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의 벽, 마음의 벽
실체의 벽, 마음의 벽
  • 이화진 기자
  • 승인 2019.04.0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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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은 오직 마음에 의해서
달빛 동맹으로 마음의 벽이 얼마나 허물어졌을까?

유행이나 취향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이십여 년 전 대구 서구청에서 시작한 ‘담장 허물기 운동’이 그 효과를 발휘한 걸까? 시내는 물론 전국 어디를 가든 건물 담장이 거의 없거나 낮다. 관공서, 학교, 아파트단지, 빌딩을 보면 그런 곳이 대부분이다.

‘담장 허물기 운동’은 시민 휴식을 위한 녹색 공간을 확보하고 이웃 간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였다. 지역 정치인이나 구청의 공무원 중 어느 쪽에서 먼저 제안했는지 모르지만 시민 화합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발상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운동 전에 비해 지금 시민들은 이웃 간 마음의 문을 얼마나 열었을까. 잴 수 없는 마음의 벽이지만 헐리거나 낮아지지 않았다면 이 운동은 당초의 취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게 아닐까.

 칠팔십 년대만 해도 대도시에서는 담이 높은 집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런 담 위에 가시철조망이 쳐있는 가옥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고대광실 같은 기와집 담장 위에 철로 된 가시뭉치를 둔 사람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얼마나 많은 현금이나 귀금속을 지니고 있기에 철의 장막을 저리도록 두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담장 허물기 사업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가시뭉치가 거의 사라진 듯하다.

 ‘실체의 벽’과 ‘마음의 벽’을 두고 몇 가지 생각을 떠 올려본다. 도시에는 담장 없는 아파트에 살지만 대화 없이 지내는 이웃이 그 얼마인가. 기껏해야 승강기를 오르내리며 인사를 나눌 정도다. 옆 라인의 이웃과 말문을 닫고 지내는 이들이 그 얼마인가. 그와 달리 시골에서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도 이웃사촌의 정을 피부로 느끼며 지내는 이들이 많다. 경조사를 치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실체의 벽이 있든 없든 그것이 마음의 문을 여닫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아파트 생활에서 보듯이 실체의 벽이 없다고 마음의 벽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음의 벽 없이 잘 지내는 시골 이웃끼리라면 담장이 있든 없든 문제 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음의 벽을 없애는 것은 오로지 마음에 의해서가 아닐까. 일체유심조라 하지 않았던가.

 몇 년 전 대구와 광주가 맺은 ‘달빛 동맹’도 두 지역(달구벌, 빛고을) 간에 놓여 있는 불신의 벽을 걷어내어 하나 되자는 취지였다. 최근 두 광역시는 지역의 봉사단체를 서로 초대하여 조그마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화합을 다짐하는 행사를 가졌다. 동맹을 맺은 지 수년이 지난 지금 두 지역 시민들 간 마음의 벽이 얼마나 헐어 졌을까

 한국 사회엔 서로 간 마음의 벽을 쌓고 있는 지역, 집단, 계층이 많다. 중앙과 지방간, 영호남 간, 도시와 농어촌 간, 청치인과 국민 간, 여야 간, 진보와 보수간, 빈부 간, 노소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두꺼운 벽이 가리어져 있다. 이 외에도 이해관계나 목표를 달리하는 여러 단체나 계층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드리워져 있다.

 여러 집단이나 계층 간 마음의 벽이 생기게 된 건 무엇 때문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주로 ‘불신’ ‘사고나 견해의 다름’ ‘갑질’ ‘차별’ ‘미움’, 시기심 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높은 마음의 벽은 비리를 저질렀거나 법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을 향한 ‘불신의 벽’일 것이다. 거짓말, 부도덕한 행위, 잦은 말 바꾸기, 내로남불 등으로 불신이 드리워진다.

 총선이나 대선이 가까워지면 ‘말의 성찬(盛饌)’이 차려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다. 어떤 후보들은 표를 의식, 일부 계층이나 집단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사탕발림 공약이나 구호를 서슴없이 던진다. 표를 모우기 위해서라면 양심이나 상식을 저버리며 구걸하는 을의 추태를 보이는 선심성 공약이다. 그런 후보일수록 당선 후엔 국민이나 유권자들에게 갑이 되어 마음의 벽을 쌓으려 할 것이다.

 군부정권 시절에 비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의식이 크게 향상되었다. 해를 거듭함에 따라 정치인의 ‘마음의 벽’이 낮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인들을 향한 ‘불신의 벽’은 국민이 만족할 정도로 해소되지 않는 것 같다.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자주 가져 ‘마음의 벽’을 없애거나 낮춰야 할 것이다. 국민 눈높이를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후보일수록 당선 후 마음의 벽을 없애거나 낮추려하기보다 실체의 벽을 없애려 할 것이다. 마음의 벽을 헐지 못한 채 실체의 벽을 아무리 없앤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