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규 수필집 '꿈 찾아가는 길'을 읽고
최성규 수필집 '꿈 찾아가는 길'을 읽고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2.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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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 하나가 갈퀴 손으로 “네 이놈!”하고 목덜미를 움켜잡는다
살이 철철 흘러내릴 정도로 쪘다. 200kg은 넘어 보인다
보물 제199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여명. 이원선 기자
보물 제199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여명. 이원선 기자

산을 왜 오르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르고, 또 어떤 이는 내려오기 위함이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것은 정답이고 저것은 오답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정상에 올라서든, 중도에서 돌아오든 목적하는 바에 따라 이야기를 만나고 얼마간의 체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홀로 산을 오른다. 인시(寅時)를 갓 지난 밤길에 칠흑 같은 어둠이 온몸을 감싼다. 9월의 하순이라 숲속으론 여름의 잔재가 그득하다. 앞으로 치닫는 얼굴로 훅훅 달려드는 후텁지근한 열기로 이내 등 쪽으론 작은 시내가 생겨난다. 문득 지인의 비웃음 섞인 말이 뇌리를 스친다.

“사진도 좋지만 충신이다. 충신!”

이 더위에 나는 왜 호젓한 이 길을 따라 걷고 있을까? 답은 이미 마음이 알고 있지만 되묻는 내가 한심스럽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가 그 산에 있어서 오르건만 속으로는 연신 미친놈이라 징치(懲治)하고 있다. 게다가 등산이란 단어에 겁을 집어먹은 다리는 초입에도 벌써 무겁다는 느낌이다. 얼마를 가지 않았는데도 턱까지 숨이 차오른다. 또 얼마를 오르자 더운 입김이 희뜩희뜩 어둠 속으로 잠겨간다. 고개를 들자 짙푸른 숲은 웅크린 곰의 형상으로 어깨를 짓누른다. 문득 잊힌 과거의 기억 하나가 갈퀴 손으로 “네 이놈!”하고 목덜미를 움켜잡는다.

오래전, 장마가 갓 끝난 여름철에 이 길에서 민달팽이 한 마리를 밟은 적이 있다. 어디를 가던 중일까? 꼬물꼬물 기던 녀석은 당장에 죽었다. 하산길에 마음이 바빠 미쳐보지 못한 내 눈의 불찰이다. 허옇게 뒤 집어진 죽음 앞에 종일토록 우울했다. 부처님이 굽어보는 아래 살생이라니! 그 때문인가? 산을 오르는 내내 눈앞으로 허연 기운 하나가 희번덕거린다. 원수를 갚기 위해 오늘만 기다렸다는 듯 주위를 맴돈다.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달려들까? 조바심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고 싶다. 어느새 발자국 하나까지 더해 등께로 따라붙는다. 그뿐만 아니라 서낭당에나 있을 법한 토째비(‘도깨비’의 방언)까지 인광을 뿌려 흩날리고, 달걀귀신이 혀를 빼물고는 미친년처럼 나돌아다닌다. 어둠에 빗댄 무서움 때문일까? 아니면 나약한 자신 때문일까? 손전등에 의지하여 오르는 산길에 오만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현실은 도피하고 싶은 조바심에 종종걸음으로 내닫는데 뒤를 밟는 발자국이 줄기차게 따라붙는다. 빠르고 늦은 걸음에 맞추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박거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들리는 것이라곤 괴괴한 울음소리와 앞뒤 양옆을 옥죄어 끊임없이 달려드는 칙칙한 어둠뿐이다. 절체절명의 이 순간에 나를 지켜낼 가장 쓸만한 무기로는 무엇이 있을까? 예고 없이 달려드는 산짐승을 나는 무엇으로 막아 낼까? 급하게 행장을 더듬는다. 하지만 애써 찾아낸 무기라곤 카메라 삼각대 하나가 전부다. 이 허접한 쇠막대기 하나로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새벽녘으로 찾아든 낯선 이방인의 안전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을까? 작가는 심심 산중에서 맞은 비박에서 스틱을 무기로 삼았다고 한다.

“스틱 하나는 길게 빼서 왼쪽에 눕혀 놓고, 나머지 하나는 짧게 해서 오른쪽에 꽂았다. 혹시나 어떤 무식한 짐승이 달려든다면 긴 무기도 필요하고 짧은 무기도 필요하다. 온종일 나의 무릎을 보호해 주던 스틱이 밤에는 호신용으로 쓰인다.” 지팡이처럼 짚고 가는 삼각대에 오늘 밤을 의지하고 보니 파리목숨처럼 위태한 지경이다.

