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형제 출가시켜 불국정토 구현하는 용남사 혜안 스님
다섯 형제 출가시켜 불국정토 구현하는 용남사 혜안 스님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3.04.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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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에 승가 입적, 동생 5명도 출가
불교대학 설립, 월 4회 불국정토 강의
대구 개구리 소년 위령탑 건립에 기여

 

혜안 스님이 법회를 주관하고 있다.  <유무근 기자>

 

용남사 혜안스님은 6형제가 모두 불제자 스님이다. 그는 해인사에서 성철 큰스님을 16년 동안 모셨다.

누구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가 2005년 6월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에 불국정토 염원으로 조계종 ‘용남사’를 창건하였다.

용남사 창건 전후로, 동생 다섯을 모두 출가시켜 각처에서 사찰을 창건하도록 견인 역할을 했다.

동진(童眞) 출가하여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고, 동생들까지 출가시키는가 하면, 용남사를 창건하고 불교대학을 설립하는 등 불국정토 조성에 매진하는 혜안 스님의 꿈과 비움의 삶 이야기를 들었다.

- 용남사 불교대학은 언제 설립하셨나요?

▶ 8년 정도 됩니다. 매주 토요일 한 달에 4번 강의합니다. 코로나로 3년 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70~80 명 참석합니다. 팬데믹이 해제되면 다시 개강할 것입니다. 과정을 마친 후 수료증을 수여하며 졸업생 기수별로 동창회를 결성하기도 합니다.

- 출가 동기는?

▶ 고향은 경북 영주 산간 마을이고 아들 7형제 중 둘째다. 당시 너무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입 하나라도 덜고 절에서 공양이나 배불리 하라며, 어머니가 부석사 승가에 입적시켰다. 1972년 아홉 살에 출가하여 은사 스님인 무여 큰스님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다. 불심이 지극한 어머님이 아끼고 영특했던 일곱 살짜리 둘째를 승가에 입적시킨 것이 불납 52년째인 혜안 스님이다.

불가의 불법승이라 일컫는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 승보사찰인 순천 송광사를 전전하며 6년 정진 후 해인사에서 성철 큰스님을 모셨다. 이후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해인사를 떠나 불교의 행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개척하고자 의성군 비안면 용남리에 용남사를 창건했다.

▶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자비를 베풀고 싶었다. 독거노인, 결손가정으로 끼니 굶고 다니는 학생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 아닌 모든 중생은 같다고 생각해서 인상(印象), 중생상(衆生想), 수자상(壽者相)의 깊은 부처님 뜻을 따르고 헐벗고 굶주린 중생을 구하고자 불자의 길을 걷고 있다.

출가할 때 부모님 말씀은 늘 착하고 바르게 욕심내지 말고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라고 했었다.

대웅전 신축을 앞둔 현재의 '용남사' 전경 <유무근 기자>

 

- 스님의 가족사항은?

▶ 7형제 중 맏아들을 제외하고 6형제는 모두 출가하여 주지승입니다.

맏아들 (장 천복)은 대(代)를 이어 결혼하고 대구에서 덕망 있는 법사로 활동합니다.

제가 둘째로 의성 용남사 혜안스님(장 원복), 셋째는 대구 연화사 강명스님(장 오복), 넷째는 대구 영평사 해월스님(장 대복), 다섯째는 대구 불지사 능경스님(장 관복), 여섯째는 청주 미륵사 정각스님(장 인복)으로 모두 부처님 길로 불국정토 전진에 임하고 있습니다.

- 용남사 창건 배경은?

▶ 해인사에 있을 때 그곳을 30년간 다니신 ‘지혜심’ 법명의 불심 지극한 노(老)보살님이 저를 아주 잘 보았던 것입니다.

당시 20대 초반의 어린 나를 보고 고생한다면서 우리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고 해서 성철 큰스님과 동행해 왔는데 동네 지명이 ‘용남리’로 현재 용남사 이 자리입니다.

노보살 할머니께서 “ 혜안 스님! 내가 죽으면, 5만 평의 집 앞에 땅과 사는 주택을 스님께 전부 보시하겠습니다. 반드시 불국정토를 이루어 달라”고 늘 말씀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용서리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용남사’ 사찰로 창건하게 되었습니다.

대웅전 마당 앞에는 천 년 된 우물이 아직도 있습니다.

저도 어려운 중생을 위해 내 한 몸 바쳐 불국정토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기쁘게 떠날 것입니다.

용남사 담장 위 부처님 조형상이 신도들을 맞이하는 듯 이채롭다.  <유무근 기자>

 

- 다방면으로 사회활동을 하시는데?

▶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필요한 것들, 생계 곤란, 학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모르게 조금씩 도움을 드리고 희망을 전합니다.

교도소를 찾아 교화 활동을 합니다. 순간에 죄를 짓는 것은 실수지만 반복되는 것은 습관이니 출소해서 갈 곳이 없으면 용남사 불자 사업주와 협의하여 취업도 시킵니다. 주말 일정대로 군부대 법문도 나갑니다.

- 장학 사업도 한다는데?

▶ 네팔과 인도에 장학금으로, 부처님 자비를 전하고자 연간 몇천만 원 정도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처님 공부를 끊임없이 하고 모두가 깨달음을 얻는 큰 기쁨, 불국정토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대외적으로 수상한 실적이 많을 텐데?

▶ 불자로서 바른 자세가 아닌 것 같아 답변 거부로 묵비했지만, 용남사 신도회 간부에 의하면 대통령상, 장관상 외에도 여러 곳에서 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개구리소년 실종 32주기 위령제에서 추모글을 낭독하는 혜안스님 형제(우). 가운데 둘째 강명스님. 좌측 다섯째 능경스님 형제 <유무근 기자>

 

- 개구리 소년 위령탑 건립 배경은?

▶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32주기를 맞아 관계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를 올렸습니다. 시신들은 찾았으나,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잊혀져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전국 미아 찾기 본부' 나 주봉 회장의 도움으로 2021년 발견 현장 인근에 위령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현장이 군부대 사격장 뒤편이고 어린이 유골에서 총알 흔적이 나온 것으로 보아 사고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제 정부도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최종 발표하고, 위로금이라도 일부 지원을 하여 가족들 아픔을 보듬어주면 좋겠습니다.

▶ 성철 큰 스님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하셨는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것은 쉬운 것 같지만 수천 년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내려온 변함없는 산과 물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그렇지 못하니 깊이 간직하면 좋을 듯합니다. 말로는 읽고 이해하기 쉬우나 행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큰스님의 말씀을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합니다. 성철 큰 스님을 40년 전에 친견하고 “스님을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고 인연을 맺었으니 이 또한 소승의 큰 기쁨입니다.

 

안개처럼 나타나서 작지 않은 흔적을 남기고도 내색하지 않는 겸손함은, 동생 스님들께도 실행하는 실질적인 은사, 큰스님의 표상일 것이다.

16년 동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변함없는 산과 물의 진리를 그대로 수행해온 혜안 스님은, 어쩌면 작은 성철 스님일 것이다.

불국정토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는 용남사가 선망의 자비 도량이 되는 그때가 앞당겨 지리라 기대해 본다.

혜안 주지스님이 법당에서 경문을 읽고 있다.  <유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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