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日出)
일출(日出)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3.01.0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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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금호강에서 옛 기억을 더듬다

 

새해 아침이다. 일출을 보려고 아양교 해맞이 명소를 찾았다. 미리 온 사람들이 다리위에서 북적인다. 아빠 목마를 탄 아이가 신이 났다. 팔짱을 낀 연인들의 모습도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금호강 저 멀리 여명이 발갛게 띠를 두른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왁자지껄 시끄럽던 주위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동쪽 하늘이 더욱 붉어진다. 어둠을 뚫고 해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그 빛이 너무 강렬하여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온 세상에 레이저를 쏘듯 발산하는 일출이 황홀하다. 강물이 서서히 핏빛으로 물든다. 

해맞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사람,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건만 처음 보는 사람마냥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 순간 포착을 잡기 위해 카메라 셧터을 연신 누르는 사람도 있다. 둥근 해가 순식간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온 몸을 드러낸다. 그 속으로 지난 날 양동이를 머리에 인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기억속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주소가 하나 있다. 그곳은 '강원도 삼척군 삼척읍 정상 1리'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내리막길로 치닫던 시절, 우리는 대구역에서 강원도행 밤 기차를 탔다. 희붐한 새벽을 뚫고 도착한 낯 설은 언덕위에는 조그만 초가집이 있었다. 

한 두달이 지나자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아버지는 오징어잡이 어선을 탔다. 어선은 왕방울만한 조명을 주렁주렁 달고 밤바다를 헤쳐나갔다. 오징어는 깊은 바닷속에서 그 빛을 보고 몰려온다고 했다. 오징어잡이 어선은 다른 어선과는 달리 해가 서산에 기울면 출항하여 새벽녘 동이 틀 무렵 부둣가로 입항한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 고깃배가 도착할 즈음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마중을 나가셨다. 어쩌다가 고깃배가 만선일 때에는 선장과 어부들의 입가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보이지 않던 갈매기도 어디서 날아왔는지 뱃머리를 빙빙 돌며 환호했다. 질 좋은 오징어는 경매단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어머니의 양동이도 그날 만큼은 물고기로 가득 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머니의 양동이가 머리위에서 아슬아슬 곡예를 했다. 새벽을 열고 아침해가 두둥실 떠오르면 양동이도 생선도 금빛으로 물들었다. 얕트막한 언덕을 지나 비탈길을 돌아 온 어머니는 "휴유 휴유" 가쁜 숨을 몰아냈다. 그 때 알았다. 숨비소리는 바다속에서 해녀들만이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가 지척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양동이를 함께 내렸다. 생선비늘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몇 시간이 지나자 아버지가 쌀 포대를 어깨에 지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오셨다. 까만 밤을 지새며 새벽이 올 때까지 망망대해에서 고기잡이로 외롭고 힘들었을 그들에게 일출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머니는 버선발로 아버지를 반기며 얼큰한 오징어 내장탕을 끓이셨다. 지금도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밤에는 장작불에 구워 먹던 그시절 피대기 오징어의 진미를 잊을 수가 없다. 

금호강이 햇살을 품는다. 등 뒤에서 연인이 소곤소곤 속삭인다.

"해가 진짜 동그랐네!"

"그럼 네모 인 줄 알았어?"

다정한 그들의 새해 소망이 궁금하다. 나는 살며시 뒤돌아 본다. 따뜻한 새해 첫 눈맞춤이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