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을 노래한 박인로 노계문학관을 가다
자연과 삶을 노래한 박인로 노계문학관을 가다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3.01.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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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 노계문학관, 도계서원을 가다
영천 노계문학관. 박미정 기자
영천 노계문학관. 박미정 기자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도계서원 아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노계문학관은 조선시대 3대 시가문학의 대가인 노계 박인로(盧溪 朴仁老 1561~1642)선생이 남긴 주옥같은 시조와 가사, 한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노계문학관 전시실 내부. 박미정 기자
노계문학관 전시실 내부. 박미정 기자

 

 

전시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박인로 선생의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선생의 생애를 되새기면서 전시실을 차근차근 관람하면 선생의 문학적 감수성과 빼어난 시어, 감동적인 표현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 될 것이다. 60여 명의 수용이 가능한 영상실도 있다. 

가사문학의 대가 박인로. 박미정 기자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조망하던 노계 박인로는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한국가사문학의 3대 시성으로 불리운다. 박인로는 영천 출신으로 본관은 '밀양', 자는 '덕옹', 호는 '노계', '무하옹'으로도 불리운다. 안빈낙도를 선택한 그는 9편의 가사와 70여수의 시조를 남겼다. 

박인로의 시, 대승음

 

조선시대 문인이자 무인이였던 박인로는 1612년(광해군 4년) 52세에 무인의 길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인생의 후반을 열었다. 82세의 생을 마감하면서 젊을 때는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 뚜렷했고, 50세 이후부터는 독서와 수행으로 붓을 가까이 했으며,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으로 조홍시가, 선상탄, 사제곡, 누항사, 영남가, 노계가, 입암별곡, 소유정가 등이 있다.

영천 도계서원. 박미정 기자
영천 도계서원. 박미정 기자

 

또한 노계문학관 인근에는 박인로 선생의 위폐를 모시고 있는 도계서원이 있다. 돌담너머 보이는 서원은 나즈막하면서도 정감이 물씬 풍기는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반으로 겹치마 팔작지붕이며, 가운데 마루를 두고 있다. 또한 양옆에는 온돌방을 둔 평면형식으로 조선시대 만들어진 서원들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도계서원 앞 연못. 박미정 기자
도계서원 앞 연못. 박미정 기자

 

 

박인로 삶의 후반부는 유학자이자 가곡, 가사, 시조를 직접 창작하여 부르던 가객의 삶이었다. 나이 40세를 전후했을 때부터 성인과 한인의 경전을 뜻풀이하는데 몰두하였다. 생애 말년에는 여러 도학자와 교유하였는데, 특히 이덕형과 친했다. 1612년에는 도산서원의 의식에 참여하여 이황의 학문을 우러러 따랐다. 그 외에 조지산, 장여헌, 정한강 등과 교유하였고, 1630년에는 '용양위보호군'이라는 노인적을 받기도 하였다. 박인로가 세상을 떠난 후 지방의 선비들이 그를 우러러보아 1707년에 도계서원을 세워 제향하였다. 

노계 시. 박미정 기자
노계가. 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