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5)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2.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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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보아도 마음을 읽고, 뒤태만 보여도 반가웠던 청솔댁이다
청년들조차 고모를 통해 군침만 흘릴 뿐 혼담 넣기를 주저하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렸는지 검은 눈동자 가득히 눈물이 그렁그렁해 보이더란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아무려면 미운 정, 고운 정으로 함께한 세월이 그 얼마인데!, 성~님의 애틋한 그 마음을 이 동생이라고 어찌 모를까요? 눈빛만 보아도 속에 들어갔다 온 모양 훤하네요! 그런데 부끄럽게도 어째 그랬다요! 잔칫상까지 차려가며 부탁, 부탁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늘 내 배로 내지른 딸내미처럼, 열 손가락 중 한 손가락처럼 아려서 곱고 귀하게 생각했구먼요!”하는 할머니는 꼬깃꼬깃 접은 옷고름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또 한 겹을 눌러서 접는다. 흐린 눈길 너머로 눈물지으며 고개를 숙인 영천댁의 가냘픈 어깨가 고모와 뒷모습과 겹쳐서 흔들거린다.

더 없는 지기를 잃은 마음은 가슴을 도려내듯 뚫어지는 기분이었다. 부부지정으로 백년해로를 언약한 할아버지를 앞장세울 때와는 달리 또 다른 슬픔이 전신을 감싼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는 삶에 대한 절망으로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면 청솔댁의 죽음 앞에서는 미래에 대한 꿈을 저당 잡혔다는 생각에 하늘이 까만색이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에 며칠이나 맥을 놓은 할머니를 위로차 감골댁, 성주댁, 김천댁이 수시로 들려 안부를 묻고 어머니가 정성을 다했다지만 마음속 깊이 고이 담아 지낸 청솔댁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얼굴만 보아도 마음을 읽고, 뒤태만 보여도 반가웠던 청솔댁이다. 소원했던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듯 자투리 시간만 생겼다 하면 껌딱지가 붙어 다니듯 함께했던 시간 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딱히 말이 필요 없었다. 툇마루에 나란히 걸터앉는 것만으로 할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족했었다.

죽는 것도 타고난 복이라고 그렇게 잠자듯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는 모처럼 만에 맞은 한가한 시간을 들어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여 돌아보고 있었다. 이팔청춘을 갓 지난 나이에 할아버지와 혼례, 그리고 꽃자리마다 달리는 대추처럼 주렁주렁 생겨나는 자식들, 그중 넷은 가슴에 묻고 이 생애 둘만 남았다. 둘 중 딸년이란 것은 14년간이나 병석에 누워 온갖 애간장을 녹여왔다. 그나마 부지런한 아버지가 복이 있어선지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를 며느리로 맞고는 손자까지 얻었다. 그만하면 잘 살아온, 번듯하게 자랑으로 삼을 정도의 삶은 아닐지라도 어디에다 말은 붙일 만하다 여겼다. 그러다 문득 아직 못다 푼 숙제 하나가 남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버팀목같이 든든한 오라버니가 있어 어느 정도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당신 손으로 손수 짝을 찾아서 머리를 올려주고 싶었다. 이일 만은 꼭 당신 손으로 해주고 싶었다.

딸자식을 둔 어머니라면 욕심을 떠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했다. 외손자, 외손녀와는 이생에 인연이 없어 얼굴 대면이 힘들다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 시집만은 보내주고 싶었다. 문득 할 일이 생겼다 싶은 할머니가 슬며시 일어났다. 아직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홀연히 자리를 턴다.

