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를 찾아서⑲- 대구 동구시니어클럽 시장형 일자리 '은빛나눔이미용실'
노인일자리를 찾아서⑲- 대구 동구시니어클럽 시장형 일자리 '은빛나눔이미용실'
  • 도창종 기자
  • 승인 2022.07.28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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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한올한올 정성으로 다듬는 '어르신들의 가위손'
사랑과 봉사의 가위손으로 어르신 행복 다듬어요.

지난 27일 대구 동구 강동어르신행복센터(관장 이대주) 3층 '은빛나눔이미용실' 오전 9시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르신 서너 명이 들어섰다. “내일 볼일 보러 가요. 단정하게 보이게 뒷머리와 옆머리는 약간만 잘라줘요. 그렇다고 머리카락이 너무 없어도 안 되고, 가위질도 꼼꼼히 잘 해주세요” “염려 마시라, 잘 해드리겠습니다"며 이미용사 어르신들은 슥삭슥삭 부드럽게 가위질을 시작했다. 베테랑 이발사답게 가위질에 거침이 없었다.

자르고 다듬기를 반복하는 가위질, 바리캉(bariquant)소리 또한 시계 소리마냥 규칙적이면서도 부드럽고 살갑다. “내가 이래서 여기에 온다니깐” 거울 속 머리 모양을 바라보던 한 어르신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또한 어깨에 커트 보를 걸친 다른 어르신들은 부드러운 가위 소리가 즐거운지 웃음꽃이 만발했다.

어떤 어르신은 누구 머리를 더 예쁘게 다듬었는지 보려고 옆 어르신의 머리를 힐끗 힐끗 쳐다보기도 한다. 이미용인들은 머리를 손질하는 내내 어르신들의 건강은 어떤지, 생활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건강은 어떠신지를 물으며 다정스럽게 말동무까지 한다. 그리고 머리 커트를 하고 난 뒤, 어르신들의 건강을 생각해 두피 마사지도 빼놓지 않는다.

이미용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커트와 파마를 하고있다.
이미용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커트와 파마를 하고있다.

이곳은 대구동구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2014년 2월 문을 연 시장형 노인일자리 '은빛나눔이미용실'이다. 각 27㎡(8여 평) 남짓한 이미용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이발소 그림, 낡은 선풍기 등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물건들로 가득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하면 오산(誤算)이다. 이미용실은 깨끗한 의자, 무더위를 식혀주는 에어컨, 이발기구를 소독하는 소독장, 세면장, 정돈된 깨끗한 수건과 커트보, 이발도구들도 빤짝 빤짝하다.

이미용실에서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환갑을 훌쩍 넘긴 전직 이미용사 8명이 활동하고 있다. 평균 나이만 70세 이상. 이미용사 경력도 최소 40~50년 이상이다.

여기서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모두 젊은 시절 ‘머리손질을 참 잘한다, 실력이 좋다’는 말을 꽤나 많이 들었던 베테랑 이미용사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은퇴를 해야 했다. 헤어스타일 유행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이미용실도 체인화, 대형화하면서 손님들이 점점 젊은 미용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대구 동구 시니어클럽이 노인일자리 창출 사업의 하나로 '은빛나눔이미용실'을 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위손 어르신’들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은퇴 후에도 “다시 가위를 잡고 싶다, 일하고싶다”고 늘 생각해 왔다는 어르신들은 이미용기술 자격증을 가지고, 실기와 면접을 거뜬히 통과하고, 현장에 복귀하게 됐다.

'은빛나눔이미용실'은 문을 열면서 먼저 가격을 낮췄다. 어르신들이 주(主) 고객인 만큼 다른 이미용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였다. 커트 6,000원, 이용실 염색은 8,000원, 미용실은 커트+파마(permanent) 12,000원, 코팅파마는14,000원으로 시내 대형 미용실의 절반 가격도 안 된다. 그렇다고 싼 약품이나 기계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고급 미용실에서 쓰는 고급 파마약은 물론 각종 이미용에 좋은 재료와 장비를 갖췄다.

