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경건강대학, 시니어들이 진주성과 진양호로 추억만들기 여행
운경건강대학, 시니어들이 진주성과 진양호로 추억만들기 여행
  • 염해일 기자
  • 승인 2023.05.23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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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안에서 기념촬영 염해일 기자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부설 운경건강대학(학장 황영진)은 19일(금)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진주성과 진양호로 추억만들기 여행을 했다.

진주성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둘레 1.7km의 석성이다. 고려시대 말기인 1377년 빈번한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흙으로 쌓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379년(고려 우왕 5)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돌로 쌓는 도중 왜구의 침입이 있었다. 왜구가 퇴각한 후에 성곽 축조를 완성하였다.

1591년 7월 경상도 관찰사 김 수가 일본의 침공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수축하고, 취약한 동쪽 부분을 확장하여 쌓았다. 동쪽 부분은 지반이 약하여 결과적으로 임진왜란 중에 방어에 지장을 초래하였다.

외성까지 포함하면 훨씬 큰 성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도시개발과정에서 외성들이 헐려 현재의 내성만 남아 있다. 외성은 몇 차례 증, 개축하다가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에 크게 증축되었다. 당시 조선도 나름대로 일본의 침공을 예상하고, 전쟁에 대비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1725년(영조 1) 목사 안극효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중수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에 재건하였다.

진주성에는 촉석루, 의기사, 임진 대첩 계사순위란, 공북문, 영남 포정사, 진주서 비석 군, 청계서원, 경절사, 북장대, 국립진주박물관, 창열사, 호국사, 서장대, 의암 등 진주시의 많은 문화유적이 경내에 흩어져있다.

촉석루는 남강의 바위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어 영남 제일의 이름다운 누각이다. 1241년(고종 28)에 창건하여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 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다.

진주성의 동문인 촉석문은 진주성을 찾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관문으로 1972년 복원되었다. 이 문을 지나면 바로 진주성의 명소 촉석루에 도착하기 때문에 촉석문이라 부르고 있다.

공북문은 도청 격인 관찰사영과 경상도 우병영이 있던 곳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란 의미를 가진 문이다.

의암은 진주성 촉석루 아래 남강변 강가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는 가로 3.65m, 세로 3.3m의 윗면이 평평한 모양의 바위이다. 1593년 6월 29일,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논개는 성을 점령한 일본군이 승리의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일본군 장수를 의 암으로 유인한 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의기사(義妓祠)는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다.

진양호 전망대에서 진양호를 내려다보면서. 염해일 기자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의 인공호수로 유역면적 2,285㎢, 저수량 1억 3,600만 톤으로 7년 6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70년에 준공되었다.

저수량 3억 1,000만 톤 규모의 댐 보강공사가 1999년 10월에 완공되었다. 기타 부대시설을 포함한 전체 보강 사업 준공도 2000년 12월 완공되었다. 연간발전량은 4,000만kW에서 4,130만kW로 늘어났다.

홍수조절과 주변 일대의 상수도, 관개용수, 공업용수 등으로 이용되면서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진주시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주변에는 물 홍보 전시관, 선착장을 비롯하여 전망대, 동물원, 어린이 동산, 호텔, 여관, 식당 등 위락시설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