그동안 반쪽짜리 딸자식 같아 할머니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틈이 날 때마다 연이 닿는 이웃을 통해 고모의 선 자리를 부탁해온 터였다. 한데 이상했다. 다들 인근을 통틀어서 빼어나게 예쁘다고 추켜세울 뿐 함흥차사를 보낸 듯 하나같이 묵묵부답이다. 쓰다 달다 말이 없다. 고슴도치처럼 제 어미 눈에만 예뻐 보여서 그러는 걸까? 할머니가 자문자답으로 질문하고 답을 구해 보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예쁜 꽃이 피어 사방으로 향기를 풍기면 벌 나비가 날아드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그런 이치가 고모를 통해서는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 이상했다. 병치레 끝에 지레짐작으로 석녀(石女: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 판단해서 그런가? 선덕여왕처럼 미모만 그럴 싸, 고모도 여자로서의 향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럴 수가 없다 여겼다. 하물며 혼기를 꽉 채운 동네 청년들조차 고모를 통해 군침만 흘릴 뿐 혼담 넣기를 주저하고 있다. 강자아(강태공)처럼 위수(渭水)에서 곧은 낚싯바늘로 종일토록 드리운 것도 아니고, 기다림에 지친 할머니는 속으로 답답했다. 재물, 집안, 학식을 따져서 탐하는 것도 아니건만, 엇비슷한 조건의 그 누구라도 혼담을 넣어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도 받아들일 것인데 부탁은 그저 부탁으로 여겨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던 차 할머니의 애타는 마음이 통했을까? 봄으로부터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어느 해의 5월도 하순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마당에서 특별한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철수(나)를 데리고 마을을 가고 없었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말벗으로 감골댁이 그리웠다. 하지만 동네 아낙들이 죄다 모이는 판국에 감골댁인들 함께 어울려지느라 올리는 만무했다. 한데 겨울을 지나면서 거무튀튀하게 색 바랜 싸리바자 위로 사람의 형상인 듯 낯선 머리가 언뜻언뜻 비친다. 할머니가 이 시간에 누굴까? 하여 실눈으로 살펴서 보는데 동네의 눈에 익은 아낙의 두상(頭像)은 아니다. 손님의 발걸음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삽짝으로 자리를 틀어 앉은 백구였다. 진작부터 인기척을 느꼈는지 앞발을 치켜들어 재롱잔치다.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사람 그림자만 비쳤다 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저 혼자 요란법석이다. 도둑이 든다 해도 멋모르고 달려들 녀석이고, 백설공주처럼 독이든 사과라 해도 내 남을 안 가려 냉큼 받아 삼킬 기세다. 설령 개장수가 와도 제 죽을 자린지도 모르고 배를 발라당 뒤집어 아양을 떨 녀석이다.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럽기는 누렁이에 못지 안았다. 반갑다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황구(黃狗)에 못지않아 누렁이로 인해 비워버린 마음을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친구처럼 말벗처럼 키워오던 누렁이를 이웃 동네에 팔아 버렸다. 팔고 싶어 판 것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로서도 궁여지책, 눈물을 머금은 결정이었다. 그러니까 작년 6월로 하지(夏至)를 지나기가 무섭게 동네에서는 초복(初伏) 달임으로 누렁이를 손에 꼽아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할머니가 어떻게든 누렁이의 천수를 지켜주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의 일관 주장이었다. 축생이란 것은 본래부터 사람을 위해 태어나고, 사람을 위해서 살고, 사람을 위해 가마솥을 무덤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딱히 반박할 논리가 없었다. 생각다 못한 할머니는 최소한 당신 눈앞에서 누렁이가 죽어 나가는 꼴은 못 본다는 고집에 따라 이웃 동네에 팔아버린 것이다. 대신 할머니는 누렁이를 판 돈을 곱다시 내놓아 다른 개를 사들여 복달임으로 사용토록 했다. 그런 한편으로 ‘횡’하니 비워진 누렁이의 빈자리를 바라볼 때면

“에~고 불쌍하고 가련한 것! 이것아 내 너를 위해서는 예전처럼 동네 사람들과 척을 지고 지냈으며 싶었구나!”하며 쓸쓸해 했다. 누렁이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팔려가는 당일도 할머니는 의도적으로 집을 비웠다. 그날 할머니를 대신한 이는 어머니가 아닌 감골댁이었다. 할머니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 감골댁은 그날은 악역까지 자처했다. 감골댁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고 마지막으로 누렁이의 눈을 보는데 이미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렸는지 검은 눈동자 가득히 눈물이 그렁그렁해 보이더란다. 이별이 얼마나 아픈지 애간장이 녹아내려 차마 쳐다볼 수가 없더란다. 그날 이후 석별의 정이 가슴에 사무친 할머니가 이생에 두 번 다시 개는 안 키운다고 일삼아 노래를 불렀건만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의 의지와는 달리 어느 날 감골댁은 전신이 새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할머니가 일 없다고 손을 홰홰 내저어도 들은 체도 않고는

“누가 강생이(‘강아지’의 방언)를 10마리나 낳아 골칫덩어리라며 공으로 주길래!”하고는 누렁이가 앉았던 자리에 묶어놓고는 가버렸다. 콩 한 되박은 축났을 법도 한데 거저 얻었단다. 감골댁이 가고 난 후 백구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배를 홀라당 뒤집는다. 어느새 백구는 누렁이의 환영으로 할머니를 희롱하고 있다. 꼬물거리는 백구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자석에 이끌리듯 덥석 껴안고는 혼잣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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