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2)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2)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9.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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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치 앞을 분간 못하는 답답한 늙은이일 뿐인 모양이다
가정주부가 건강해야 집안이 건강한 게야!
조강지처가 죄도 없이 쫓겨나건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놈이 뭘 잘했다고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죄송하기는! 아니다. 싫다고 밉다고 뱉어내지 않고 받아 줘서! 그래~ 새아가 시방 이 시어미의 행동이 늙은이의 노망기만 같고 당황스럽고 이해가 안 될 거야! 한데 내가 너에게 이렇게 밥을 먹여주고 싶은 것은 네가 집을 나서는 날부터 나의 꿈이었다. 며늘아가~ 네가 집에 있을 때는 발걸음 소리에도 진저리가 쳐지고 뒤통수조차 꼴 보기 싫고 밉더니만 막상 눈앞에서 안 보이니까 눈물이 왈칵 솟더라!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하는 이 시어미가 우습지? 적반하장으로 기를 쓰고 쫓아 보내고선 뭔 말 같지 않은 소리냐 싶지! 하지만 말이다. 입에 발린 말로 여겨 네가 믿던 말 던 이건 참말이다. 매일 같이 앞산을 올려다보는데 하늘로 치솟아 가로놓인 산이 하도 원망스러워 밤낮을 두고 빌었지! 역발산의 초패왕을 만나 돼지를 잡고 술대접에 뽑아달라고, 램프 속의 거인을 돈수백배로 만나게 해달라고, 우경 노인의 후손을 만나 내 전 재산을 걸고 삽질을 해 달라고 소원했지!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한데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노망난 늙은이의 아집으로 똘똘 뭉친 욕심만 같구나! 그러고 보면 나도 한 치 앞을 분간 못하는 답답한 늙은이일 뿐인 모양이다. 향후 이내 늙은 몸뚱이를 마음 놓고 내맡길 이도 며눌아가 너고, 제사상에 물 한 그릇 떠놓을 이도 며눌아가 너라는 것을 네가 떠난 뒤에서나 깨달아 알다니 말이다. 바보에 천치도 아니고...!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하며 두 손을 잡아 올 때 처녀는 입안의 음식을 불식간 꿀꺽 삼키고는

“예~ 어머님! 제가 맏며느리로서 부연할 것 없이 그건 당연하지만! 아직 정정하신데 어찌 벌써부터 그런 나약한 말씀을...!, 저는 그저 듣기에 민망하여...!”하고는 고개를 숙일 적에

“오냐~ 고맙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오늘 너의 신행을 맞아 큰상은 못 차리더라도 내 손으로 따뜻하게 흰 쌀밥을 짓고 고기반찬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생전 죄인으로 살 것만 같아 그런다. 이런다고 그간 내가 지은 내 죄업이 없어지는 것도, 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나에 대한 미움이란 앙금을 깨끗하게 씻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런다!, 따지고 보면 이 시어미만 좋은 일로 나는 오늘 한 번으로 그치지만 후일을 장담할 수 없어 너는 어떤 지경에 이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더냐! 그래서 말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힘 좀 써 볼란다. 그래서 말인데 너는 내일부터 당분간은 부엌 출입을 말거라! 시어미 된 책임으로 산후조리 흉내라도 내 볼라니까 더는 아무 소리 말거라!”

“어머님 저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머님은 받잡기 민망한 그런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저는 그저 어머님께서 잊지 않고 다시 불려주시고, 또 며느리로 받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그저 송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향후 집안을 위하고 가문을 위하는 일이라면 분골쇄신으로...! 쫓아내시지만 않은 다면...!”하는데 급하게 말을 막은 시어머니는

“그래 내가 보낸 꽃신과 치마저고리는 어떻게 네 마음에 들더나?”

“예~ 어머님 너무 곱고 화려해서 분에 넘칠 지경이라...!”

“혹 몸에 넉넉하거나 작아서 정 맞지나 않더나?”하는데 가슴속으로 선과 악이 충돌하듯 갈등으로 들끓는다. 옷이 날개인데 품이 넉넉하다고 하자니 친정어머니에게 죄가 되고, 정 맞다 하자니 시어머니께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지경이라 엉겁결에

“예~ 어머니 저는 그저 곱고 황홀해서...!”하고 앵무새처럼 같을 말을 되뇌어 얼버무릴 적에

“네 마음에 든다면 이 시에미야 더 할 말이 있겠느냐!”하면서도 아무래도 품이 넉넉한 듯하여 헐렁해 보이지만 따따부따 따져보았자 서로가 마음만 불편해 할 듯 싶기도 하고 멀쩡한 며느리의 친정의 흠을 들출 것만 같아

“오~냐! 이 시에미의 눈썰미가 예전 많은 못하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가 보다”하더니

“다시 새사람, 집안의 안주인을 맞아들이는데 그만한 정성쯤이야~ 오히려 당연하지!”

“그럼 어머님께서는 저를 두고 오늘 신행 정도로...! 저는 그것도 모르고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구실로만 여겨...!”

