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0)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1.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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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시가 부모가 물려준 본래의 이름인 ‘개똥’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노화가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리자 환하게 꽃을 피운 갈대가 방안으로까지 날아든다
아프더라도 고뿔 정도로 앓아 무난하고 평범하게 제 삶을 살아 천수를 누렸으면 좋겠다 싶구나!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녀의 본래 이름은 ‘개똥’이, 듣기만 해도 무식하고 못사는 집안의 여식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그런 이름이다. 당시는 ‘개똥이, 소똥이, 막쇠, 돌쇠란 이름들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잔잔한 돌멩이처럼 흔한 탓에 그렇게 흠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궁중에서 그것도 궁녀의 이름으로는 부적절하여 ‘김개시’로 개명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미모도 아닌 여자가 민첩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 보니 잔꾀가 많아 광해군의 총애를 받게 되었던 모양이야! 한데 광해군은 세상에 알려진 대로,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귀동냥으로도 능히 알다시피 임금이란 칭호를 받지 못할 만큼 폭군이었지! 그런 광해군의 죄목으로는 폐모살제(廢母殺弟)를 꼽지, 어머니, 즉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하여 서궁에 가두고, 배다른 아우인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낸 끝에 증살[蒸殺]로 죽인 죄지! 하지만 그건 표면상의 큰 죄로 더 큰 죄명은 명나라와 청나라 두고 양다리를 걸치는 통에 소국으로 대국인 명나라를 올바로 섬기지 못한 죄지, 그로 인해 광해군은 능양군을 중심으로 한 인조반정을 불러왔고, 그때 김개시는 목숨을 부지코자 반정 군의 편에 섰다는 설이 있지만 끝내는 죽음을 피할 수가 없었지!”하고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는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김개시가 부모가 물려준 본래의 이름인 ‘개똥’이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녀가 비명횡사의 죽음을 피해 천수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인데 이 애의 태몽에 구슬과 연관이 있는 관계로, 구슬은 쇠로...! 즉 쇠와 연관된 이름이 좋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 한다만!”하더니

“옛날 장성 땅에 노화(蘆花)란 기생이 살았는데!”하며 이름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섬긴다.

노화 모는 당시 장성 땅을 통틀어 열 손가락 꼽아 첫손가락에 들 정도로 박색이었다. 어릴 적 손님[마마로써 천연두(天然痘)]를 앓는 중에 병세가 극심하여 얼굴은 얽었고, 후유증으로 한쪽 눈까지 굳었다. 혼기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시집은 고사하고 한번 얼굴을 본 사내라면 꿈속에 나올까 두려워 줄행랑이다. 그런 노화 모는 시집은 오감-하다 여겨 죽기 전에 남정네 품에 한 번이라도 안겨보는 것이 평생을 들어 소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김새를 돌아보는데 소원은 그저 소원일 뿐 내세는 모르겠거니와 이승을 들어서는 요원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때아닌 소낙비가 놋그릇에 따발총을 갈기듯 내리는데 그칠 줄을 모른다. 일이 성사되려고 그랬는가? 어머니는 읍에 가고 없는 가운데 노화 모가 홀로 집을 지키고 앉았는데 각중에(‘갑자기’의 방언)선비 차림의 나그네가 비를 피해 집안으로 썩 들어선다. 당황한 노화 모를 두고 하늘을 우러러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선비는 잠시 툇마루에서 유했다가 비가 그치면 곧장 떠났으면 하고 청한다. 노화 모도 처음은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에 따라 남녀가 유별하다는 핑계를 들어서 거부를 했다. 하지만 날이 날인 만큼 소낙비가 장대처럼 내려 눈앞이 안 보이는 지경이라 더는 야박하게 굴 수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날이 저물어 어둑살(‘땅거미’의 방언)이 뉘엿뉘엿 깔린다. 노화 모는 하는 수 없이 뜨내기손님을 방으로 청하여 저녁상을 보아 방에 들고 보니 겉보기와는 달리 앉은 모양새가 단정하여 학식이 풍부해 보인다. 문득 얼음처럼 차갑던 가슴께로부터 불같은 정염이 활활 일어 오르는데 속으로 저 선비야말로 하늘이 나를 위해서 인도하신 게야! 하고 여긴 노화 모다. 그 길로 부엌에 들린 노화 모는 부엌칼을 들고는 오늘 밤 소녀를 취하지 않으면 자결하겠다고 협박하여 그 선비와 하룻밤을 들어 만리장성을 쌓는다.

