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5)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 김교환 기자
  • 승인 2019.04.03 15:27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까마귀가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전깃줄에 앉아있던 제비는 궁금했다.

“까마귀야! 너 뭐 하니?”

“보면 모르느냐? 이삿짐 싸고 있다.”

제비는 다시 말을 걸었다.

“이삿짐을 왜 싸는데?”

까마귀는 대답했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울기만 하면 재수 없다고 돌멩이질하며 침을 뱉는데 나를 싫어하지 않고 반겨주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려고 그런다.”

이 말을 들은 제비는 말했다.

“야, 이놈아! 네가 어디를 가든 너의 그 울음소리를 바꾸지 않는 한 똑같은 미움을 받을 거야!”

요즈음 사회 현실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재미있는 우화이면서, 현 사회의 병폐를 비유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 뱉지를 단 정치꾼들을 보자.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을 대부분 국민은 공감할 것이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한마디로 짜증 날 정도로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이 같은 환경이 온통 사회 전체를 오염시켰는지 이제 젊은이들은 늙은이를, 늙은이는 젊은이를,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탓하고 험담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 있다. 이는 흑백논리와 절대적 사고방식에서 오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요사이 우리 주변에서는 소통이 단절된 사회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는 다른 말로 바꾸면 대화가 단절되어있다는 말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우선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이 찾아지면 토론에서 패한 측은 인정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주장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주장만 앞세우게 되고 여기서 마음에 드는 결론을 얻지 못하면 결국 투쟁이 되고 마는 현실이다. 이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감정을 이성보다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아주 쉬운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생각이 다를 때는 우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다. 다음에 내 생각을 말해야 하고 그다음에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쳐서 나와 네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자세가 필요한 지금이다.

우리말에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란 말도 있고 ‘칭찬에 발이 있다면 험담에는 날개가 달렸다’는 말도 있다.

올해로 선종 10주기를 맞은 김수환 추기경의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