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진 변호사의 '법'과 '사람'
이종진 변호사의 '법'과 '사람'
  • 강효금 기자
  • 승인 2022.09.01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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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서 대구지역 전체 수석으로 서울대 법학과 진학
26세, 이른 나이에 대기업 법무팀 입사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법'에 대한 고민에서 로펌으로 자리 옮겨
성을 쌓아 올리는 일과 같은 '상속 플랜', 빠를수록 효율적
'법'과 '사람' 사이,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고민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종진 변호사. 이원선 기자
'법'과 '사람' 사이,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고민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종진 변호사. 이원선 기자

‘법과 원칙’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가 법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지켜야 하는 법. 그 법을 우리 생활에 적절하게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잘 설계해서, 후손들에게 풍족하고 행복한 청사진을 만들어 줄 수 없을까?

그 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이종진 변호사를 만나 법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지금 로펌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는지요?

▶트리니티 로펌은 중견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법률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경영과 관련된 지원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축적된 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또 효율적으로 후손에게 물려주고, 그동안 일군 사업체를 누구에게 승계하고 이윤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 컨설팅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법무법인 트리니티에서는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업 법무 분야가 하나 있고 개인 자산 분야가 있어, 상속 설계와 상속 분쟁에 대응하는 팀이 있습니다. 공적인 업무와 관련되는 법률적 지원과 사적으로 가정에 관련된 상속과 같은 업무 지원을 동시에 하는 셈입니다.

-공적, 사적 법률지원이 모두 가능하다는 얘기네요. 그러면 상속 준비는 언제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키는 상속 설계’입니다. 상속은 신탁, 보험 및 세금 등과 관련된 여러 장치가 필요합니다.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며, 별 탈 없이 위험 요소를 최대한 제거해서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상속 설계’는 자산을 지키는 보호막입니다. 저는 이 상속설계가 튼튼한 성을 쌓는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차근차근 튼튼하게 높게 쌓아 올릴수록 위험 부담은 훨씬 줄어들겠지요. 얼마 전, 한 고객을 만났습니다. 여러 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자신의 사후에 그 자산을 지키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자식들이 지닌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경영권과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 배분에 대해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컨설팅을 해 드리며 두 가지를 분리해서 가져갈 것을 권했습니다. 경영은 가장 믿음직하고 능력이 있는 자녀에게 일임하고, 하지만 수익에 대해서는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골고루 배분하는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많은 분이 아직도 유언장을 작성하는 걸로 상속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한 방법에 기대지 말고, 법률적 유지 장치를 마련하시라고 권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존재합니다. 상속 설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40대부터 시작한다면 더 촘촘하게 새 나가지 않게 견고한 성을 쌓을 수 있겠지요.

더디지만 찬찬히, 그의 학창 시절

-수능 시험에서 대구 1등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대구에서 다녔습니다. 집이 내당동 근처에 있었는데, 한 번도 학원에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과외 교사를 한 적은 있지만, 과외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혼자 공부하고 저만의 공부법을 찾는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로, 늘 출발은 느렸습니다. 계성고등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도 컸겠지요. 그런데 배치고사에서 45등을 했습니다.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배치고사 문제는 중학교 과정이 반, 고등학교 과정이 반이었습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던 제게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키가 커서 농구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여전히 제 리듬을 지키며 그렇게 나날이 성적은 상승했습니다.

처음 대학입시에서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학원에서 새로운 공부 방법을 배우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나가며,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할 만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수능 점수가 발표되던 날, 400점 만점에 전국 수석이 396점. 제가 392점으로 대구에서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원서를 쓰기 위해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어느 과를 지원할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늘 역사학자가 꿈이었기에 사학과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시더니, 당장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무덤이나 파고 유물을 캐내는 역사학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부모님은 선생님의 권유대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원서를 넣기 원했고, 그렇게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법과 역사, 사람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이원선 기자
법과 역사, 사람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이원선 기자

‘법’과 ‘사람’의 간격

-수재만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법학과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서울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친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서울대에는 서울 출신과 지방 출신이 각각 50%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촌놈’임을 절실히 느끼며,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저만의 방식을 이어 나갔습니다. 법전은 한자로 되어 있어 한자 공부가 먼저라 생각하여, 옥편 한 권을 사서 끼고 다니며 한자를 공부했습니다. 동기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느끼며, 혼자만의 정해진 방식을 따라 공부하고 틈틈이 동아리 활동도 즐겼습니다. 그렇게 26살 때, 선배들의 권유로 대기업 법무팀에 입사했습니다.

-입사 시기가 굉장히 빠릅니다.

▶고도 근시로 군 면제가 되어 이른 나이에 입사했습니다. 그때 처음 맡은 사건이 발달장애아를 가진 어머니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정작 보상금액도 적은 데다 승소 확률도 무척 낮은 사건이라, 왜 그 어머니가 이 소송을 했을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선배들은 이 사건은 결혼하지 않은 네가 맡아야 한다며, 제게 사건을 맡겼습니다. 마지막 선고가 내려지던 날, 흐느껴 울던 그 어머니의 모습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선배들이 왜 미혼인 제게 그 사건을 미루었는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그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대기업 법무팀에서 기업을 대리해서 사건을 맡다 보니, 점점 법과 사람 사이에서 회의하게 됐습니다.

사람을 위해 법이 만들어졌는데, 실상 사람에게 그 법은 얼마나 유익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법’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역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역사와 법률’이라는 콘텐츠로 모든 이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법률에 관해 이야기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