UN이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 연령 분류의 표준에 새로운 규정을 발표한 것이 있다. 사람의 평생 연령을 아래와 같이 다섯 단계로 나누어 발표하였다. 0~17세(미성년자), 18~65세(청년), 66~79세(중년), 80~99세(노년), 100세 이후(장수 노인). 이 분류에 의하면 퇴직하는 시점이 이르면 청년, 아니면 보통 중년에 포함되는 나이에 해당할 것이다.

인생 백 년을 사계절에 비유하기도 한다. 25세까지가 ‘봄’, 50세까지가 ‘여름’, 75세까지가 ‘가을’, 100세까지가 ‘겨울’이라는 것이다. 호서대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강석규 박사가 95세 되던 해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글을 하나 썼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중략) 내 65세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그가 은퇴 후, 95세가 되던 해까지 허송했던 30년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은 것이다. 만일 퇴직했을 때, 3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회한의 이야기로 보인다. 그래서 95세에 “어학 공부를 시작하련다. 105세 생일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향년 10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00세를 넘기고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형석 교수도 '백 년을 살아보니' 강연에서 자기 인생의 전성기가 60세에서 75세였다고 한 바 있다.

후회 없는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기 위해 ‘100세 시대 인생 전략’이 필요하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수면 및 식사와 같은 기본 13시간을 제하고 나면, 최대 11시간의 여가가 있다. 65세에 퇴직한다고 가정하여 85세가 될 때까지, 20년으로 계산하면 약 8만 시간의 계산이 나온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쓴 ‘아웃라이어(Outliers)’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그러면 이론상으로 그 8만 시간은 1만 시간의 8배가 되는 셈이다. 8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이다. 주 52시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30년의 근무기간에 해당하는 앞날의 여가가 남아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이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무얼 하며 보낼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버킷 리스트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아래와 비슷하게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이다.

· 여행 및 관광: 국내 및 해외여행, 국내외 한 달 살기 체험, 문화유적 방문

· 취미: 악기연주, 노래 배우기, 요리, 어학공부

· 문화예술: 글쓰기, 사진촬영, 서예, 공연(대중음악, 클래식, 뮤지컬) 보기, 영화감상

· 스포츠: 헬스, 자전거, 당구, 탁구, 요가와 명상, 걷기, 댄스스포츠

· 휴식: 독서, 음악 감상, 산책, 사우나

· 사회 및 기타 활동: 사회봉사활동, 가족 및 친지방문, 친구모임/동창회/사교/파티/동호회모임 

위와 같은 버킷리스트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여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어떨까. 연령과 체력에 따라서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들을 잘 정리하여 계획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인생 2막 입구에 설 때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한 번쯤 생각해 보아도 될 나이라 생각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고도 했다. 인간에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죽음의 순간에 후회 없는 생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기자의 첫 직장 교육에서 들었던 셰익스피어가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을 점차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지향하려 한다.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효과라는 말도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연구에서도 헬퍼스 하이 효과가 증명되었다. 우리가 나눔을 실천하면 할수록, 뇌에서는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고, 기쁨을 느끼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행복이 커지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한다. 선행의 치유력, 장수의 비결이기도 하다.

초고령 시대를 헤쳐 나가는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맹활약 중이다. 얼마 전 일본의 연간 베스트셀러 1위는 95세 여성작가 사토 아이코가 쓴 「90세, 뭐가 경사라고」가 차지했다고 한다. 100세 전후 할머니들의 저서가 일본식 영어로 ‘아라한(around hundred) 책’이라 불리며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시간은 연속적으로 흘러간다. 시간은 절대로 뒤로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만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현재는 곧 과거가 되고, 미래의 순간은 바로 현재로 다가온다. 인생 제2막의 입구에 서서, 지나온 삶을 잠시 뒤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보람된 삶이 될지 스스로 길을 물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자신의 현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