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0.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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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눈물 밥일망정 내 집이다 싶은 시집 밥을 먹고 싶었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까지는 정성으로 보살피리라!
독적 넘의 소굴 같은 어두침침한 이넘의 집구석이 지겨운지 늘 도망갈 궁리만 하고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어머니가 어머니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재산이 너무 차이가 난다면 후일 이래저래 비교하여 기가 죽는다 생각했고, 신랑 자리가 나이가 적으면 우선 치마폭에 품어 다루기는 쉽겠지만 마누라 귀한 줄 모른다 생각했다. 반면에 신랑이 나이가 많으면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목석인 듯해도 막상 어렵고 힘든 시기에 다다르면 보호 본능이 일어 어떻게 하든 지켜 줄이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시부모님은 두 분이 다 계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여겼다. 특히나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시아버지는 꼭 계셨으면 했다. 이는 소박을 맞은 처녀를 친정으로부터 구해 간 사람도 신랑이 아닌 시아버지란 점에서 그랬다.

감골댁으로부터 연줄이 닿아 중매가 들어 왔을 때 어머니는 어머니가 생각하는 조건에 정 맞다 생각했다. 단지 시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점에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100%의 만족은 없다는 점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오라버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주처럼 떠받들어진 것은 아니라도 올케언니의 쌀이 떨어졌다느니 살림살이가 쪼들린다는 등, 찌들어 빠졌다는 등의 살림살이 이야기만 나오면 이는 어머니 자신 때문이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자격지심으로 절로 발이 저렸다. 잠시를 쉬지 않고 몸을 놀려도 마찬가지였다. 철이 들고부터 노비처럼 종처럼 천하게 몸을 굴렸지만 삼시 세끼의 밥상을 대할 때면 늘 소태처럼 씹는 기분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눈물 밥일망정 내 집이다 싶은 시집 밥을 먹고 싶었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는 새색시의 부끄러움을 뒤로하여 초례청을 거둔 다음 날 첫새벽부터 서둘러 길을 나선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배가 제법 불러올 적에 할머니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어머니로부터 그간의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머니는

“시어머니 자리는 왜? 시아버지 자리가 없으면 어때서?”하고 묻자 어머니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인데 방패막이가 사라진 것 같아서요! 그리고 홀로된 시어머니는 아무래도 외고집이고 외통수로 화해 며느리를 잡는다는 말에...!”하더니

시집이라고 와서 보니 시어머니의 태도가 예상과는 달리 이상하더란다. 밥을 태워도 오냐!, 밥이 아닌 죽을 만들어도 오냐!, 나물무침이 소금 범벅이어도 좋다. 싱거워 빠지면 늙은이는 싱거운 것이 건강에 좋다며 오냐다. 전해 듣기로는 꿀밤도 주고 심하면 회초리도 든다는데 너무 오냐! 오냐다. 시집을 오기 전에 전해 들은 풍문으로는 시어머니 자리가 고집불통이고, 모질게 며느리를 다룰수록 소박을 맞을 확률이 적다고 했다. 그것은 군대에서 날마다 치르는 얼차려가 없으면 쉬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것과 같고, 험한 일을 같이 겪는 중에 전우애가 깊어진다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를 대하는 할머니는 잘잘못을 덮어 인내하고 참는데 두려워 죽겠더란다. 저러다가 가면을 벗어 한꺼번에 폭발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여겨 무섭기까지 하더란다. 화산이 폭발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로 만들 듯 주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릴 듯 소름이 돋더란다. 그러다 보니 늘 언행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어쩌다가 인정을 내어 은근슬쩍 다가오는 시어머니를 한정 없이 멀리하고 싶더란다.

“아이고 이것아 나는 그것도 모르고...!, 새아가 내가 너를 오해했구나! 오해를 해도 단단히 했구나! 나는 우리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도망갈까 봐! 그동안 내가 스스로 내 마음속에 집을 짓고는 내 틀에 걷혀서 노심초사 조바심을 내었구나! 이렇게 내 마음같이 네 마음을 알고 나니 천지신명께 감사할 뿐이다. 오늘에서야 관세음보살님의 영험한 자비를 듬뿍 받은 기분이다. 고맙고도 고맙다. 새아가야!”하며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너는 이제 내 아픈 손가락이다. 내 아무려면 못 배워 무식하고 또 촌구석에서 무지몽매, 흙을 파먹고 사는 농투성이의 아녀자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참된 도리는 안다. 설사 네가 네 시누이처럼 14년간을 병석에 누울지라도 나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리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까지는 정성으로 보살피리라! 그게 식구고 가족이 아이가?”하고 어머니를 그윽한 눈으로 보라다 보는 할머니는 설령 어머니가 아기를 못 낳더라도 소박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노라고 했으며 이리 귀한 내 며느리를 내가 왜? 하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할머니를 향해 어머니가