얼마를 가지 못해 기어이 뒤를 돌아본다.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멀리서 들리던 발자국이 발뒤꿈치까지 따라붙는 느낌에는 절로 눈이 돌아간 탓이다. 손전등도 같이 따라간 그곳에는 시꺼먼 어둠이 달려들다가는 때아닌 불빛에 화들짝 놀라 난분분 흩어진다. 그런 다음 저만치에서 시치미다. 눈을 맞추기가 겁나 고개를 들자 점점이 뚫어진 하늘에는 무심한 잔별이 ‘그러게’하며 무심하여 초롱초롱하다. 이쯤에서 칠불암에 기거하는 스님들의 도량석, 염불 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산천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고요하기만 하다. 긴장을 풀 듯 마름 침 한 모금이 절로 ‘꿀~꺼덕’ 하는 소리를 내며 울대를 지나 저 아래께로 ‘뚝’하니 떨어져 내리다. 쭈뼛쭈뼛 솟는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어 다시 산길을 옥죄어 다잡는다. 돌아설 수 없기에 무서움이란 바다에 몸뚱이를 내 던진 기분으로 총총히 걸음이다.

“이~깐 무서움이 무슨 대수라!”하고 호기를 부리지만 호젓한 산길에는 여전히 가슴이 떨려 무섭다. 하지만 한걸음이 무섭다고 산허리에 진득하게 깃든 어둠과의 지난한 두꺼비씨름을 끝낸 발걸음은 기어이 칠불암에 닿는다. 마지막 돌계단을 오르자 사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한데 암자에서 흘러나온 빛이 앞마당을 고고히 밝히고 보름을 하루 지난 하현달은 까딱까딱 산허리로 두둥실 걸렸다. 이제야 삼각대가 제 역할을 할 때다. 이날의 사진으로 2021년 대구 동우회 합동전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다시 산을 오른다. 산죽이 우거진 터널을 지나서 나무계단을 탄다.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은 어느 한때는 멧돼지 아닌 멧돼지 되어 네발로 기어오르던 등산로가 현대에 이르러 호사를 누린다. 계단이 끝난 정상에 오르자 멀리 불국사와 울산으로 가는 길에 불빛이 휘황찬란하고 토함산 산정 위가 새벽 여명으로 불그스레하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 뭉클하는 호연지기가 끓어오른다. 욕심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야~호!’하고 환호성이라도 내지르고 싶다. 하지만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눌러 참는다. 나는 깨었다지만 뭇짐승들은 여전히 단꿈에 젖었을 시간이다.

어느새 보살님 얼굴 위로도 붉은 여명이 곱게도 내려앉았다. 산허리를 어루만져 가는 여명이 보살님이 자비를 내리듯 골골로 골고루 스민다. 부서지는 햇살에 어둠을 물린 산하가 세안을 마친 듯 민낯으로 아침을 맞는다. 산천경개에 취해 고요히 앉았는데 멀리서 산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에다 공포심을 심는다. 그들은 이 아침 왜 울음 울까? 외박한 남편을 두고 부부싸움이라도 벌이는 걸까? 첫 새벽에 찾아든 밤손님을 맞아 환영의 춤이라도 추는 걸까? 아니면 빈손으로 찾아든 산객을 두고 축객령이라고 내리는 걸까? 기분 때문일까? 둔탁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점차로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무의식중에 주위를 둘러 무기를 찾는다. 하지만 여전히 눈에 든 것은 카메라 삼각대가 전부다. 그나마 다행은 내가 위쪽을 선점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산행길에서 실제 멧돼지와 맞닥뜨렸다고 했다. 얼마나 무섭고 긴장되는 순간이었을까? 또 무의식중에 진땀은 얼마나 흘렀을까?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데! 항우장사의 심장을 가진 듯 대단한 담력이 아닐 수 없다.

“놈은 위에 섰고 나는 아래에서 쳐다보는 불리한 형국이다. 길의 경사도는 약 40도 정도로 가파르다. 길 가운데 섰으니 덩치가 산더미만 하게 보인다. 살이 철철 흘러내릴 정도로 쪘다. 200kg은 넘어 보인다.” 지금 산비알(‘산비탈’의 방언) 저 밑에서 울어 에는 저놈의 크기는 얼마만 할까? 살은 철철 쪘을까? 마지막 발악일까? 나에게도 오기는 있다고 객기를 부려보지만 이미 그 콩알같이 조그마한 심장을 안다는 듯 보살님은 빙그레 그저 웃기만 한다. 너 같이 어리석고 용렬한 인간은 수도 없이 봤노라며 그따위 오기라면 자연 감상이나 오롯이 하란다.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아침을 맞는 중이란다. 자애로운 보살님의 충고에 따라 눈을 든 하늘에는 붉은 파도가 일렁인다. 흩뿌리는 듯 부드러운 햇살 아래 온갖 잡새들이 자연 예찬으로 제각각의 목청으로 지저귀는 아래로 또 다른 사바세계가 질펀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단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 저곳이라며 내려가란다. 어차피 너도 미물처럼 하찮은 인간, 그만치 올라왔으면 내려갈 줄 알아야 한다며 등을 떠밀어 재촉이다. 두려움 하나 내려놓고 그리움 한 자락 가슴에 품었으면 만족하지 않느냐며 눈길을 발치 아래로 돌린다. 그러고 보니 나의 오늘 산행은 내려가기 위해 올라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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