“너는 오자마자 가기는 어디로 간다고 그러니! 불쌍하고 가련한 이 시에미를 두고, 아직은 핏덩이인 네 아기를 두고 네가 가기는 어딜 간다고 그러니! 신행 온 새색시가 또 어디 부엌에 든다는 것을 고금을 통해서 듣거나 본적이 있다더냐? 더군다나 애까지 딸려 몸조리를 해야 할 판국에...! 그래 그렇지 너보다도 우리 손자, 그렇지 늦게나마 할미 노릇 한번 제대로 하려고 그런다. 그리고 네가 너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데 분골쇄신은 무슨...! 가정주부가 건강해야 집안이 건강한 게야!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차차 알게 될 거다. 네가 그 금가락지를 끼고 있는 한 이 집에서 쫓겨나는 일 같은 절박한 지경은 더는 없을 것이다. 이 시어미가 보따리를 쌌으면 쌌지...!”

“어머니께서 보따리를 싸시기는...! 이 금가락지 때문에 그러시나요! 저는 이 금가락지가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줄 몰랐습니다. 하오시면 이 금가락지를 다시 어머님께서...!”

“아서라~ 아서~ 그건 나중 이야기하기로 하고 어~여! 밥이나 먹자구나!”하는 시어머니는 다시 생선 가시를 발린다. 마음이 그래서 그렇게 보였을까? 처녀가 보기에 시어머니의 어깨가 전에 없이 좁아 보이고 기력도 달려 보인다. 원기회복을 위해 보약을 지어 드리는 일은 향후 일로, 이대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여긴 처녀도 마주 앉아서 시어머니의 밥술 위에 얻을 생선 가시를 발린다. 언뜻 보면 고부지간이 아닌 모녀지간만 같아 보인다. 그런 와중에 시어머니는 영감을 향해서

“저승길을 앞두고 마지막에는 영감밖에 없다고...! 영~감님! 오늘 먼 길에 수고 많이 했습니다. 그~래! 내 영감님이 좋아하시는 배추 지짐이에 갈치 조림을 자반으로 장만했네요! 고생한 영감님을 위해 지짐이도 넉넉하게 붙이고 갈치는 갖은 양념을 듬뿍 발라서 한 양재기나 조렸네요! 시장하실 텐데 많이 드시고 여기 따뜻하게 데운 정종을 반주로 한잔 하셔야지요!”하며 잔 가득 따르더니 이것저것을 권하여 접시를 들썩거린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른지 영감과 며느리의 시중들기에 여념이 없다. 전날에 어림없는 일들이 오늘 밤을 맞아서는 당연시가 되고 있다. 그 모습에 홀로 소외된 느낌이 들었는지 지금껏 말없이 꾸역꾸역 밥술만 뜨던 아들이

“어머니 저는 그럼 무얼 찬으로...!”하고 투정 반에 애교살 반일 때

“야~ 이놈의 새끼야! 네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하는데 아들은 손에든 수저를 놓쳐버릴 정도로 놀랐다. 전날 같았으면 어머니의 입에서‘이놈’이라든가 ‘새끼야!’같은 말은 어림도 없었다. 사대부가의 아녀자답게 늘 교양있게, 조리에 맞게, 조곤조곤 타이르듯 말을 하는 어머니다. 한데 대뜸 욕설 같은 육두문자를 앞세운다. 게다가 아버지까지 묵묵부답으로 수저만 놀린다. 채신머리가 없다는 둥, 양반 집안에서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라는 둥, 아녀자의 목소리가 어딜 담을 넘냐고! 집구석 망하게 하려고 아주 발악을 하구나! 하며 한바탕 꾸중이라도 내리 법도 한데 못 들은 척 못 본 척이다. 당황한 아들이 그저 어머니의 입만 희멀겋게 쳐다보는데

“하는 짓거리로 봐서는 사나흘씩이나 밥을 통째로 굶겨도 시원찮을 놈 같으니!, 지~ 댁을 똑바로 건사해서 챙길 줄을 아나! 그 날수에 눈매가 닮았는지, 입꼬리가 닮았는지, 손가락이 닮았는지, 하다못해 머리카락이라도 닮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든? 아비란 것이 인정머리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러는 건지, 제 놈이 뿌린 자식새끼를 두고 찾아보기를 하나! 일삼아 보내서 찾은들 또 뭣하나! 얼굴도 안 들여다보고 허탕으로 오는 주제에! 그래놓고 후일 애비라고...!, 지 마누라 얼굴을 어찌 보려고...! 설령 이 어미가 며느리가 둘이라 복에 겨워 막무가내 지 댁을 친정으로 쫓아 보낸다 치더라도 맞서서 대거리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바보 천치 같은 놈...! 초례청을 마주하여 꼬꼬-재배로 흰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의 언약으로 평생을 같이할 조강지처가 죄도 없이 쫓겨나건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놈이 뭘 잘했다고 반찬 투정에 투정질이야! 내 배속으로 열 달을 애써 키워 내질렀지만 지지리도 못난 놈 같으니!”하더니 일 없단다. 그동안 삼대독자로, 귀한 아들이라 여겨 차마 못 했던 말을 속풀이 하듯이 한꺼번에 쏟아 놓는 듯도 싶었다. 처녀가 가만히 들어보니 처녀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시어머니가 대신하는 듯도 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지경인가? 하는 후회와 회한에 묻어나 보였다. 그즈음 자는 듯 요람에 누웠던 아기가

“응~애! 응~애”하고 운다. 배가 고픈 듯 울어 보채자 시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으로 며느리를 돌아보며 한다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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