“제가 너무 무지하고 몰라서 그랬는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그리고 어머님께서 제 시어머니라서 너무 행복합니다”하며 할머니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할머니가

“애야 너 혹시 태몽 같은 거 꾼 것 없니!”하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예~ 어머님 저는 기억이...!, 저녁을 맞아 잠자리에 누우면 몸이 고단해서 그런지 한번 곯아떨어지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지경이라...!”

“그러게 내 뭐라 하든 무슨 일을 원수를 대하듯 둘 내외가 그렇게 하는지...! 좀 쉬엄쉬엄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건만...!”하고는 어머니가 입덧을 시작하기 열흘 전쯤에 할머니는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면 꿈속에서 그렇게 보고파 했건만 감감무소식으로 나타나질 않던 할아버지라고 했다. 한데 그날 밤은 생시처럼 나타나

“임자 그간 잘 있었는가?”하고 묻는데 갑자기 미운 정이 왈칵 솟구쳤다고 했다. 원래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잘 있기는 무슨, 혼자 살아남아 죽지 못해 사는구먼! 철딱서니 없는 끝순이 저년은 정신을 차려 자리를 터는 날부터 천지 분간을 몰라 놀괭(노루)이새끼모양 사방팔방으로 날뛰고...! 며느리라는 것은 독적 넘의 소굴 같은 어두침침한 이넘의 집구석이 지겨운지 늘 도망갈 궁리만 하고...!”하는 말이 생각과는 딴판으로 신세타령이 되어 튀어나오더란다. 그런데 그런 것쯤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할아버지는

“임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투정질은 여전하구먼...! 그래 내 오늘 그간 자네의 노고를 위로 차 아주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왔다네! 흘리지 말고 단디 받게 나!”하더니 뒷짐으로 맞잡은 듯 등 쪽으로 갈무리한 오른손을 앞으로 꺼내는데 커다란 구슬이 번쩍이더란다. 어떻게나 눈이 부시게 빛나던지 눈을 뜰 수가 없어 눈을 찡그리는 찰나

“자~ 임자!”하고 던지는데 손을 내밀기도 전에 품 안으로 쑥 들어오더란다. 그러고는

“며느리가 도망은 무슨...!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네!”하며 몸을 돌리더니

“후일 이승의 연이 끝나 나를 찾아오면 내 그때는 임자를 위해 알밤을 구워 줍세!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 줍세!”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지더란다. 그렇게 꿈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는

“인자부터는 제발 좀 일 좀 줄여서 해라! 내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절박(매우 다급하고 절실하다)해서 원...! 그러다가 배속에 든 아기! 아니지 내 손자가 어떻게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러누!”하면 사족을 단다. 그날 이후 할머니와 어머니는 타인이라는 한 꺼풀 벗어 고부 관계가 아닌 모녀지간처럼 가까워졌을 뿐만 아니라 얼마를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따뜻한 양지쪽에 앉거나,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구슬아! 구슬아! 할머니는 어디에 가셨게? 구슬아! 구슬아! 구슬이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게? 구슬아! 구슬아! 고모는 어디로 가셨게?”하며 보름달처럼 불룩한 배를 쓰다듬었다. 그럴 때면 동네 아낙들이

“‘구슬’이가 뱃속 아기 이름인가 보네! ‘구슬’이라고 이름 한번 예쁘게 지었네!”하고는 이름을 벌써지었냐며 의뭉스럽게 물어올 때면

“아직 뱃속 핏덩인데 이름은 무슨! 그저 신기해서 불러보는 거예요!”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좋든 싫든 태몽은 함부로 입 밖으로 내면 안 된다는 할머니의 당부가 있는 까닭에 꿈에서 시어머니가 시아버지로부터 구슬을 받았다는 대목을 인용하여

“구슬아! 구슬아!”하고 정을 담아 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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