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죽음의 값은 얼마일까
(8) 죽음의 값은 얼마일까
  • 김영조 기자
  • 승인 2019.04.1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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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숨 값에도 차이가 있다

사람의 죽음 값 또는 목숨 값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금액으로 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값은 얼마일까? 즉 죽음 값 또는 목숨 값을 인위적으로 계산하여 책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다.

값은 일반적으로 물건의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사람의 목숨을 값으로 매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의 생명은 존엄하고 지고지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값을 운운한다는 것은 생명의 존엄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목숨 값을 매겨야 할 경우가 생긴다. 사망에 대한 손해배상금액을 정해야 하고, 생명보험에 대한 보험금액을 책정해야 할 경우 등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논리와 경제원리에 따르면 값을 책정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기준을 통해서 말이다.

생명의 존엄과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 어떤 기준에 의해서도 차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죽음의 경우 그 목숨 값은 천차만별이다. 직업, 직위, 재산, 나이, 상황 등 인위적 기준에 의하여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대표적인 풍자 문학작품으로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가 있다. 영국 왕 헨리 8세의 아들인 왕자 에드워드와 길거리 거지의 아들인 톰은 같은 날 태어났다. 둘은 우연히 만나 서로 신분을 바꾸어 생활하게 되었다.

마크 트웨인 위키백과

여기서 현대적 입장에서 한번 가정해 본다. 두 사람의 지위는 극과 극의 상태로 서로 다르다. 서로 반대의 입장에서고 다시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간다. 만약 두 사람이 사고를 당해 함께 사망하였다고 하자. 그러면 두 사람 사이의 죽음 값에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이다.

201840대 일용직 노동자가 고시텔 옆방에 사는 이웃을 살해하고 현금 2만원을 빼앗은 사건이 있었다. 이 경우 피해자의 목숨 값은 고작 2만 원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나올 만 하다.

군인이 훈련 중 잘못 던진 수류탄에 맞아 사망하였다면 국가에서 주는 일정한 보상금 외에 일체의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가 없다. 헌법국가배상법에서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등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 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인의 목숨 값은 개 값보다 못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만약 친구가 면회 와서 훈련 장면을 구경하다가 수류탄에 맞았다면 많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열심히 훈련 중인 친구와 편안히 앉아 구경만 하고 있는 친구 사이에 목숨 값에 불합리한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이 규정에 대헤서는 독소조항이라며 불만이 많다.

원래 국가배상법조항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 월남전 참전군인들 때문에 규정되었다. 상해· 사망사고에 막대한 재원이 들어갈 것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후 1971년 대법원에서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졌다. 군경과 민간인 그리고 혹은 군경과 다른 공무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조항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관 16명 중 위헌 9, 합헌 7명이었다. 해당 조항은 폐기되었다. 대법원이 위헌심사권을 가지게 된 후 첫 번째 위헌 심판 사례이다.

박 대통령이 격노한 것은 당연하다. 위헌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관례를 깨고 모두 연임에서 배제되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어 아예 이 조항을 헌법에 규정하고 국가배상법에도 다시 넣었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위헌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없앤 것이다.

사람이 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경우 (목숨 값으로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천차만별이다. 사망 사고 시 손해배상액 산정기준 즉 손해배상의 범위는 일실수입, 위자료, 장례비 세 가지이다. 이 중 일실수입에서 큰 차이가 난다. 다만 상해 사고의 경우에는 이밖에 치료비, 개호비(간병비), 장애시 후유장애비, 휴업손해 등이 추가된다.

사망 사고 시 손해배상의 범위

일실수입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장래 벌 수 있었을 수입

위자료

재산적 손해 외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장례비

장례를 치르는데 필요한 경비

 

일실수입은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장래 벌 수 있었을 수입을 말한다. 보험의 경우에는 상실수익액이라 한다. 장래의 수입을 현재 시점의 가치로 계산한다. 따라서 장래 벌 수 있는 총수입에서 증간이자와 생계비를 공제한다.

중간이자 공제방식에는 라이프니쯔계수와 호프만계수가 있다. 전자는 복리공제방식으로서 보험사에서 적용하고 있다. 후자는 단리공제방식으로서 법원에서 적용하고 있다.

<호프만 계수표>

계수

계수

계수

계수

계수

1

0.9958

2

1.9875

3

2.9752

4

3.9588

5

4.9384

6

5.914

7

6.8857

8

7.8534

9

8.8173

10

9.7773

중략

111

91.0774

112

91.7592

113

92.4391

114

93.117

115

93.7931

116

94.4673

117

95.1395

118

95.8099

119

96.4784

120

97.1451

하략

 

예를 들어 향후 10(120개월)간 월 100만원의 수입이 있는 금액을 호프만계수에 따라 현재 시점으로 일시불로 산정해 본다.

100만원

×

97.1451(120개월에 해당하는 호프만 계수)

=

97,145,100

실제 향후 10년간 수입이 12천만 원이 되겠지만 중간이자 공제로 약 97백만 원이 된다. 2300만 원이 이자로 공제된 셈이다.

생계비는 어느 정도 소요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수입의 1/3을 생계비로 산정하고 있다. 물론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는 경우 그 비율만큼 공제한다.

