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소소한 하루
우리들의 소소한 하루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2.11.11 10: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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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힘들고 아프고 괴로워도, 만나서 조금 즐겁고 행복했던 하루

11월의 첫 일요일, 하늘은 맑고 푸르다. 조금 쌀쌀한 날씨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다. 목적지는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처가 형제들이 열차와 승용차로 한자리에 모인다. 코로나 발발 이후 첫 만남이다.

백화점 지하 4층에 주차하고 8층의 식당가로 가는데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다.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가족과 친지, 아베크족들로 백화점이 들썩한다. 백화점 8층의 식당가는 동서양의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들로 이름있다. 조금 어두운듯한 조명에 철골과 콘크리트 구조물의 입체감을 그대로 살린 이국적인 분위기가 ‘배트맨’의 고담 시티를 연상하게 한다.

대구 신세계백화점 식당가. 정신교 기자
대구 신세계백화점 식당가. 정신교 기자

예약한 식당은 서울 강남의 신세계에서 그 진가를 검증받은 한정식 전문점이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니 큰 처남, 작은 처남 내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니 이내 열차를 타고 온 처형과 처제가 웃으며 입장한다. 울산에서 일찍 개업해서 자리를 잡은 맏 처남은 오래전에 암 투병을 하던 부인을 여의고 지난해 재혼했다.

“오빠! 젊어졌네요.”하는 동생들에게 처남은 미소로 화답한다. 충남 청양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는 작은 처남은 이번 태풍에 물난리를 겪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처제는 동창생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주문한 직화 불고기와 간장 게장 정식에 상차림으로 나온 들깨 수제비와 도토리 묵채가 시장한 손님들의 입맛을 돋운다.

식사를 마치고 승용차를 나눠타고 대봉동의 김광석 거리로 향했다. 학창시절을 모두 대구에서 보낸 터라서 제각기 김광석의 노래들에 얽힌 추억이 많다. ‘이등병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애창곡이다. 좁은 골목길에 그려진 벽화와 조형물들은 더없이 향수를 자아낸다. 기념사진을 찍고, 운세를 보고, 달고나 게임도 하고 같이 보내는 금쪽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대구는 일찍부터 커피 문화가 발달했다. 원두를 내리는 카페가 80년도부터 성행해서 꽤 이름있는 브랜드 커피들이 창업됐다. 수성구 범어천로의 ‘커피 맛…남자’도 핸드드립 커피 맛집의 하나다. 선천성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대표는 지난 10월 대구 커피&카페박람회에서 창업 과정을 발표하고 코로나 의료진에게 거액의 커피 음료를 지원하기도 했다.

카페 앞에 이중주차를 하고 예약된 좌석을 찾아서 다양한 원두커피를 맛보고 리필도 즐겼다. 제주 여행을 다녀온 처제가 커피의 쓴맛에 어울리는 달달한 간식거리를 제공했다. 원두와 드립백 제품을 쇼핑하고 폰 사진을 찍어서 키오스크에서 출력하는 등, 끊임없는 이야기와 함께 훌쩍 오후가 지나간다. 갈 길이 바쁜 작은 처남이 먼저 떠나고, 큰 처남이 내려가고, 여고 동창생들을 만나는 용인 처형을 배웅한 뒤 처제와 함께 우리 내외는 가까운 수성못으로 향했다.

늦가을의 수성호반. 정신교 기자
늦가을의 수성호반. 정신교 기자

늦가을 햇살이 비치는 수성못의 둘레길로 들어서니 귀에 익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랫가락이 들려 온다. 호반의 버스킹이다. 코스모스 옆에선 연년생 자매에게 카메라 촛점을 맞추어 본다. 석양의 귀로에 색소폰의 흐느낌이 애절하다.

‘ 아 목동들의 피리 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조금씩 힘들고 아프고 괴로워도, 만나서 조금 즐겁고 행복했던 우리들의 소소한 하루였다.

수성호반의 색소폰 버스킹. 정신교 기자
수성호반의 색소폰 버스킹.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