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9)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1.0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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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뒤 집어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 어금니를 앙다물어 고통을 호소다
강보에 싼 아기를 건네는 할머니도 아기를 품에 안는 어머니도 얼굴이 땀으로 범벅지기는 마찬가지다
산모의 부기를 빼는 데는 최고라며 뭉근하게 끓여선 남기지 말고 먹으라며 재촉이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기다림은 늘 지루하고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날 올까 싶었는데 두려움을 모르고 열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곧장 코앞으로 산일이 다가들자 할머니도 어머니도 출산을 두고 노심초사다. 천지신명을 들어 순산을 기도하고 원하지만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일도 아니다. 어떤 아낙은 정랑을 다녀온다고 나갔다가 아기를 낳아오고 또 어떤 여인은 호미를 들고 김을 매다가 해산을 하였다는 풍문이 꿈 인양 전설처럼 들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 바랄 뿐이다. 폐비 윤씨가 연산군 융을 3일 동안 고된 산통 끝에 낳았다는 소리가 꿈이길 염원이다.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며느리가 배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자 광목천을 문고리에 거는 등 할머니의 손길이 점차 바빠지고 있었다. 배가 뒤 집어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 어금니를 앙다물어 고통을 호소다. 그 와중에도 잠깐,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 때를 맞아 어머니가

“기력도 달릴 텐데! 어머님께서 손수 어떻게...!”하며 죄송스러운 마음을 나타냈을 때

“아이고 야~ 야! 그런 소리는 아예 말거라! 설마하니 내가 귀하고도 귀한 내 손자를 놓느라 죽을 동, 살 동도 모르게 힘든 며느리를 해코지할 그런 시어미로 보이니! 너는 아무 걱정을 말고 우짜든지 힘 조절이나 잘해서 옥동자나 ‘쑥’하고 낳아라! 입안에 든 옥구슬을 내어 뱉어내듯 탁 뱉어내면 되는 기라! 그 외의 딴생각일랑은 일절 접어라!”하며 분주하게 문지방을 드나들다가는

“시에미라서 정 마음에 꺼림칙하다면 어디 낯모르는 산파를 청해 온 것으로 생각하려무나! 나도 내 며느리라 생각 않고 산달이 꽉 차서 내 손길이 필요한 배 불뚝이의 어느 산모로 생각하련다. 그래야만 너나 나나 서로 편할 거다. 안 그러면 안쓰럽다 힘이 쓰이고 가련하다고 손이 떨려 마가 끼어들어 사고 나기가 십상이니까?”하며 안심하라는 듯 두 손을 꼭 잡아서 힘을 북돋우어 준다.

하긴 어머니로서는 시어머니인 할머니가 손수 나선다면 그 이상 감사한 일이 없기도 했다. 그간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척을 진 탓에 영천댁의 아기를 받아주지 못한 것을 늘 마음속의 짐처럼, 한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훗날 아이의 목에 걸린 공깃돌을 빼내 목숨을 살려준 것으로 벌충을 했다고 여겼다. 이후 할머니는 무당집을 드나들며 곁눈으로 보아둔 학습을 통해 동네에서 산기를 보이는 새댁들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섰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이력이 붙었다. 그런 할머니를 동네 사람들은 전문으로 산파 여겼고, 임산부들이 출산 기미만 보였다 하면 너나없이 찾고 있었다. 그럴 때면 사례비를 떠나 온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할머니였다.

두툼한 담요 위에 겹겹이 천을 깔고선 어머니가 눕자 할머니는 들일을 나가려는 아버지를 불러세웠다.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끊어야 한다며 어디 가지 말고 집 근처 있으라 했다. 숫돌에 정성껏 가위를 갈아서는 숯불에 단디 지지어 소독해 있다가 기별하면 곧바로 오라고 했다. 아비가 되려면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출산은 할머니가 노심초사, 철저하게 준비한 덕택인지 초산치고는 수월했다. 연산군이 태어나던 날에 즈음하여 멀쩡하던 하늘에서 돌개바람이 일고 폭풍우로 울던 것과는 달랐다. 축복이라도 하는 듯 햇살도 따사로운 날에 즈음하여 3시진 만에 어머니는 떡두꺼비를 닮은 옥동자를 순산했다. 남자들의 군 3년의 고통을 어머니는 6시간 만에 뚝딱 해치웠다. 문밖에서 잔걸음으로 초조하게 서성이던 아버지의 손길 아래 탯줄이 끊어지자 힘찬 울음소리로 생명의 탄생을 만천하에 고했다. 급하게 강보에 싼 아기를 건네는 할머니도 아기를 품에 안는 어머니도 얼굴이 땀으로 범벅지기는 마찬가지, 환하게 웃는 모습도 어쩜 똑같이 닮았다.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염원은 땅을 통해서 삶을 영위하고 무병장수, 천수를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나란히 누운 모자를 바라보던 할머니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침내 찾은 무명천으로 땀으로 번들거리는 어머니의 이마를 훔치는 할머니는 그저 장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무시로 건네고 있다. 시어머니의 손길을 받는 어머니도 모든 것은 조상님의 음덕으로, 시어머님 당신의 공으로 매양 감사하단다.

