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서럽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서럽다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3.02.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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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말자는 사연
경산시에서 걸어놓은 프랑카드.  사진 여관구 기자.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요즘은 왜 이렇게 천대를 받게 되었을까. 비둘기목에는 사막꿩과(Pteroclidae)와 비둘기과(Columbidae) 외에 이미 멸종된 도도과(Raphidae) 등이 있다. 비둘기과에는 총 289종이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는 멧비둘기·양비둘기·흑비둘기(천연기념물 215)·염주비둘기·녹색비둘기 등 5종이 있다.

멧비둘기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야생 비둘기로, 사냥새이다. 양비둘기는 해안의 바위 절벽이나 내륙의 바위산 또는 교각(다리) 등에 무리지어 사는 비둘기로 장소에 따라 비교적 흔한 텃새이다.

흑비둘기는 울릉도와 남해도서(제주도 북제주군 추자군도 사수도 및 전라남도 남해안 도서)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도서종(島嶼種)이다. 염주비둘기는 서해 앞바다 섬에 적은 수가 서식하며, 녹색비둘기(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잡힘)는 미조(迷鳥)이다. 집비둘기는 리비아비둘기를 개량하여 만들어 낸 품종이다.

보도블럭위를 걷고있는 '비둘기'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동기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에서 유래가 된듯하다.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요즘 ‘골칫덩이’ 취급을 받고 있다. 쓰레기를 뒤지며 이것저것 주워 먹어 잘 날지 못할 만큼 살이 쪘다는 의미로 ‘닭둘기’, 배설물과 깃털로 각종 세균을 옮길 수 있다는 뜻에서 ‘쥐둘기’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다.

또한 비둘기의 배설물은 도시 미관에도 좋지 않고, 건물이나 유적지 등 기타 시설물 자재를 부식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배설물이 석회암 구조물에 손상을 주는 것은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돼 있다. 비둘기의 배설물이 물과 닿으면 다양한 종류의 곰팡이 진균류가 성장하고, 대사과정에서 산성 물질이 나온다. 이 산성물질이 석회석을 녹여 구조물 곳곳의 색이 바랜다. 심할 경우는 미세한 틈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 틈 속으로 물이 스며들어 얼면 구조물에 금이 갈 수도 있다.

경계를 하고있는 '비둘기'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이 비둘기의 특징 중 하나가 강력한 번식력과 빠른 성장 능력이다. 집비둘기는 1년에 1~2회, 매번 두 개의 알을 낳는데 주변 환경이 좋으면 1년에 4번에서 6번까지 알을 낳기도 한다. 성장도 매우 빨라서 갓 태어난 새끼가 34~36시간 만에 몸무게를 두 배로 늘리고, 4~6주가 지나면 거의 다 자라 독립을 한다. 새끼 비둘기는 태어나자마자 ‘피존 밀크’라는 특별식을 공급받는데, 이는 암수 모두로부터 공급받는 젤 형태로,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각종 면역성분이 함유된 농축 영양덩어리여서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비둘기가 이렇게 까지 빠르게 번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도시환경에서 주어지는 풍부한 먹이 때문이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에게 시민들이 던져주는 모이와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는 비둘기가 하루에 필요한 먹이의 양인 20~50g을 단번에 먹어치울 수 있게 한다. 이런 환경에 있으니 도시 비둘기들은 어렵게 먹이를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어 여유시간이 많아지고, 이 시간의 대부분은 번식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풍부한 먹이가 안정된 성장과 높은 번식률을 보장해 주는 셈이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비둘기'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비둘기와 인간의 전쟁’이 그렇게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이 ‘납빛 비둘기’ 구제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이 났다. 독약이나 마취제, 총포, 덫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일시적으로 비둘기의 개체 수가 감소하는 듯 보이다가 이내 예전 수준을 회복하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결과를 보였다. 또 영국에서는 ‘비둘기용 피임약’을 모이에 섞어줘 개체 수를 줄이려는 시도도 해 봤지만 이 역시 허사였다. 약을 먹지 않은 다른 무리의 비둘기가 재빨리 유입돼 별 효과가 없었다.

이처럼 사람이 비둘기의 개체수를 줄이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안정적인 번식의 근원인 먹이 공급은 차단하지 않고 ‘사냥’ 에만 나섰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비둘기 방제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시작한 스위스 바젤대학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총포와 덫, 독약 등으로 비둘기를 살상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으며 개체 수는 먹이의 양과 가장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바젤 시 당국과 동물보호협회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말자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50개월 뒤 2만 마리로 추정되던 이 지역 비둘기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식을 달리하여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프랑카드까지 붙이며 홍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