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10.1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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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안의 혈육 한점이 들어앉았다면 지금에 이 지경이 되었겠니?
어느 때는 그 평범한 삶이 더 절실하게 평범했으면 할 때가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딸 반보기라도 하고 싶구나!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엄마는 사우쟁이가 보는 앞에서 다짜고짜 아기부터라니! 때와 장소를 못 가려 못하는 소리가 없어! 윤서방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어! 그러다가 나까지 죽으면!”

“여자가 아기를 놓다 죄다 죽으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간데...! 그런 방정맞은 기우는 아예 생각도 말고, 그리고 부끄럽기는 뭐가 부끄럽노! 앞으로 할 짓 못 할 짓, 볼 걸 못 볼 걸 안 따져 다 겪어가며 살 텐데! 또 부부라면 응당 그래야지!”

“그만! 그만 엄마! 뭘 보고 못 보고~ 하여간 엄마는 벌써 노망끼가 도졌어? 할 소리 못 하는 소리가 없어!”하는 딸내미를 눈을 새치름하게 치켜떠서 흘기는 장모자리는 속으로

“네가 지난날 애꿎게도 시집에서 소박을 맞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니더냐! 그때 만약 네 뱃속으로 아들이든, 딸이든, 하다못해 유화부인처럼 알 한 개를 품었다면, 팔다리가 온전 지 못한 무엇이든 그 집안의 혈육 한점이 들어앉았다면 지금에 이 지경이 되었겠니?”하고 자문자답으로 묻고 있었다.

장모자리가 그렇게 당부를 안 해도 내일이면 시집으로 들어가는 처녀도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아기에 두고 있었다. 누구는 슬하의 자녀 수를 두고 삼남이녀 또는 이남삼녀가 이상적이라 말을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허송세월로 젊음을 어느 정도 반납한 나이인지라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 여겼다. 그렇다고 전혀 가능성이 없는 나이도 아니다. 앞으로 몇 번 아니 수십, 기백 번에 걸쳐서 가임기간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기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새 생명을 얻는 일이라 싶지가 않으리라! 그중 전생의 인연이 이승으로 이어지든, 이생에서 새로운 인연으로 맺든 한두 인연이라도 맺을 수 있다면 조상님의 음덕으로 여겨 세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특별한 삶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특출한 삶을 원해 돈 많은 부잣집이나 관작이 높은 집안으로 시집을 고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 때늦은 후회 같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었다. 최소한 집시족처럼 떠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삶만 아니라면 족하다 여겼다. 전쟁의 집중포화 속에서 총알과 포탄에 눈이라도 달린 듯 나만 비켜 갔으면 하는 요행수를 바라지는 않는, 병명도 원인도 모르는 괴질에 걸려 동정을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삶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삼재[三災:도병재(刀兵災)·질역재(疾疫災)·기근재(飢饉災)]를 만나 고통과 괴로움을 동반하여 요절하는 그런 삶도 평범한 삶이라 고집한다면 평범한 삶이겠지만 처녀 자신은 그런 삶을 평범하다 고집하기는 싫었다. 땟걸이(‘때걸이의 북한어)가 떨어져 더러 끼니를 거른다 해도 자식보다 앞서 천수를 누린다면 만족하다 여겼다. 그저 뭇사람들이 눈에 평범한 삶이면 썩 괜찮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삶이 모두에게 평범해 보이지만 어느 때는 그 평범한 삶이 더 절실하게 평범했으면 할 때가 있다. 바램과는 달리 하늘이 시기할 수도 또 그 평범이란 것이 내게서 비켜 가는 바람에 평생을 들어 헛말만 켤 수도 있다. 그 바람에 언제 어느 때를 들어 아기를 잉태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지는 예측불허로 모르는 일이다. 설렁 그렇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새로이 맞이할 축복을 위해 늘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삼신할미의 점지를 자비로 여겨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생기는 족족 슬하에 거느릴 생각이었다. 여자에서 어머니로서 변신, 아기랑 함께할 삶을 영광과 축복으로 여겨 살리라! 행복을 일궈가는 나만의 보금자리인 만큼 오롯이 지켜내려면 이유 여하가 필요치가 않다 여겼다. 지극정성으로 염원하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모녀간의 은밀한 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인과 사위는 연신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긴긴밤을 딱지를 접듯 접는다. 그러기를 몇 순배나 잔이 돌고 돌았을까? 어느덧 몸도 마음도 도연(陶然)해 가는 중에 앞산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달그림자 봉창으로 추녀를 드리울 때쯤 마지막 잔이 윤서방의 입에서 홀짝 비워진다. 술자리의 끝은 늘 한두 잔이 부족한 듯, 조금은 아쉬운 듯하지만 이제 어지간하다고, 기다렸다는 듯 술상이 치워진다. 밤의 또 다른 역사를 위해 비단 금침이 깔린 보금자리를 찾을 시간이란다.

