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0.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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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꾸렁내(‘구린내’의 방언)풀풀 풍기는 입을 아~하고 벌려 보라고
내가 내 며느리를 못 믿으면 그 누가 내 며느리를 믿어줄꼬?
집안 풍수로 있을 때보다 밥맛도 좋고, 소화도 잘되고, 몸도 가뿐하고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뭐기는 뭐요! 내가 없는 살림에 못 줄 걸 줬을까봐 그러세요!”하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는

“박복한 딸년의 지난 시집에서 보내온 위자론가 뭔가 하는 것이지! 당신이 딸년 팔자 고칠 때 주라면서...!”

“누가 뭐라나! 그것일랑 진즉에 주질 않고! 껕-보리(‘겉보리’의 방언)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고!, 면전이라 당장은 괜찮다지만 윤서방이 내막을 알기라도 하면 재혼 주제에 신행 첫날부터 처가 행세에, 늙다리 취급에, 쌀독이 어떻고 저떻고, 땟거리가 부실하다는 등 업수이 여긴다 여겨 꽁한 마음을 품어 딸애에게 구박에 흠이라도 잡을까 그렇지! 재혼에는 얼굴 살에 파고든 기미 같은 조그마한 점도, 쥐젖도, 티끌도 다 흠이라는데...!”

“걱정도 팔자네! 남녀가 눈이 맞아 늦바람이 나면 물불이 눈앞으로 안 보인다네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하 다네요! 늙은 말이 콩 싫어하는 거 봤어요! 앞으로 두고 보이소! 윤서방이 우리 딸애 말이라면 껌뻑 죽고 못 살 것이구먼! 오늘 아침 윤서방 얼굴만 봐도 그렇더구먼! 화색이 환한 게 오늘부터는 우리 딸애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철석같이 믿을걸요! 아~ 당신도 그랬잖수! 나는 일삼아 감추고 싶은 덧니를 두고 노상 이쁘다고, 틈만 나면 꾸렁내(‘구린내’의 방언)풀풀 풍기는 입을 아~하고 벌려 보라고...! 사랑에 콩깍지가 씌면 아무도 못 말리는 기라요! 그래서 형상만 비슷하지만 생각도, 속도 완전히 틀려버린 남녀가 만나 죽고는 못 사네 하면서도 껌-딱지처럼 붙어서는 안 떨어지는가 봐요!”하며 입을 삐죽거려 혓바닥을 날름한다.

“임자 말대로 그리만 된다면 세상사 무슨 걱정이 있게! 아무쪼록 별 탈 없이 잘 살아야 할 텐데...! 하여간 집구석에 있어도 걱정, 대문 밖을 나가도 걱정, 슬하에 딸자식이라 두고 보니 가지각색으로 걱정이 하루라도 떠날 날이 없구먼!”하더니 영감을 앞장으로 장모자리가 살랑살랑 뒤를 따른다. 곧장 방으로 들어갈 요량으로 축대를 오르던 부부가 나란히 뒤를 돌아다 본다. 아침 햇살이 곱게 스며드는 얼굴 위로 고단한 세월이 한풀 더 내려앉았다. 삽짝을 내다보는 눈에서 애잔함이 물씬 풍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평범하게 이 한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염원이 처연하게 묻어나는 얼굴이다.

우여곡절 끝에 시집으로 돌아온 처녀는 시어머니가 증표로 내준 금가락지가 여간 거추장스럽지가 않다. 장신구란 나들이 때나 품위를 차려 집안에 들어앉아 있을 때나 필요한 것이지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에게는 성가신 물건인 모양이다. 큰 듯, 헐렁한 듯하여 헝겊쪼가리나 실을 감는 등으로 대충 손가락에 맞게 끼었다지만 집안일을 하는 동안 여러 곳에서 불협화음이다. 집 안팎을 청소할 때나 빨래할 때는 물론 나물을 다듬을 때도, 바느질할 때도 연신 거치적거린다. 시어머니의 엄명으로 빼지를 못해 나날이 금가락지로 인해 신경이 곧추선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하게 처녀를 부른 시어머니가

“애~야! 그 금가락지가 그렇게 부담스러워서야 어떻게 하겠니?”하고는 평소에는 빼었다가 집안 행사가 있을 때는 꼭 끼라는 말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

“예~예! 어머님 정말 그래도 될까요?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말씀대로 꼭 그러하겠습니다”하는 것으로 처녀는 금가락지의 고통으로부터 행방이다. 하지만 그 금가락지는 보통의 물건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금붙이를 녹여서 만든 장신구용 금가락지에 불과했다면 시어머니가 저녁 밥상 앞에서 며느리인 처녀를 두고 자신이 옷 보따리를 싼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녀가 시어머니의 말을 쫓아 집안 잔치가 있던 어느 날인가? 금가락지를 끼자 대소 가내의 모든 일가 피붙이들이 생각 밖이라는 듯 화들짝 놀라 시어머니에게 몰려들어서는