<일실수입 계산식>

월 평균소득

×

사망 시부터 노동가동연한까지의

개월 수의 호프만계수

×

2/3

(생계비 1/3공제)

×

피해자의 과실 비율

 

일실수입 산정에서 중요한 것은 소득과 노동가동연한이다. 회사 고위직이나 전문직 종사자처럼 소득이 높을수록 일실수입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나 학생, 주부 등은 도시일용노임으로 계산한다. 소득이 있더라도 도시일용노임보다 적을 때에는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한다. 2019년 상반기 법원에서 인정하는 도시일용노임은 2,759,394원이다. 자동차보험약관에서 인정하는 도시일용노임은 2,468,087원이다.

문제는 사망 시에는 소득이 없었으나 살아 있었더라면 장차 소득이 생길 수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의과대학생이 사망한 경우이다.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해당 학교의 의사고시 합격률이 높다 하더라도 반드시 의사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도시일용노임으로 계산한 판례가 있다. 특히 학생의 학과 성적 순위로 보아 해당 대학 의사고시 평균 합격률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직자로 처리한 예도 있다.

노동가동연한(흔히 정년으로 칭함)이 길수록 일실수입이 높다. 노동가동연한이 법률이나 회사 사규, 단체협약 등에 의하여 보장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르면 된다. 그리고 특수직업종사자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취급한다.

<종래 판례에 나타난 직업별(직종별) 가동연한(정년)>

35

다방 종업원, 골프장 캐디

40

프로야구 선수

50

술집 마담

55

미용사, 사진사

57

민간보육시설 보육교사

60

보험모집인, 개인택시 운전사, 개인회사 이사, 목공, 기술사, 행정사

65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소설가, 회사 대표이사

70

변호사, 범무사, 목사

기타

가수 신해철 씨는 70, 댄스가수 강원래 씨는 35세로 인정

농업종사자는 경우에 따라 60세에서 65세까지 다양하게 인정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에 대해서는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하였다(2019.2.21.선고 2018 248909). 198960세로 판결한 이후 30년만의 일이다. 이 판결에 따라 보험업계 및 노동계 등 각계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상향 이유로 다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국민 평균수명의 연장(남자 67.0, 여자 75.3남자 79.7, 여자 85.7)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증가 (6516 달러3만 달러)

실질은퇴연령의 고령화 (남성 72.0, 여성 72.2세로 OECD 회원국 중 최고령)

각종 사회보장 법령에서 노인을 65세로 규정

다만 65세를 초과한 육체노동자의 경우에는 소득이 없거나 또는 있다 하더라도 일실수입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사망하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목숨 값이 제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집에서 놀고 있는 35세 딸과 가사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는 70세 어머니가 같은 사고로 사망한 경우이다. 딸은 도시일용노임으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받지 못한다는 모순이 생긴다. 놀고 있는 딸은 목숨 값이 인정되고 사람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현재 일을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하여 일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 값이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일실수입이 인정되고 그 금액이 많다 하더라도 가해자가 손해를 배상할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목숨 값은 있으나 마나 한 경우가 된다. 예컨대 무보험이고 무일푼인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치어 사망한 경우 피해자 측은 손해배상을 받을 권리는 있으나 이를 이행할 방법이 없게 된다. 명목상 목숨 값이 있으나 실질상 목숨 값은 없게 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위자료는 재산적 손해 외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다. 민법상 직계존속, 직계비속, 배우자가 청구권자이다(민법 제752). 실무상으로는 이외의 자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입증을 하면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피해자가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었다가 이후 사망한 경우 피해자에게도 순간적으로 위자료 청구권이 있다.

위자료의 액수는 법원이 제반사정을 참작하여 자유재량에 의하여 결정한다. 통상 1억 원을 산정기준으로 하고 있다. 장례비는 실무상 통상 500만 원이 기준이다.

공양미 300 석에 몸을 팔고 인당수에 뛰어 든 심청의 목숨 값은 얼마일까? 정확하지 않지만 추론적으로 계산해 본다. 부피의 단위인 석()은 우리말로는 '이다. 쌀 한 섬의 무게는 144kg이라고 한다. 1kg의 현 소비자 가격을 3천 원 정도로 계산하면 쌀 300 석은 대략 13천만 원 정도 된다.

조선시대 최고위 관직은 영의정 등 정1품이다. 오늘날의 국무총리급에 해당한다. 이들은 1년에 100 석 정도의 녹봉을 받았다고 한다. 심청의 목숨 값은 영의정 3년 치 봉급에 해당한다. 서민 입장에서는 도저히 접할 수 없는 큰돈이지만 사람의 목숨에 견줄 수 있을까. 구우일모(九牛一毛)이고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사람의 목숨 값은 끝이 없으니까.

심청전에는 공양미 300 , 심청의 목숨, 심청 아버지 심학규의 개안(開眼)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등장한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이에 대한 정답은 다른 데 있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심청의 효심에 있다.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두려운 일이다. 죽음은 누구나 싫어한다. 그러나 심청은 효심을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장애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고관 댁 수양딸이 되기로 한 대가로 공양미 300 석을 얻었다고 아버지를 안심시킨다. 그 효심의 힘으로 열다섯 살 소녀는 죽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안타까우면서도 고귀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