그러자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솜씨가 좋다, 우리와 같은 동년배 노인들이 이미용을 해주니 좋다, 친절하다" 는 입소문이 돌면서 강동어르신행복센터 회원은 물론  인근 동구지역 주민의 65세 이상 어르신들 손님들이 많이 몰렸다. 최근엔 할머니와 같이 오는 할아버지 손님도 부쩍 늘었다. 어르신 손님 다섯 명 중 한 명은 60대이다.

어르신 이미용사들은 3인 1조로 1주일에 3일, 하루 오전10시 부터 오후 3시까지, 한 달 13~15일 일하고, 급료를 받는다. 토. 일· 화요일, 공휴일은 쉬다 보니 일반 이미용사들보다 많이 벌진 못하지만 “돈 버는 재미보다 봉사, 일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배재수(75) 이용사는 "손 기술 하나로 어르신들께 행복을 줄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깔끔하게 손질된 어르신들 머리를 보면 마음이 즐겁습니다“고 말한다.

변희순(75) 미용사는 "머리카락, 염색약이 몸에 덜 튀게 최대한 조심하면서 일을 한다"며 "멋있어졌다며 좋아하는 어르신을 보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된 것 같아 흐뭇했다"고 말했다.

이정미(73) 미용사는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머리가 마음에 든다’는 손님 말만 들으면 절로 신이 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커트와 염색하러 이용실에 종종 온다는 어르신 손님 이양기(79) 씨는 “다른 이용실에서 커트와 염색을 하면 가격도 만만하지 않고, 머리가 가끔 따끔거려 불편했는데, 여기선 그런 게 전혀 없다”며 “가격도 저렴해 단골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이옥주 동구시니어클럽 시장형 일자리 담당  팀장은 "먼저 임대료가 없고, 정부 보조금도 받고 있어, 질 좋은 약품과 좋은 기계를 쓰면서도 저렴한 가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유행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문 이미용실에서, 참여자 어르신들은 개인적으로 신기술도 배운다고 귀띔한다.

사회복지법인 감천복지재단(대표이사 이정아)이 2009년 4월 1일 대구광역시로부터 지정받아 운영되는 대구동구시니어클럽(관장 서병철)은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의 사회참여 및 여가활동을 지원하는 생산적 복지기관으로 최근 급격한 고령화와 노동시장 여건변화에 대응해, 노인 능력에 맞는 적합 직종 개발과 일자리를 지원하는 노인일자리지원기관으로, 2012년 노인일자리사업 보건복지부 평가 최우수기관 선정, 2017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노인일자리 우수사례공모전 대상 수상, 2018년 노인일자리사업 보건복지부 평가 공익형 최우수기관 선정됐다.

대구동구시니어클럽 2022년도 노인일자리는 공익형 '학교급식도우미' 외 14개사업, 사회서비스형 '보육시설도우미' 외 6개 사업, 시장형사업단은 '은빛나눔이미용실' 외 12개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 모집은 매년 12월 동구시니어클럽 홈페이지에 공고한다. 시장형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고 싶은 만60세 이상 어르신은 신청 기간 내 동구시니어클럽을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시장형 '은빛나눔이미용실' 참여자 활동 조건은 1일 5시간, 월 13~15회 (토, 일, 화요일 공휴일 휴무), 일하고 급료를 받는다. 동구시니어클럽 문의 053-959-2277

'은빛나눔이미용실' 이 큰 호응을 얻자 이옥주 노인일자리담당 팀장은 “다른 단체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겠다며 매달 1~ 2차례씩 전화로 문의해 오고 있다”며 “지금은 시기상조이지만 기회가 되면, 어르신 이미용실을 적극 홍보해 일자리를 늘려나갈 계획이다”며 “값은 싸지만 실력은 최고인 '은빛나눔이미용실'에서 더 많은 어르신들이 멋쟁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이야기한다.

노인일자리 참여자 미용사들이 담당 사회복지사 팀장과 같이 파이팅을 하고 있다.
노인일자리 참여자 미용사들이 담당 사회복지사 팀장과 같이 파이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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