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 석종출 기자
  • 승인 2022.12.01 10:1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 누가 어떤 연유에서 한 말인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라는 말을. 근자에 성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 법의 판단으로 죗값을 치르고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살 수 없는 존재로 낙인 찍힌다.

애초부터 죄를 짓지 않았으면 그런 처우를 받지 않을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필자가 결코 그들을 감싸거나 동정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이주나 거주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집단 시위가 바르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극도로 개인화된 이기주의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이다.

나는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앙 활동이란 명분으로 어떤 종교적 행위를 해본 적도 없다. 성경에서 말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한다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기독교 교단에서 죄지은 자에게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줄 수는 없을까? 불교 종단에서는 죄지은 사람이 태어난 착한 본심으로 돌려줄 묘안은 없을까?

타고난 생명 자체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 평생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잔인하다, 폭력적이다, 나쁜 일을 반복적으로 저지른다.”이런 행동에 대한 의학적 개선 방법은 없을까?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애시 당초에 이런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맞다. 생명존중의 측면에서 어떤 상황에서는 수백 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전쟁이 아닌 경우에도 그렇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상황과 결과에 따라 무겁고 가벼움, 선과 악, 수의 많고 적음 등등이 고려되겠지만 죄는 죄이므로 마땅히 비난받고 처벌받는 것이 맞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추상적인 면이 다분하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각자의 몫이다. 논어에서 사람다움은 인(仁 )을 말한다. 사람다움에 있어서 ‘어질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다. 또한 인은 현대사회에서는 특별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자질이나 고귀한 태생의 사람이 가진 품성에서 차츰 벗어나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지향해야할 가치를 말한다. 인은 사람이 갖추어야할 여러 덕목 중에서 차츰 비중이 높아져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논어에서는 인의 설명 중에 가족윤리를 아주 중요하게 말한다. 가족윤리는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이유로도 해체될 수 없고 단절될 수 없는 절대적 연결로 본다. 지엄한 군신의 관계에서도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신하가 그만두면 단절이 되고 절친한 친구나 남녀의 사이도 애정과 믿음이 식으면 모르던 사람처럼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은 천륜이므로 그럴 수 없다. 비록 어떤 사람이 죄인일지라도 가족은 천륜이다.

오늘날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구조 내에서의 관계망은 가족 밖의 사람과 연결지어져 있다. 우리는 때로 자연재해나 재난을 당한 가족 외의 사람들, 심지어는 나라 밖의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우리는 평소에는 매우 자기중심적이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자신의 것도 주저함이 없이 남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나와 가족관계 안에 있지 않다고 해서 모른 척하는 것은 ‘사람답지 않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웃의 재난을 측은지심으로 보는 마음이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이러한 사랑은 가족관계를 넘어서 더 큰 연대의 틀 속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인정은 자꾸 메말라 간다. 현실을 인정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픈 마음도 있다. 가난하고 힘들고 병들고 지친 영혼뿐만 아니라 업보를 지고 있는 사람이나 현세에서 죄를 짓고 처벌받은 그 누구도 누구의 자식이고 부모일 수 있다. ‘메멘토 모리.’ 우리는 모두가 죽음 안에 있다. 용서해 줄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