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솟은 기이한 바위는 떠 있는 배 같고
학을 탄 신선이 하늘에 오르내리는 듯하네
청하여 묻노니 선인은 어느 곳으로 갔는가
천년토록 닻줄을 푸른 산 앞에 매어 두었네
(무학정, 정동박)
물 아래 그림자가 치어를 낳는다. 그림자 기어가는 소리 들린다.
무흘구곡(武屹九曲)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선생이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의 성주댐 아래쪽의 대가천에 자리한 제1곡 봉비암(鳳飛巖)에서부터 성주댐을 거쳐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의 수도암 아래쪽 계곡에 자리한 제9곡 용소폭포까지 약 35㎞ 구간의 맑은 물과 기암괴석 등, 절경을 읊은 시이다.
정구선생이 대가천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대가천을 오르내리며 경관이 뛰어난 곳을 골라 이름 짓고 7언 절구의 시를 지어 그 절경을 노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흘구곡의 아홉 굽이를 한시로 표현하여 총 9수로 구성되어 있다.
성주군에 1~5곡이 있고, 김천시 증산면에 6~9곡이 있다. 제1곡 봉비암(鳳飛岩), 제2곡 한강대(寒岡臺), 제3곡 무학정(舞鶴亭), 제4곡 입암(立巖), 제5곡 사인암(捨印巖), 제6곡 옥류동(玉流洞), 제7곡 만월담(滿月潭), 제8곡 와룡암(臥龍巖), 제9곡 용추(龍湫)로 구분되어 있다.
무흘구곡은 정구 이후 후손과 후학들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졌다. 영남의 대표적 구곡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경헌(警軒) 정동박(1732~1792)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영재(嶺齋) 김상진에게 부탁해 무흘구곡도를 그리게 하고, 곡마다 그 명칭을 적고 직접 지은 두 수의 시를 써 넣은 뒤 첩을 만들었다. 김상진이 79세 때인 1784년에 그린 그림이고, 무흘구곡도첩으로 전하고 있다.
정구 선생은 성주 출신으로 이황선생과 조식선생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통천군수, 우승지, 강원도관찰사, 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분야에 통달했고 특히 예학(禮學)에 뛰어났다. 41세가 되던 1583년에 후진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금의 회연서원 자리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마련하고 방 이름은 불괴침(不愧寢), 창문은 매창(梅窓), 당호는 옥설헌(玉雪軒)이라고 지었다.
뜰 앞에는 백 그루의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백매원(百梅園)이라 불렀다. 이때의 초당은 정구가 벼슬길에 나가 있는 동안 퇴락해 그가 63세가 되던 1605년에 다시 복원했다. 그의 사후 7년째가 되던 1627년 회연초당 자리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는 회연서원이 건립되었으며, 1690년 왕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