“아직 정정하신 데 벌써 물려 주셨어요? 뭘 믿고?”하며 의문을 나타내자

“내가 내 며느리를 못 믿으면 그 누가 내 며느리를 믿어줄꼬? 그리고 벌써 는 무슨 벌써! 새 물결이 만장같이 밀려오는데 뒷방 늙은이가 아집으로 민주를 대면 어떡하겠나! 옛말에 때를 봐서 물러 날줄도 아는 자가 준걸이라 안 하던가? 내 진즉에 물려주려 했는데 요사스러운 불여우에게 정신이 온통 홀리는 바람에 한참이나 늦었구만!”하더니 며느리를 들어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에는

“무슨 말씀을...! 가당치가 않습니다. 우리가 도리어 잘 부탁드려야지요!”하고는 전에 없이 굽신굽신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금가락지는 집안을 들어 종갓집 맏며느리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물건이었다. 같은 항렬을 들어 손아래는 당연지사, 손위라 할지라도 한번 떨어진 명령에는 절대복종이다. 만약에 대거리를 한다든가 불복종 시는 문중 어른들로부터 위계질서가 무너졌다고, 위아래를 분간 못 한다고, 뼈대 있는 집안에서 훈육이 부족하다는 등의 엄한 질책이 뒤를 따랐다. 그런 까닭에 처녀의 한마디가 곧장 진리이자 법이었다. 금가락지의 진면목을 대한 처녀는 새삼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다고 마냥 두렵다 하여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산촌의 무지한 내가 어떻게 하면 금가락지에 부끄럽지 않을까? 하고 깊이 생각한 처녀는 가일 층 분발이다. 종갓집 종부로 봉제사 접빈객의 예는 물론 종가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정통 음식 정도는 알아야 한다며 시간을 잘게 쪼개가며 주마가편, 노력을 기울인다.

그즈음 머리만 굵었지 천방지축으로 천지 분간을 몰라 평생을 빌어먹을 것 같았던 그 사우쟁이란 녀석도 부인이 진실한 마음으로 삶을 꾸려가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술이라면 술, 친구라며 친구 등을 일체를 끊고는 지독한 공부 끝에 미관말직일 망정 나라의 녹을 먹을 먹는 관리가 되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처녀가 한사코 말려도 부엌에 들었다. 아들이 달랑 금가락지 하나 내주고 종으로, 노비로 부려먹을 작정이냐고 반문한 말이 마음속의 가시가 되고 자극제가 되었는지 혼자는 힘들다며 같이 일을 추자는 데는 친정어머니 이상이다. 20~30여 년 지기 연상의 언니만 같다. 하다못해 설거지라도 도와야 한다는 말에 처녀가

“어머님...!”하고 쉬시기를 권해 보지만

“너는 어째서 이 시에미를 두고 고려장을 치를 기세로 뒷방 늙은이 취급이고? 내 기가 막히게도 생판 모르는 젊은 계집의 갖은 구박을 들어가며 수족처럼 수발도 들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건 봄 소풍 같구먼! 방구석에서 구들장을 지고 앉아 집안 풍수로 있을 때보다 밥맛도 좋고, 소화도 잘되고, 몸도 가뿐하고 좋구먼! 이웃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속에 든 나쁜 기운들이 물로 씻은 듯 없어지고 좋구먼!”하더니

“애야~ 널 랑은 좀 쉬어가면서 하렴!”하며 며느리 주위를 그림자처럼 맴돈다. 그도 그럴 것이 며느리를 새로이 안방에 들어 앉힌 후로 어리보기의 아들이 제대로 철이 들어 제 앞가림으로 밥벌이에 나서는 바람에 생애를 들어 가장 큰 근심을 덜었다. 만나는 동네 사람마다 아들 잘 두었다고, 며느리를 잘 들였다며 추켜세우는 데는 어깨가 절로 으쓱하여 세상이 달리 보인다. 게다가 처녀의 뱃속으로 또 다른 생명 하나가 태동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금지옥엽으로 떠받든다.

처녀 적에 직접 보고 겪은 사건을 계기로 어머니는 애당초 시집살이에서 아기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에서 무조건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시집을 갈 조건으로 양가가 무난하여 비슷했으면 했고 신랑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한 조건이 어떻게 원한다고 가능할까 싶었지만, 하지만 최소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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