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호 관장의 슬픈 책, 풀짐과 아버지의 등
하청호 관장의 슬픈 책, 풀짐과 아버지의 등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8.03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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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진실의 언어, 감동의 대상
시는 선물처럼. 시는 감동으로 쓰는 것 아니라, 낳는 것
슬픈책, 풀짐과 아버지의 등, 강의를 하는 하청호(아동문학가). 유병길 기자 

 

하청호(아동문학가)

<2022 인문학 가치 확산사업. 작가콜로퀴엄 인문예술과학특강 8. 2. (화)>

1. 삶의 벼랑 끝, 그리고 글쓰기

어머니의 등

어머니의 등은 / 잠밭입니다 // 졸음에 겨운 아기가 / 등에 업히면 // 어머니 온마음은 / 잠이 되어 / 아기의 눈 속에서 / 일어섭니다 // 어머니 등은 / 꿈밭입니다// 어느새 / 아기가 // 꿈밭길에 노닐면 / 어머니 온 마음도 / 꿈이 되어 / 아기의 눈 속으로 달려갑니다 // 아기 마음도 / 어머니 눈 속으로 달려옵니다.

무릎 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 칠판도 없고 / 숙제도 없고 / 벌도 없는 / 조그만 학교였다 // 비바람이 불고 / 눈보라가 쳐도 / 걱정이 없는 / 늘 포근한 학교였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 귀한 것들을 / 이 조그만 학교에서 배웠다 // 무릎 학교 /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 어머니의 무릎 / 오직 사랑만 있는 / 무릎 학교였다.

2. 새로운 동시의 모색 / 잡초 뽑기 이후

잡초 뽑기

풀을 뽑는다 /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다 / 흙 또한 / 뿌리를 움켜쥐고 있다/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 / 호미 날이 칼 빛으로 빛난다 / 풀은 작은 씨앗 몇 개를 / 몰래 / 구덩이에 던져 놓는다.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비 오는 날 / 연잎에 / 빗물이 고이면 / 가질 수 없을 만큼 / 빗물이 고이면 //고개 살짝 숙여 / 또르르 또르르 /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을 // 누가 가르쳐주었을까 / 가질 만큼만 담는 것을.

'동심과 시심, 그 정치(精)한 교직'을 강의하는 하총호 관장. 유병길 기자

 

3. 동심과 시심, 그 정치(精)한 교직

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등에서는 /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 아버지는 울지 않고 /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 그 속울음이 /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핑계

나는 잘못했을 때 / 핑계 뒤에 숨는다 // 아빠도 약속을 어겼을 때 / 핑계 뒤에 숨는다 // 엄마는 우리가 핑계 뒤에 / 숨는다는 것을 안다 / 다만 모른 척할 뿐이다// 아빠는 내게 말했다 / - 네 엄마는 그냥 엄마가 아닌 / 어머니다.

다가가기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 다문화 짝꿍에게 다가가기 // 나비를 잡을 때처럼 / 너무 세지 않게 / 너무 약하지 않게 // 나비가 상처 입지 않을 만큼 / 날아가지 않을 만큼 // 꼭 그만큼의 힘으로 / 꼭 그만큼의 마음으로 // 너를 향한 설렘만큼 / 꼭 그만큼 / 두근두근 다가가기.

책을 거꾸로 꽂았다

슬픈 책을 거꾸로 꽂았다 / 책의 내용도 / 거꾸로 되었으면 좋겠다 // 부모와 헤어짐은 / 거꾸로 / 헤어지지 않게 / 나쁜 사람에게 잡힌 것은 / 거꾸로 잡히지 않게 // 힘들고 아픈 주인공의 삶이 / 거꾸로 되었으면 좋겠다 /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청호 관장의 강의를 경청하는 모습. 유병길 기자

 

4. 퇴임 후, 팔공산 시실(室) / 국어 교과서 수록 동시 중 2편

그늘

나는 커다란 그늘이 되고 싶다 / 여름날 더위에 지친 /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여린 풀과, 어린 개미, 풀무치, 여치 / 그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 작아 / 조그만 그늘만 드리우고 있다 / 언젠가 나는 크고 튼튼하게 자라 / 이 세상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을 / 내 그들 속에 품어 주고 싶다// 햇볕이 강하고 뜨거울수록 / 더욱 두터운 그늘이 되어 / 그들을 품어 주고 싶다.

