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정 수필집 "장미의 기억'을 읽고
박미정 수필집 "장미의 기억'을 읽고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1.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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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여 남짓한 파충류 한 마리로 인해 수박의 ‘수’가 두려울 정도로 오지게 먹는다.
미상불 도리원에 차가 멈추기 무섭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새 평화다
청송 주산지 입구에 나타난 독사. 이원선 기자
청송 주산지 입구에 나타난 독사. 이원선 기자

“의사는 식사 대신 귤을 먹는다는 나의 말을 처음부터 믿지 않은 눈치였고, ~중략~, 귤 한 바가지는 스무 개는 족히 되었으리라, 귤 몇 개만 먹는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바가지 타령을 했던가” 작가는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었나 보다! 하기야 하고 많은 과일을 두고 어느 누군들 추억 한 둘 쯤 없을까?

아버지께서 수박을 한 리어카나 사 오셨다.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어 하지감자 나왔다지만 쪼들리는 살림살이는 여전하다. 한데도 한 리어카의 수박이라니! “귤 몇 개만 먹는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바가지 타령을 했던가” 한 리아카도 따지고 보면 열 두어 개에 남짓했다. 수박밭으로부터 십여 리를 오는 도중에 깨질까 봐 짚을 두툼하게 깔고 덮어 한층 부풀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여튼 그날은 온 식구가 그 귀하다는 수박으로 포식을 했다. 와중에 나는 약이라고 권하는 수박을 입에도 꾸역꾸역 물리도록 먹었다. 이튿날도 다음날도, 근 일주일을 수박으로 끼니를 때운다. 하여간 1m여 남짓한 파충류 한 마리로 인해 수박의 ‘수’가 두려울 정도로 오지게 먹는다.

해거름에 몸에도 헐렁한 지게를 지고 소꼴 베기에 나섰다. 70년대의 초반을 살았던 소년들에 그 일은 내남없이 당연시였고 나도 마찬가지다. 숫돌에 새파랗게 날을 벼른 낫을 들고 얼마나 풀과의 씨름을 벌렸던가? 정확하게 오른쪽 복숭아뼈와 아킬레스건 사이가 바늘에 찔린 듯 따끔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 이어 형과 동생의 얼굴이 눈앞에서 꿈결처럼 희멀겋다. 혹시나 가시에 찔렸는가 싶어 발을 드는데 거무스레한 물체가 따라 오르다간 ‘툭’하니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깊고 깊은 심연으로 심장도 덩달아 떨어지는 기분이다.

궁벽한 산간 벽촌이라 의원도 없는데 병원이라고 있을까 보다. 오롯이 자신의 체력으로 그 지독하다는 독사의 독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실정이다. 진다는 것은 곧장 죽음을 의미한다. 간단한 처방으로 어머니는 당신 머리카락 몇 올을 끊어 다리 군데군데 묶는 것으로 돌아 앉아 훌쩍인다. 독이 위로 퍼지는데 임시방편이라는 데 효과 여부가 있고 없고는 따질 바가 아니란다. 생때같은 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간다는데 그것이 최선이라는 게 한스러울 따름이란다. 그 시간 아버지는 동네를 이리저리 쏘다녀 수소문이다. 그 당시 동네에는 뱀독에 특효라 일컫는 신비의 돌이 있었다. 바둑둘 크기의 그 돌은 뱀이 문 자리에 붙이면 독이 다 빠질 때까지, 믿거나 말거나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떨어진 돌을 세숫대야에 담그면 노란 물이 한가득 풀어진다는 것이 당시 중론이었다. 한데 며칠을 두고 수소문을 했지만 허사였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전년까지 있었던 돌이 돌연 행방이 묘연하단다.

