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0)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9.0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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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이 모습을 본다면 분명 눈살을 찌푸릴게 뻔하다 여긴 때문이다
산골 살림에 성의 없이 고구마나 감자, 무, 배추, 쌀되로 채워 드릴 수도 없고...!
가슴앓이에 아비어미의 미운털이 더한 마음고생이라 생각한 것이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시집으로 갈 때는 낡고 해진 옷을 꿰매서 입고, 친정으로 걸음을 할 참이면 새 옷으로 한껏 차려입으라고 했는데 청개구리귀신이 씐 것도 아니고 그 반대라니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별빛도 부끄러운 밤을 빌어 헌 옷 보따리 하나 들고선 비루먹을 강아지 모양으로 이 한 몸 의지하고자 친정을 찾아들 때는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한데 연지곤지에 족두리 쓰고 꽃단장에 새로이 시집을 가는 것도 아니고, 신랑의 등골을 뽑아 먹는 듯, 뼈 빠지게 번 돈으로 사치를 부려 몸치장으로 탕진하는 모양, 시어머니가 이 모습을 본다면 분명 눈살을 찌푸릴게 뻔하다 여긴 때문이다. 하지만 이리저리 둘러서 옷매무새를 찬찬히 살펴서 보는데 몸을 감싼 의상이 더없이 화려하고 예쁘긴 예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치를 부렸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옷이 날개로 몸이 영화 인양 자랑스러웠다. 두 번 세 번 고개를 돌려가며 몸매를 살펴보는데 담장 아래로 곱게 핀 황국(黃菊)무리가 하늘을 향해 웃고 있다.

처녀도 어느새 한 떨기 황국으로 동화되어 그윽한 눈빛으로 치맛자락의 맵시를 손으로 어루만져 내려다보자 연녹색 뇌록(磊綠)을 곱게 갈아 물을 들인 듯 상큼한 연두색 치마가 발걸음에 따라 가을 코스모스로 하늘거린다. 눈길을 위로 올리자 미색 계통의 저고리는 잘 익은 복숭아를 연상시키는 듯 은은한 분홍색이 추풍을 거느려 살포시 내려앉았다. 목을 감돌아 흘러내린 동정이 하얘서 곱다. 그 아래로 감색으로 굽도리를 두른 듯 목덜미를 감싸 흘러내리다가 앞가슴에서 봉긋 솟아올라 매듭진 모습이 한 떨기 함수화가 활짝 핀 모습으로 화려하다. 소매 끝으로 폭넓게 두른 새하얀 테두리가 하늘에 둥실 뜬 새털구름처럼 가볍다. 게다가 고급비단이라 그런지 몸에 착착 감기는 감촉이 더없이 매끄럽다. 아쉬움이 있다면 저고리가 허리에서 헐렁한 듯 겉돈다는 느낌이다. 치마야 허리춤에서 치맛말기를 다잡아 매듭을 지으면 되지만 저고리는 아무래도 허리께로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미쳐 못 가지고 온 치마저고리를 기준으로 만들다 보니 그렇다 여겨도 줄어든 허리가 오랑캐 땅으로 시집간 중국 4대 미인으로 왕소군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여 읊었다는 시 구절만 같아서 씁쓰레하다.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이나 긷고 대청 바닥을 걸레질이나 하던 하찮은 무명의 궁녀에서 화번공주가 되어 흉노의 호한야 선우를 따라서 오랑캐 땅에서의 고단한 시집살이 중에 줄어든 허리를 두고 왕소군은 ‘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이는 허리 몸매를 위함이 아니었도다)이라 시를 지어 읊었다. 처녀가 줄어든 허리를 두고 몸을 비틀어가며 옷매무새를 어루만져가며 숨기려고만 들 때 등 뒤에 서 있던 처녀의 어머니가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 안절부절 못 한다.

손톱을 앞니로 질근질근 물어뜯다 영감을 바라다보다가, 사위를 향해 애절한 눈길을 보내다가는, 급기야 발을 동동 구른다. 초조해하는 모습으로 보아 가슴속에 든 못 다한 말들이 한참이나 남아있어 보였다. 몸을 비비 꼬아 발을 동동 구르던 장모자리가 하늘을 쳐다보다 땅을 내려다보다가는 마침내 중차대한 결심을 굳힌 듯 바깥사돈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서더니

“저~ 저! 바깥사돈께서 이렇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시면 저희 들은 섭섭해서 어떻게 합니까? 기왕에 하신 어려운 걸음에 하룻밤 묵어가시면 아니 될런지요?”하며 얼굴을 붉힌다. 만약을 대비해서 비록 행장에 두어 벌의 여벌 옷을 준비는 했을지라도 안사돈이 이렇게 청하는 것은 바깥사돈으로서는 예상 밖으로 전혀 뜻밖이다. 떠날 때 여벌 옷을 챙긴 뜻은 일이 틀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인데 지금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안사돈의 말씀에 따라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아니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저 애의 시어머니 때문에라도...!”

