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오기를 관찰하는 우포 바라기
▶정봉채, 그의 늪을 보다
돌아갈 길을 스스로 차단했기 때문에,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외로웠던 남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늪으로 가서 늪을 담은 남자. 정봉채 사진작가는 늪을 닮았다. 사슴같이 선한 눈 속에 늪이 들어있었다.
이른 새벽 늪은 거대한 커피잔이 된다.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 같은 커피잔에서 입김같은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아름다움을 취하려면 내가 가진 한 부분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 모든 예술은 작가의 욕망의 표현이다. 욕망의 근원은 사랑으로, 사랑하는 만큼 내 몸은 병들어간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 안에 우포가 체화될수록,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질서로 회귀하려는 자신을 보았다. 일시적인 명예와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겸손하고 한없이 작은 사진작가가 되는 것, 그럴수록 자연은 숨은 속살을 보여준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연은 사람이 고립되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비로소 존재를 드러낸다. 정봉채 자연 사진가는 그 광활한 자연을 정지된 이미지로 고정된 프레임에 담는 사람이다.
▶정봉채 작가의 말
물도 뭍도 아닌 땅 우포, 처음 마주한 우포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 내가 살았던 곳 같은, 지난 어느 생에선가 만난 본향에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안온한 평화가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매료되었단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묘한 느낌. 마치 우포가 내 손을 잡고 이끄는 듯했다.
우포는 차츰차츰 내 안으로 걸어들어와 내 영혼의 풍경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늪에 살 것이다. 그러나 늪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늪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하루하루 우포를 내 영혼의 그릇에 담을 뿐이다.
▶환경의 지표종, 따오기
조류 중에서 가장 민감한 새가 따오기이다. 따오기는 환경의 지표종이라 할 수 있다. 주거, 생활, 자연에서 환경을 알리는 게 조류이다. 나무 심고, 공기 맑으면 새가 날아든다. 감각 쪽에서는 새를 따라잡을 수 없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환경이 좋지 않은 장소로 볼 수 있다.
따오기는 친숙한 새였다. 1930년대 따오기 동요는 나라 잃는 민족의 설움, 처량함을 표현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님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구슬픈 소리
날아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 어머님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나도 나도 소리소리 너 같을진대
달나라로 해나라로 또 별나라로
훨훨 활활 떠다니며 꿈에만 보고
말 못 하는 어머님의 귀나 울릴걸
훨훨 활활 떠다니며 꿈에만 보고
말 못 하는 어머님의 귀나 울릴걸
우리나라에 서식하던 따오기가 사라지게 된 것은 환경 요소 때문이었다. 쌀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화학비료와 농약 살포로 인해 친환경 미꾸라지와 지렁이가 사라지고, 논습지 새인 따오기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19년 따오기를 복원하여 40마리 방사를 시작으로 따오기 살리기 프로젝트에 들어갔으나 당시에는 거의 다 폐사하였다. 현재도 꾸준히 2~3년생을 방사하고 있는데, 자연 폐사도 있지만 수리부엉이나 담비 등의 천적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따오기 수명은 10~15년이며, 판문점까지 날아간 것을 포착했으나 우포늪을 벗어나면 대부분이 죽는다.
정 작가는 우포늪에서 따오기를 관찰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가 최고의 덕목은 겸손이다
갤러리에서 작가가 전하는 말은 숭고했다. 사진 찍는 기술은 4년 정도 지나면 95% 이룬다. 그러나 96%를 이루는 과정이 어렵다고. 그 선을 넘어야 예술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고 한다. 정 작가는 카메라 앵글을 고정하고 78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킨 적도 있었다. 헛것이 보이고 나무가 흔들렸다. 무의식세계 동원되었으며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예술가는 진리를 드러내고, 사건화를 시켜야 한다. 예전 것이나 일상의 흔한 것은 사건이 되지 않는다. 예술은 처음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며, 그 특별함과 시간은 본인이 만들어야 한다.
정 작가는 22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을 깨닫게 해 준 것이 우포늪이라고 하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면 눈에 뵈는 게 없다. 내가 작아지니 다른 게 커 보이더라’ 동물의 시선을 느끼며, 그들이 다가오는 발자국에 가슴 벅찼을 순간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사진은 ‘본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도구이며 작가의 눈으로 찍는다. 사진은 마음의 창으로 보는 것이며, 사진가는 마음을 정화한다. 사물에 겸손하게 다가가서 감성을 전달하는 것이 사진작가의 할 일이다.
▶정봉채 작가의 이력
지난 2000년 우포를 만나 22여 년간 우포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전자공학과를 나와 엔지니어로 일했고 10년 넘게 교사생활을 했지만, 사진에 대한 갈망이 가시지 않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우포늪 가까운 곳, 벽돌 하나하나까지 손수 지어 올린 갤러리 옆에 살며 우포를 호흡하고 있다.
2008년 창원에서 열린 제10차 세계 람사르총회의 공식 사진작가로 선정되어 우포늪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렸다. 여러 대학에서 사진을 가리켰고 20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2009년부터 스위스 아트바젤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싱가포르 등지의 아트페어에 초대되는 등 세계를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진집 <우포늪-나의 렌즈에 비친 자연 늪의 세계>, <우포-지독한 끌림>, <우포바라기>, 사진에세이 <우포의 편지>, <내 마음의 섬>이 있다.
▶지독한 끌림
지상에 빛을 내어주는 하늘
느리게 흐르는 적요의 시간
수채화처럼 맑은 아침
다정히 속살대는 햇살
곧 밤이 올 텐데도
무람없이 풀어놓는 처연한 핏빛
땅거미 내리는 밤
우포의 시작과 끝
지독한 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