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2.2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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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거지를 보는데 수다스러우면서도 양 볼 가득 심술이 뚝뚝 흘러 보인다
쥐도 새도 모르게 보쌈이 되어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르겠단다
딸자식을 가진 어머니로서 하늘이 내려앉듯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깜찍하고 고슬고슬한 이것아 너는 하고많은 집을 두고 어쩌자고 내 집으로 왔니? 하기~사 너라고 오고 싶어 왔겠니! 잡혀 온 주제에 네가 무슨 죄겠나! 기왕에 내 집에 왔을 바엔 사이좋게 지내보자!”하고는 양 볼에 번갈아 비빈다. 부드럽고 따뜻하기가 누렁이를 보듬은 것 모양 한량없어 더 서럽다.

삽짝만 보면 눈에 밟혀서 어떻게 잊을까 싶었는데! 바람에 개밥그릇만 떨렁해도 그리움에 젖어 밖을 내다보다간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품 안에 든 백구의 검은 눈동자와 눈을 맞추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체온을 나눈다. 한데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도대체가 짖을 줄을 모른다. 호불호가 없어 세상만사가 마냥 좋기만 한 모양이다. 하룻강아지 모양 어렵고 무서움을 몰라 삽짝으로 낯모른 아낙네가 들어섰건만 양발을 치켜들어 오두방정으로 환영 인사다. 그런 백구를 향해 길거리를 배회하는 똥개를 맞닥뜨린 듯 손사래를 치는 아낙네는 이유 없는 발길질에 구시렁거려

“이런 이 조막만 한 것이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러니!”하며서 들어서는 아낙을 보는데 키는 작아서 작달막하고, 얼굴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것이 넙데데하여 크다. 입술은 두툼하여 두꺼우며 코는 이마 쪽으로 잡아당긴 듯 약간의 들창코 같고, 눈은 가늘며 옆으로 길게 찢어져서 은근한 매서움이 서렸다. 양 볼로는 죽은 깨가 점점이 박혀서 결코 예쁜 얼굴은 아니다. 게다가 별로 덥지도 않은 날씨건만 오른손으로는 손수건을 집어 들어 연신 이마를 훔치고 왼손으로는 치맛자락을 한껏 잡아당겨서 걸어오는데 엉덩이의 두리뭉실한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바람에 푸짐해 보이는 엉덩이의 살짐이 좌우로 실룩거려 흔들린다. 살찐 오리가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모양새만 같다. 경박스러워 보이는 여인네의 행동거지를 보는데 수다스러우면서도 양 볼 가득 심술이 뚝뚝 흘러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 소설로만 읽어오던 심청전에 등장하는 젊은 뺑덕어미를 빼닮아 보였다. 생판 모르는 젊은 아낙을 맞은 할머니가

“어느 집 뉘를 찾아오셨는지요?”하고 묻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지 숨을 고르던 여인이

“누구는 누구 집이겠소! 내 듣기로 여기가 끝순네 집이라는데! 맞소!”하고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습관처럼 문지르더니

“아이고 목말라라! 어디 손님 대접으로 냉수나 한 대접 얻어먹읍시다!”하기에 할머니가 못 이기는 척 쪽박 한가득 냉수를 떠 오자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제풀에 겨워 ‘컥컥’거린다. 급하게 먹던 물에 사레가 든 모양이었다. 경박스러운 몸짓에 생면부지임에도 미운털이 박힌 할머니가 속으로 고소를 머금을 때 ‘컥컥’ 목을 다스리던 여인은 주제도 모르고 젊은 왕건이 정주 땅을 지나다가 우물가서 신혜왕후 유(柳)씨를 만난 장면을 떠올리게 하듯

“버들잎이라도 두어 잎 띄워 줄질 않고요!”하고는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원망하더니

“그러고 보니 댁이 끝순이 어미로구먼! 내 물어물어 찾은 끝에 찾기는 바로 찾아온 모양이네!”하더니 할머니의 대답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이다. 할머니가 뭐 이런 무례한 여편네가 다 있나 싶어 돌려세우려다 문득 집히는 바가 있어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을 삼켜 그림자처럼 뒤만 따른다. 여인의 집안 들러보기는 압수수색 영장을 지참한 순사처럼 치밀하고도 집요했다. 그냥 지나칠 법도 한 홀간(벽과 벽사이 같은 좁고 길다란 공간)까지도 일일이 살펴본다. 뒤란을 둘러서 장독대의 단지란 단지를 하나하나 일일이 열어서 검사다. 방문이란 방문은 있는 대로 열어서 방구석까지 샅샅이 살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으로 들어가 땀에 찌들고 세월에 절고 절어 너덜너덜한 속옷 나부랭이가 잔뜩 든 반닫이 농을 지나쳤다는 것이다. 까딱하면 감추고 싶은 치부가 죄다 드러날 판이다. ‘욱’하는 성질머리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머리채를 잡아끌어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은 할머니다. 하지만 딸 가진 어미가 죄인이라고 그저 나 죽었네 하며 쉬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집안 안팎을 미친년처럼 돌아친 여인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른손에 쥔 예의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는 중에 할머니를 향해

