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필] 자운영 필 무렵
[기자 수필] 자운영 필 무렵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3.05.25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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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둑방길은 자주 찾는 곳이다. 비탈에 흔들리는 자운영이 아름답다. 불현듯 형산강 둘레길 그 강가가 머리를 스친다.

아들 직장이 경주에 있었다. 그 옆에는 형산강이 아름다웠다. 어쩌다가 며칠을 지내고 올 때에는 아들과 그곳으로 산책을 갔다. 노을이 질 무렵, 혼자 강가를 찾았다. 낚시꾼들이 꽤 많았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제비새끼마냥 재잘거렸다. 길옆에 세워 둔 자전거도 풍경이 되었다. 풀섶마다 자운영이 지천으로 예뻤다.

아들 퇴근시간이 임박하여 돌아오는 길이었다. 낚시가방을 둘러맨 중년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가물거릴 뿐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사람도 걸음을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들은 벌써 퇴근을 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 남자를 어디에서 봤는지 알 길이 없었다.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걸 보면 기분 좋게 만난 사람인 듯했다.

저녁상을 물린 아들은 피곤했던지 깊은 잠에 빠졌다. 강가를 다시 찾았다. 가로등 불빛이 강물 속에서 졸고 있었다. 저 멀리 기차가 밤의 적막을 깨고 지나갔다. 벌써 가지 않았을 터이다. 낚시꾼들 속에서 그 사람을 찾았다. 첫사랑을 만난 듯 가슴이 주책없이 뛰었다. 어둠 속의 뒷모습이 그 사람인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저기 말씀 좀 물어볼게요."

고개를 돌리는데 그 남자였다.

"혹시 어디에서 저 본 적 없나요."

그는 단박에

"시민 경찰 하셨지요?"

그랬었다. 그는 경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도중에 활동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서로 반갑게 악수를 했다. 남자는 가방을 열더니 캔맥주를 꺼냈다. 어둠 속에서 낚싯대가 흔들렸다. 입질한 물고기는 월척이었다. 강바람이 불었다. 어스름 숲속의 자운영도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낙동강에 해넘이가 시작된다. 가던 길을 되돌아온다. 지금도 형산강 그곳에는 자운영이 한창이리라. 밤 기차가 강을 지르고, 강물 속에 달빛이 숨을 고르는 그 강가에 가고 싶다. 월척을 잡았다고 좋아하던 그 사람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