때를 같이하여 윤서방을 필두로 신혼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문을 나선다. 미리내(‘은하수’의 방언)가 포근하게 내려앉은 마당을 가로질러 아래채에 마련된 신방에 들기가 무섭게 사창 위로 달빛이 누렇게 여울진다. 가물거리던 촛불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입김이 닿기도 전에 저 알아서 꺼진다. 지금껏 어디서 무얼 했냐며, 언제 어느 때 차려졌는지도 모르게 싸늘하게 식은 합환주는 윗목으로 밀려나 심통이라도 난 듯 뒤돌아 옹송그린다. 밤 부엉이가 가만히 지켜보는 가운데 비단 금침 부딪치는 소리가 새신부의 옷고름 풀어지는 소리로 사그락거린다. 말소리도 정에 겨워 소곤소곤 새벽녘으로 내달린다.

단출한 혼수는 지게 한 짐으로도 충분했다. 새벽녘 밥숟갈을 놓기가 무섭게 홀아비가 뭉뚱그려서 지게 위에다 얹어 동바를 가로질러서 지고는 앞장을 서고 처녀는 쫄랑쫄랑 뒤를 따라서 간다. 막연하게 언제든 바람처럼 훌쩍 떠났으면 하고 바라고 바라던 집이건만 막상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는지 뒤돌아, 뒤돌아보며 옷고름을 접어 눈가를 찍으며 미끄러지듯 마당을 건넌다. 발걸음도 야속하게 삽짝을 벗어날 즈음에 장모자리가

“어이구 내 정신 좀 봐라! 애야 너는 예서 잠깐만 기다려라!”하고 불러 세우더니 급하게 안방을 들러서 나오더니

“자~ 이것! 이것일랑 잃어버리잖게 단디 넣어가거라!”하며 처녀의 품 안으로 무언가를 쑤셔 넣어 갈무리할 적에 양손으로 밀어내며

“엄~마 이게 뭔데! 이렇게 수선을 피워?”하고는 일 없다는 듯  풀어진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뭐기는 뭣고! 그저 아무 소리 말고 단디 넣어가기나 해라! 이게 다 너의 몫이고...! 앞으로 그 집안의 며느리로 살림살이를 도맡으려면 쓰임새도 만만찮은 테니!”하며 꽁꽁 여민 옷깃을 다시 헤집어서는 우격다짐으로 쑤셔 넣는다. 하지만 처녀는 받을 이유를 모른다며 손사래를 쳐서 안 받겠단다. 그런 처녀를 두고 어미는 받아라! 딸은 못 받네! 하며 실랑이다. 모녀의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저 마치에서 앞서가던 윤서방이 넌지시 넘겨다 본다. 순간 도둑질 끝에 들킨 모양 당황스러운 처녀가 못 이는 척 급하게 봉투 하나를 품속으로 갈무리를 한 후

“알았어! 엄~마 인제 진짜 갈게! 아버지랑 잘 있어!”하며 등을 돌리는데 장모자리는 안쓰럽다는 듯

“오~냐! 우야 든지 아는 생기는 데로 쑥쑥 놓고 잘 살아야 한다”할 적에

“엄마는 입만 띄면 또 또 그 소리다. 입도 안 아퍼? 동네 창피하게...!”

“오죽하면 이 어미가 애달아 이러겠나! 헛투루 귓전에 흘려 잔소리로 듣지 말고 마음에 단디 새기거라! 아~참! 내달 초이틀 날을 기억했다가 오전 새참 때 즈음에 참남벼루로 나오너라! 빨래를 핑계로 나오려무나! 이래가면 운자 또 보겠노?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딸 반보기라도 하고 싶구나! 그날은 이 어미가 서리태를 듬성듬성 넣은 마구-설기라도 한 솥이 쪄서 갈란다”하고는 까치발로 키를 늘려 손을 흔든다. 늙은 아비라고 딸과의 이별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마누라 뒷전에 엉거주춤하게 서서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연신 손을 흔든다. 그렇게 부모의 배웅을 받으며 처녀는 신작로를 따라서 쪼르르 사라져갔다. 처녀의 모습이 논두렁을 타고 너머 모습을 감추자 삽짝에 마냥 서성이던 영감이

“아까 그거는 뭔데! 그 난리고?”하고 책망하듯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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