자신은 재 너머 아무개 집 마님이 보낸 매파라고 했다. 한데 마님의 명에 따라 집안을 속속들이 둘러 본바 그 댁과는 기울어도 너무 기운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 차이라 저울추를 얹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이런 집안에 뭐가 아쉽다고 그 댁에서 청혼을 넣었는지 모르겠단다. 숟가락몽디는 물론 부지깽이조차도, 뭣하나 똑바른 세간살이 하나 없는 집구석에 어째서 청혼을 했는지 모르겠단다. 웬만하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고, 주는 구전에 복채나 챙기면 되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란다. 후일 원망은 물론 일이 까딱 잘못 틀어지면 물볼기 정도는 아니겠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보쌈이 되어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르겠단다. 일의 성사도 좋지만 대충 엇비슷하여 비교할 대상 정도는 되어야 발 벗고 나서도 나설 수 있단다. 실낱같은 건덕지(‘건더기’의 방언)가 있어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로서는 도저히 어렵다며 길게 한숨이다. 허탈한 듯 잠시 주위를 살펴 지금껏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서는 좌우간 사과한단다. 하지만 모든 실상은 알아버린 지금으로선 자신은 따따부따 나설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오늘 본 그대로를 그 댁 마님께 말씀드리고 자신은 곱다시 물러날 거란다. 그 길만이 시답잖지는 않지만 이날 이때까지 자신이 지켜온 매파란 자존심에 누가 되지 않는다며 훌쩍 떠나버린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난 여인의 체취가 지워져 가는 삽짝을 두고 방망이질을 하는 가슴 모양 방방 뛰는 백구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맥이 빠져 무람없는 가운데 눈앞이 부윰하다. 그렇다고 그 여인을 원망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는 연인이 거론한 그 집으로 말하자면 할머니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지체 높은 집안이다. 마름을 두어 소작인을 관리할 만큼 부잣집에 조선 시대를 들어 대대로 관록을 먹어오던 집안이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인근의 내 노라! 하는 집안의 일등 신붓감이 사주단자를 밀어 넣어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소문은 이미 동네에 자자하여 모른 사람이 없을 정도다. 신랑 자리의 나이가 혼기를 조금 지났을 뿐으로 학문으로 치자면 대처에서 대학물을 먹었으며, 일찍이 천자문을 비롯하여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을 두루 섭렵하여 인근에서는 따른 자가 없을 정도로 학문이 출중하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곧장 관직의 높은 자리로 나아갈 몸으로 따다 놓은 당상이라는 데는 할머니로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자리의 신랑감이다. 그런 집안에서 청혼이라니! 혼을 빼듯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자리로 식겁은 둘째로 할머니는 그저 봄 꿈에 취한 듯 어안이 벙벙하여 마당 한가운데에 퍼질러 앉았을 뿐이었다. 한참을 미명이란 꿈에 빠져 헤매다가 온 듯 앉았던 할머니가

“어디 가당키나 한 자린가? 사람탈만 써서 사람형상에 사람이지 무지렁이와 다를 바 없는 우리네야 어림도 없지!”하며 엉덩이를 털듯 잊어버리기로 했다. 개차반 같은 행동거지를 생각하자면 괘씸하기 짝이 없겠지만 그 여인의 말마따나 호가호위든 맡은 바의 책무를 다하는 중에 일어난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만큼은 알고 싶었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고모로부터 비롯되었다 여기고 있었다. 문득 가슴이 섬뜩하다. 철부지의 고모에게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싶어서다. 제발 하는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문득 떠오는 그런 사고만 치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비는 것이 고작이다. 아닌 게 아니라 딸자식을 가진 어머니로서 하늘이 내려앉듯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밥숟가락만 놓았다 하면 밖으로만 나도는 고모를 두고 할머니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달콤한 말로 속삭여 손목을 잡아끄는 데로 끌려가 선을 넘었을 거란 생각에 스스로 자지러진다. 생각이 또 꼬리를 문다. 할머니는 그날 오후를 고모를 기다리는 마음에 일각이 여삼추에 가슴앓이로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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