비가 그친 새벽을 맞아 그 선비는 올 때처럼 한 줌 바람으로 떠났다. 하지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그런지 얼마를 가지 않아 노화 모는 태기가 있음을 느낀다. 이윽고 열 달이 흘러서 노화 모가 산기를 보이자 난데없이 갈대꽃이 날아와 마당에 꽂힌다. 마침내 산고의 진통을 이기고 노화가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리자 환하게 꽃을 피운 갈대가 방안으로까지 날아든다. 이를 바탕으로 갓 태어난 아기는 여식으로, 노아(蘆兒)라는 이름을 갖는다. 후일 노아가 관기가 되면서 노화(蘆花)로 개명된다.

기생 일지홍으로부터 가무, 거문고, 가야금, 시, 서, 화 등을 지도받아 평생을 관기로 살 것 같았던 그녀는 후일 노어사의 소실로 들어가서 살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를 들어 기생이 기적에서 이름 세자를 지운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와 다름없었다. 관기는 더욱 그랬다. 그럼 에도 노화는 당시 성종대왕이 특별히 내린 왕명으로 관기라는 굴레를 벗는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이름이란 사주풀이, 주역 등을 따지고 음양오행의 흐름과 돌림자, 홀수, 짝수, 획수 등을 따져서 어렵게 지을 수도 있지만 태어날 당시의 주위 상황을 잘 살펴서 짓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삼월에 태어나서 삼월이, 오월에 태어나서 오월이, 달밤에 태어나 월선, 월향, 귀하게 자랐으면 하는 염원에 귀녀, 맏이로 태어나 갑돌, 갑순(甲順), 갑이 또 태몽으로 용꿈을 꾸었다 하여 몽룡, 몽주, 꿈에서 난을 보았다 하여 난향, 난영이라 짓는 것도 또 중전마마를 곤전마마라 부르는 것도 ‘건곤감리’에 따라 2번째로 높다는 뜻인 것처럼 말이다.

“그럼 어~무이는 마지막에 적힌 ‘철수’란 이름이 좋겠단 그 말씀이군요!”

“글쎄다. 이름이란 부르기 좋고 남들이 들어 특별한 거부감만 없으면 되지 않겠느냐? 사람들은 내남없이 자식이 태어나면 개천에서 용이 날길 바라고 내 자식은 천재라는 착각에 빠져든다고들 하더라! 한데 그게 어디 인력으로 바란다고 작명을 잘하여 원한다고 될 일이더냐? 타고난 운명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이름 따위보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더냐! 이 아이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큰 기대는 걸지 말아라! 괜한 욕심이 아이의 장래를 망칠지도 모르겠구나! 이것도 할미로서 욕심이라면 욕심일까? 난 그저 이 아이가 저 높은 자리로 나아가 가문을 빛내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때때로 밥술이나 뜨고, 아프더라도 고뿔 정도로 앓아 무난하고 평범하게 제 삶을 살아 천수를 누렸으면 좋겠다 싶구나!”하고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보더니

“그야 네 아들의 이름이니 네 알아서 할 따름이다만 구슬이란 옥구슬에 유리구슬도 흔하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쇠로 된 구슬이 많은지라...!”

“어머님!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만!”하며 어머니를 돌아보며 좋으냐고 넌지시 동의 구하는데! 어머니가

“뭘~ 그런 것을 나에게 물어보고 그래요! 어머님도, 당신도 좋으면 나도 덩달아 좋아서 그만이지요!”하고는 별스럽다는 듯, 만족하다는 듯 환하게 웃는다.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 끝으로 나는 ‘철수’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즈음 할머니는 할머니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평화스럽고 조용한 날들을 맞고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눈앞으로 들이닥친 산더미 같은 일을 다 쳐내려면 죽을 날조차 없다는 때와는 달리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의 하루였다.

한갓진 오후 한때를 맞아 축대를 의자 삼아 널브러지듯 올라앉아 내다보는 할머니의 눈으로 만화방창, 봄이 한창이다. 훠이훠이 산을 넘은 봄바람이 논두렁과 밭두렁을 스쳐서 지나가는데 생명 탄생을 축복하는 이야기로 귀가 간지럽다.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사이사이를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맑고 밝은 창공 아래로 쌍쌍이 나비가 날아든다. 노랑꽃 붉은 꽃을 찾아서 팔랑팔랑 날아드는 모습이 흡사 꿈결만 같다.

“엣~다 그놈의 봄! 참말 좋기도 하다”하고 속으로 가만히 읊조리는 할머니는 올 촘촘하게 고운 참빗으로 빗은 듯 가지런한 햇살 아래 아롱다롱 치장 중인 봄날이 마냥 달갑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이는 지난 늦가을의 어느 날을 맞아 생의 끝자락을 훌쩍 놓아버린 청솔댁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유난스럽게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까닭 없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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