여름날 숲 속에서

여름날 숲 속에서 / 크고 우람한 나무 밑둥치를 보며 / 아버지의 다리를 생각한다 /어린 나를 업고 / 냇물을 건널 때의 아버지의 다리 / 세찬 물살을 헤치며 /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 데려다 준 아버지의 다리 / 거름을 져 나르며 / 우리 집의 생활을 짊어진 아버지의 다리 / 내가 이 세상을 잘 건너가라고 / 크고 튼튼하게 다리를 놓아준 / 아버지의 다리 / 나는 여름날 숲 속에서 / 내 아버지 다리 같이 이 땅에 굳건히 / 뿌리를 내린 / 푸르른 나무를 본다.

대구문학관 하청호 관장. 유병길 기자

 

하청호(아동문학가) 영천에서 태어났다.

삶의 벼랑끝,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 무겁게 강의를 시작하였다. 당시 경고 3학년인 친형이 작성한 2.28 선언문으로 참담하였던 가정사를 털어 놓으면서 형으로 인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상주에 교사 발령을 받아 문예부를 담당한 것이 글을 쓰게된 동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1972년 매일신문, 73년 동아일보 동시 신춘문예 당선, 76년 현대 시학으로 등단 50여 년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빛과 잠’ 외 동시 동화집 22권, 시집 3권, 산문집 3권을 냈다. 세종아동문학상(76), 대한민국문학상(89), 박홍근 아동문학상(89), 방정환문학상(91), 대구시문화상(2005), 윤석중문학상(06), 대한민국예술문화상(22)을 수상하였다. 하청호 관장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동시문학회 및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자문위원으로 중앙에서 대외적인 활동을 하면서 대구의 아동문학을 전국적으로 많이 알렸고 대구의 아동문학 위상이 높아졌다.

동요풍의 동시(윤석중 등)가 주축을 이루었으나, 1960년대 시적 동시로 전환되었다. 빛과 잠(형체가 없는 것)으로 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얻은 것은 시요, 잃은 것은 동시”라는 말도 있었다. 자기만의 시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동시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시와 구분하고, 서양과 미주는 구분이 없다.

동시는 예쁘게 꾸미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본질을 추구 진실한 것을 찾아서 쓴다. 시는 진실의 언어다. 감동의 대상이다. 시는 선물처럼 온다. 시는 감동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낳는 것이다. 세월의 깊이가 깊을수록 시적 재산이 많다. 문학적 상상력이 과학적 상상력을 앞질러 간다. 소설은 읽고 이해하지만 시는 가슴에 닿는다. 두근거리게 한다. 시는 짧지만 엄청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시는 읽으면 바로 감동을 느낀다. 가슴이 울렁인다. 사물이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보여 준다.

현직에 근무할 때 10여 년 시를 못 썼으나, 06년 정년퇴임 후 지금까지 팔공산 시실에서 다작 여러 권을 출간하였다.

무릎 학교 - 진실이 있다. 효자 효녀 이야기.

잡초 뽑기 - 환상의 공간에서 땅으로 내려온 작품, 환상과 현실을 중시한 작품이다.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 연잎은 현실을 보여 준다. 산문이 길이라면 시는 징검다리 같다. 상상을 연결하는 공간이다. 사물이 하는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여 주는 것은 시인이다. 위의 시 외에 자료에 수록된 7편에 대하여 한 편 한 편에 대하여 시를 쓰게 된 동기와 배경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감동을 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한 권만 남아있다는 빛과 잠. 유병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