첫 알림으로 아버지는 외로 꼰 새끼에 숯, 청솔가지, 빨갛게 익은 고추를 꽂아 삽짝을 가로질러 내걸었다. 이를 계기로 조용하던 집안에서 수십 년 만에 생기 넘치는 아기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었고, 삼칠(21일)일 동안 타인의 출입이 일절 금지되었다. 이로써 할머니는 반쪽 할머니에서 진짜 할머니로 거듭났다.

첫 손자를 대하는 할머니는 얼마나 기뻤는지 어머니의 산후조리를 힘들다 않고 도맡아 놓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몇 번이나 미역국을 끓이고 시시때때로, 사이사이를 가리지 않고 어머니에게 먹기를 권했다. 농부아사침궐종자(農夫餓死枕厥種子: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잔다)라는데

“무슨 농사, 무슨 농사니 해도 농사 중에는 자식 농사가 단연 최고지!”하는 할머니는 씨 종자마저 아깝지가 않은지 미역국마다 쌀알이 허옇게 흐드러져 떠다녔다. 산모의 방은 지글지글 끓듯 해야 후유증으로 산후통이 없다면 마른 장작이 떨어지자 아버지를 닦달하고 이곳저곳을 수소문, 희나리(덜 마른 장작)일망정 고맙다 구해서는 뭉근하게 군불을 지폈다. 그런 할머니의 정성 때문일까? 어머니는 젖도 쉬이 돌았고 몸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갔다. 어머니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을 보이자 이번에는 어디서 어떤 경로로 구해왔는지 누렇게 농익은 늙은 호박을 구해와서는 죽을 쑨다며 분주했다. 산모의 부기를 빼는 데는 최고라며 뭉근하게 끓여선 남기지 말고 먹으라며 재촉이다. 그때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도 이런 호강은 못 누리라 생각했을 정도였다니 할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 핌이 실로 대단했던 모양이다.

새 생명이 태어난 지 삼 칠일지나 금줄이 걷히자 동네 사람들이 앞다투어 축하차 찾아왔다. 그때마다

“이봐~ 이봐 애 웃는 것 좀 보게 장군감이네!”하는 덕담 끝에 ‘구슬’이란 태명을 생각하고는

“아기 이름은?”하고는 사람마다 물었지만 아직은 미처 짓지 못했다는 대답이 다였다. 그렇게 늘 아기의 이름이 없어 섭섭하던 중 100일이 지난 어느 날 마을을 나갔던 아버지가 둘둘 말은 종이 꾸러미를 들고 와서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나란히 불러 앉혀

“어~무이요! 요 아래 훈장님께 사뢰(말을 올리다), 저늠아 저거!, 우리 아기 이름을 지어 왔는데 어디 한번 봐 주소! 돌림자가 끝 자로 ‘수’라고 했더니 3개를 지어주며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쓰라고 하네요!”하고 방바닥에다 펼쳤다. 그러자 펼쳐진 종이 위에 쓰인 글씨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내려다보던 할머니가

“아이고 야~야! 다 늙은 게 뭘 안다고...! 네 아들 이름인데 어멈과 상의해서 네 좋은 데로 골라서 부르려무나!”하면서도

“그래 뭐라 뭐라 지었더냐?”하고 관심을 보이자

“예~ 첫째는 ‘현수’, 둘째는 ‘민수’, 셋째는 ‘철수’중 하나를 골라 부르면 좋다고 하네요!”

“오냐~ 그~래! 그래 지었구나! 근데 가만있거라 보자! 우리 같이 없고 못 배운 사람들의 이름은 본래부터 험하게 짓는 게 무병장수에 도움이 된다 그러더라! 저승사자가 잡으려 왔다가 이름이 험해 상종 못 할 인간이라 그냥 간다나 뭐라나!”하고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이조 중엽 광해군 때 후궁으로 있었던 ‘김개시’란 궁녀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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