독사의 독은 혈액에 작용하는 독이다.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적혈구를 파괴하여 면역 기능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혈액을 응고, 썩게 만들어 괴사를 진행하는 무서운 독이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은 물론 고열과 함께 피부는 급격하게 팽창한다. 그런 가운데 심장에 독이 이르면 살 수가 없다. 죽을라치면 차라리 신경을 독을 지닌 코브라가 제격이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여인이 바로 클레오파트라 7세다.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그녀의 미모는 정평이 나 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내였던 그녀는 옥타비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패하자 곧바로 자결했다. 그 방법으로 코브라를 이용했다. 코브라를 넣은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는 것으로 만사 끝이다. 옥타비아누스 그녀를 찾아 왔을 때는 까무룩 잠이든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독사에 물렸다는 소식에 반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후일 말하기를 나는 내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며 그날의 장면을 짤막하게 스케치했다. 어두운 밤길도 나 홀로 척척, 씩씩하던 내가 그렇게 울 때는 진짜로 아팠는 갑네! 하는데 그저 웃었을 뿐이다. 기억에도 어사무사한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독사 독의 후유증으로 식욕이 떨어진 나의 생명줄은 오로지 수박이 지탱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무한정은 아니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음습한 뒤란에서 거적을 덮고는 여름에 대항하던 수박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삼복더위에 독을 빼는 이뇨작용에는 최고라는 수박의 최후가 다가든 것이다. 결국에 마지막 두세 개는 식구들이 둘러앉아 떨이를 핑계로 포식으로 수박이 가진 약의 효능을 다했다. 그즈음 어른 다리만큼 부었던 부기도 점차 빠지는 시기로 밥술이나 뜨는 때이기도 했다. 그날 수박에 의지해서 생명을 연장하고 보니 천년을 묵었다는 산삼 이상으로 고마운 수박이다. 그렇다고 수박이 나에게 약으로만 기억된 것은 아니다.

의성을 지나면서 방광이 팽창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비포장도로에 헌털뱅이 버스도 한몫 거든다는 느낌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다소 거리가 멀더라도 정류장이 가까운 탑리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으면 싶었다. 평소 가까워 보이던 도리원이 이렇게는 멀어 보이기는 처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다. 양손으로 불끈 잡아 쥐었건만 수시로 덜컹거리는 요동에 금방이라도 지릴 것만 같다. 아니 사타구니 안쪽으로 찔끔찔끔 흐른다는 기분이다. 김유신의 누이동생 보희는 꿈에서 소피를 보았더니 서라벌이 그득했다고 하더니 이대로 참지 못하면 버스 바닥이 지린 오줌으로 가득할 것 같다. 그 창피를 어떻게 감당할까? 샛노란 얼굴로 식은땀으로 줄줄 흐른다는 기분이다. 문득 어머니가 원망스럽다.

고등학교 시절 안동을 거쳐 고향 집에 이르려면 근 5~7시간은 족히 걸렸다. 첫차를 타고 가면 막차로 돌아오기가 빠듯한 거리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향행을 감행한다는 것은 차비도 차비지만 연례행사 정도로 마음 내기가 극히 어려웠다. 그런 탓에 어머니는 모처럼 보는 아들을 맞아 이것저것 준비한 것을 억지를 써서라도 먹여 보내려고 작심을 하고 보채기가 일수였다. 그러한 음식 중에는 수박도 포함되어 있었다. 싫다고 싫다고 해도 하나만 하나만 하고 턱밑까지 들이미는 데는 거절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한 입 한 입 먹은 수박이 결국에는 화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엄마 나 죽네 하는 속에서도 여전히 시간은 흘러갔던 모양이다. 미상불 도리원에 차가 멈추기 무섭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새 평화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한데 문득 수박이 그립다. 행여나 싶어 벌컥 냉장고 문을 여는데 먹고 싶은 수박은 없고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귤 몇 알이 저를 찾았어요? 노랗게 웃는다. 이만한 양이 작가가 말한 한 바가지일까? 이만한 양이면 그냥저냥 보통인데 하는데

“수박 대신에 저는 어때요? 저도 가끔은 약으로 쓰여요!”하는데 작가의 “조금 전에도 혈액검사 했는데요! 앞으로 귤 한 바가지 안 먹을게요”하는 말에 잊혀 가는 과거가 아름답다. 과거에 겹쳐 벌써 여름을 기다려진다. 목숨을 좌지우지했던 수박이 그립다. 그깟 터질 듯 오줌보가 대순가? 수박 쟁반을 앞에 놓고는 어서 먹어보라며 둥글둥글한 수박처럼 환하게 웃던 어머니의 웃음이 칠흑 같았던 머리카락과 겹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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