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 김윤식 시인 2 . 2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시로 쓰다.
서지 김윤식 시인 2 . 2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시로 쓰다.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3.01.10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산남매공원에 김윤식 시인의 시비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과 '단오 전날' 시비가 세워졌다.
경산남매호수공원에 김윤식 시인의 시비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경산시 남매지 호수공원과 보건소 사이에 시민들이 운동도하고 쉼을 취할 수 있는 안식처로 그곳에는 시민들이 잊어서는 안 될 서지 김윤식 시인의 흔적들을 만들어 놓았다.

김윤식(金潤植. 1924.3.5.~1996) 시인의 호는 서지(西芝)이며 경북 경산 군 용성면 덕천리 출생으로 대구공고, 1954년 홍익대국문과를 졸업하고 1957년 시집 『오늘』을 발표한 후 시동인회 청맥·시림 창립회원으로 활동했다.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대구일보에 발표 후 3·15마산의거의 김주열을 애도하는 시 ‘강이여 산이여 봄이여’를 매일신문(1960년 4월 15일)에 발표했다. 그의 시 ‘합장’의 시비가 4.19국립묘지에 조성되어 있다.

경주여고 교사, 영남일보 기자,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 사무국장, 경산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서지 김윤식 시인의 시(詩)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1960년 2·28민주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쓴 유일의 시다. 따라서 이 시는 문학작품일 뿐만 아니라 2·28민주운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직접 농사지은 땅콩을 염매시장에 팔러 가는 길에 2·28학생 시위대를 목격하고 썼다. 1960년 3월 1일자 대구일보에 게재되었다.

2010년에는 고향인 경산시 보건소 옆 남매공원에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과 ‘단오 전날’ 시비가 세워졌다.

김윤식 시인의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시비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2·28 대구학생데모를 보고- 김윤식

설령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먹장 같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쳐도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앓고 있는 하늘 구름장 위에서

우리들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기 때문

학자와 시인, 누구보다 굳건해야 할 인간의 입들이 붓끝들이

안이한 타협으로 그 심장이 멈춰지고

또는

얍사하니 관외(關外)에 둔주(遁走)한 채 헤헤닥거리는,

꼭두각시춤으로 놀고 있는-이리도 악이 고웁게 화장된 거리에

창백한 고적으로 하여 <참>이 오히려 곰팡이 피는데,

그 흥겨울 <토끼사냥>을 그 자미 있을 <영화구경>을 팽개치고,

보라, 스크램의 행진! 의를 위하여 두려움이 없는 10대의 모습,

쌓이고 쌓인 해묵은 치정 같은 구토의 고함소리.

허옇게 뿌려진 책들이 짓밟히고

그 깨끗한 지성을 간직한 머리에선 피가 흘러내리고

불행한 일요일, 구루미 선데이에 오른 불꽃! 불꽃!

빛 좋은 개살구로 익어 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에

아아 우리들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모습.

하필 손뼉을 쳐야만 소리가 나는 것인가

소리 뒤의 소리, 표정 뒤의 표정으로 우뢰 같은 박수 소리,

터져나는 환호성, 뿌려지는 꽃다발!

1960년 2월 28일, 우리들 오래 잊지 못할 날로,

너희들 고운 지성이사 썩어 가는 겨레의 가슴속에서

한 송이 꽃으로 향기로울 것이니,

이를 미워하는 자 누구냐, 이를 두려워하는 자 누구냐, 치희로 비웃는 자 누구냐, 그들을 괴롭히지 말라,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라.

지금은 봄 옥매화 하얀 송이 대한의 강산에서

3월의 초하루를 추모하는 너희들 학생의 날!

아아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은 저리 우리들의 태양이 이글거리기 때문.

김윤식 시인의 '단오 전날' 시비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 단오 端午 전날 >> 시 서지 김윤식

이웃들은 단오 端午를 앞에 두고

감나무에 농악 農樂을 뿌린다.

십년도 전에 돌아가신 도전숙부 道田叔父 총각 때니까

오십년 五十年은 되었을 반시 盤柿

짙어가는 나무 그늘에서 약 藥을 뿌려야 하나 몇일을 생각한다.

하필이면

나뭇가지에 덮힌 외양간 처마에

애눈도 없이 멋대로 깐 새끼 네 마리

오늘도 무료한 오후 午後

이번에는

어느 놈이 받아 먹는가

우두커니 앉아서 해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