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리본과 배지(badge)의 애환
(07) 리본과 배지(badge)의 애환
  • 조신호 기자
  • 승인 2019.04.0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pixabay
pixabay

 

검정 교복을 입던 시절, 중고등학생들은 일주일을 멀다하고 ‘교통주간’, ‘육림의 달’, ‘보훈의 달’, ‘저축의 날’, ‘산불조심’, 등 각종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다. 리본 달기는 국가 시책의 생활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강요되었던 시대의 애환으로 점철되었다.

정부 부처에서 경쟁적으로 공문을 하달하면서 하나를 달고 나면 연이어 또 다른 리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때는 두 가지를 동시에 달아야 했고, 흰 바탕에 붉은 글씨, 검은 바탕에 흰 글씨 등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야 했으니, 등교 시간에 되면 집에서 교문 앞에서 적잖은 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아침부터 징징 울면서 학교에 가야 했고, 중고등학생들은 교문에서 복장 위반자 대열에 서서 벌을 받으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미래 세대의 신선한 아침이 작은 고난으로 일그러지는 세월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앞 문방구에는 일 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 모두 인쇄된 접이식 종이와 그걸 넣어 달 수 있는 비닐케이스 리본 세트가 판매되기도 했다.

그 시절 어느 고등학교에 훌륭한 교장이 있었다. 오늘부터 우리학교는 학생들의 가슴에 각종 리본을 달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교육청에서 공문이 오면 그 내용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도록 잘 지도해 주십시오! 참교육자의 지극한 소신이었다. 교사들이 크게 환영했고, 학생들은 집에 가서 자랑했다. 이웃 학교 친구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우리 학교는 불조심 리본을 ‘가슴 속에 달고 다닌다!’ 라고 으스댈 수 있었다. 이러한 인간게시판 전성시대는 권위주의가 퇴조하면서 교복 자율화와 함께 종말을 고했다.

그러던 것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자발적인 리본 달기 현상이 되살아났다. 세월호 리본은 4월21일 대학동아리 ALT(Active, Autonomous, Life Togther)가 세월호 희생자들이 무사 귀환하도록 ‘노란리본묶기’ 켐페인에 동참해 달라는 내용을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그 취지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어요.”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기원합니다.” 라는 소박한 의미였다.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가슴을 달기 시작했고 스티커를 만들고, 현수막에 그려지면서 이념화되기도 했다. 5년이 지난 요즘도 어떤 승용차 뒷 유리창에 퇴색된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한국인들은 무언가 달고 다니길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예는 제헌국회부터 시작하여 9번이나 새로운 디자인으로 개정되어 온 국회의원 금배지(badge)다. 국회의원 특유의 신분을 상징하는 금배지는 막강한 특권을 의미하는 비언어적(non-verbal) 징표가 되기도 한다. 어떤 국회의원들은 금배지는 기본이고, 무슨 단체, 캠페인, 기념 등을 상징하는 배지를 추가해서 여러 개 달고 다닌다. 모 의원은 왼쪽에 두 개, 오른쪽에 세 개 합해서 다섯 개를 달고 나온다. 그야말로 종합 샌드위치 맨((sandwich man)이다. 잘 살펴보면, 가슴에 달린 배지 수가 많은 의원일수록 하는 말이 거칠고 생각이 다르면 상대편을 무차별 공격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배지 수와 욕심이 정비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그 배지들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 객관적인 공익성도 없다. 주관적인 독선을 자랑삼는 기현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몇몇 의원들은 아무 것도 달지 않는다. ‘너무 과도하게 설치지 마시오’라고 항변하는 것일까? 금배지가 없어도 내가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겸손해 보이는 나도 할 말이 있고, 필요하면 분명히 강조할 것이니 염려 말아라! 그들의 눈동자에는 이런 준엄한 목소리가 스며있는 듯하다.

이럴 때 '논어' 선진 편에 나오는 ‘과유불급’이 떠오른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라는 가르침이다. 리본도 배지도, 돈도 권력도, 속도도 무게도 넘치면 모자라는 것과 같다. 욕심은 사람다움을 잃게 하는 어리석음이다. 정도(正度)를 지키는 자제력이 필요하다. 성서에도 ‘욕심이 커지면 죄가 되고, 죄가 더 커지만 사망에 이른다’ 라고 했다. 가슴을 자유롭게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