“안사돈께서도 하룻밤쯤이야! 이해하시겠지요! 그래도 이대로 그냥 가시면 음식을 담아온 저 광주리랑 빈 상자는 어떡합니까? 산골 살림에 성의 없이 고구마나 감자, 무, 배추, 쌀되로 채워 드릴 수도 없고...!, 저의 집에서도 변변찮지만 작으나마 정성을 보이자면...!”하며 애절한 눈빛을 띄울 때

“난 또 무엇 때문에 그러신다고,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저 애 시어머니가 떠나 올 때 신신당부하길 사돈댁에서 빈 상자를 채우는 등으로 애를 쓰지 않게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사돈 내외분을 골물(‘어렵고 힘들게’라는 사투리)스럽 할 요량으로 장만한 음식이라면 아예 준비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음식을 준비한 뜻은 에오라지 살아생전 며느리를 다시 보는 것이 소원인데 그 원을 이룬 것으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다네요! 따지고 보면 그건 당연하지요! 이제 며느리를 다시 맞아들이고 삼대무매독자(三代無妹獨子)인 우리 떡두꺼비 같은 손자 ‘금동’이를 보는 마당에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세상을 다 가진 것이나 진배없는데요! 예~ 예~ 그렇습죠!”하는데도 장모자리는 연신 아쉬움이 남는지

“그래도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낯짝 두껍게...! 낯짝 부끄럽게...!”

“아~ 아닙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예서 이만 돌아가고 저 애, 손자의 걸음걸이가 어지간하면 그때는 저 애, 가족을 함께 보내드리리다. 그 편에...!”하는 데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는지라

“예~ 저희 들은 그저 산골에 처박혀 세상 물정 모르고 사는 무지렁이라 대접도 그렇고 예의범절도 몰라 그렇습니다. 너무 흉은 보지 마십시오! 그럼 염치불구...!”하고는 숙원의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발걸음도 살랑살랑 천상의 선녀가 구름 위를 걷는 듯 딸내미가 눈앞을 지나는데 유난히 허리가 잘록하게 보여 무심코

“애야 너의 잘록한 허리의 뒤태를 보자니 아직도 처녀 적만 같구나!”하더니만 차마 못 할 말을 했다 싶은지 다음 말을 꿀꺽 삼킨다. 여자가 아기를 출산하고 나면 젖은 불어나고, 몸매는 살이 붙어 이는 것이 정상이다. 산기가 남고 부기가 빠지다가는 일부가 살로 남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처녀는 이를 거스르고 있다. 안사돈께서 이 모습을 본다면 속으로 친정어미를 들어 얼마나 원망하실까 싶다. 이웃의 호명댁이라면 남 말하듯 멋모르고 입에 담을 수는 있을 지언 정 친정어미가 입에 담을 소리는 진정으로 아니라 싶어 서다. 급하게 뒤돌아서 콧물을 훌쩍이며 소맷자락으로 눈두덩을 문지른다. 그때 장모자리는 처녀의 줄어든 허리를 두고 처녀가 친정에 머무는 동안 나날이 겪는 가슴앓이에 아비어미의 미운털이 더한 마음고생이라 생각한 것이다. 처녀의 어머니가 차마 못 볼 것을 본 듯 고개를 돌릴 적에 처녀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은 듯 품 안의 아들을 내려다보며 어르고 있었다.

양손 엄지손가락에 꿀이라도 바른 양 입안 깊숙이 밀어 넣어 이쪽저쪽을 번갈아 가면서 공갈 젖꼭지를 빨 듯 빨던 아기는 어머니의 얼굴이 다가들자 금세 방실방실 웃는다. 양손은 바르르 떨어서, 발바닥을 살랑살랑 흔들어 ‘까르르 깔깔’웃는다. 할머니가 정성으로 보내준 강보에 휩싸인 안락함에 기분이 좋은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에 써보는 남바위가 마음에 드는지, 옅은 화장을 한 어미의 얼굴이 화사하고 고와 선지, 치렁치렁하던 흑발을 뒷머리에 곱게 말아 올려 옥비녀를 질러 단장한 모습이 월궁의 항아님인 듯, 어미의 가슴 벅찬 환희가 텔레파시로 전해오는 듯 그저 좋아라 방긋방긋 웃는다. 실로 오랜만에 티 없이 밝고 맑게 웃는 아들을 어르는 처녀는

“오~냐! 오~냐! 그~래! 그래! 내 아가야~ 오늘로써 네가 어미 품을 떠나서 아버지를 찾는다면 이제 이 어미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더는 원이 없겠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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