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71) 고구마와 고구마꽃
[꽃 피어날 추억] (71) 고구마와 고구마꽃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7.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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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의 품종은 물고구마, 밤고구마, 호박 고구마, 자색 고구마등이 있다.
고구마의 꽃. 유병길 기자

 

1950년~60년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보리를 베면 메주를 끓이고, 청국장을 담을 콩을 많이 심었다. 다음으로 겨울 양식으로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고구마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763년 영조 39년에 대마도에서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었다. 고구마는 식량부족을 해결하여준 구황작물이었다.

온상 만들곳의 땅을 파고 볏짚, 마구간 두엄을 넣었다. 유병길 기자

 

고구마를 심으려면 고구마순이 있어야 한다. 고구마순을 생산하기 위하여 양지바른 곳에 폭 1.2m 길이는 3~4m 정도의 온상을 만들었다. 온상을 일찍 만들어 고구마를 심어야 고구마순을 많이 생산할 수가 있었다. 남쪽은 깊게 북쪽은 조금 깊게 흙을 파내고 썩지 않은 마구간 두엄이나 짚을 넣고 쌀겨를 한층 한층 뿌리며 단단하게 밟았다. 두엄을 구덩이에 가득 밟아 넣고 위에는 흙을 덮었다. 긁은 말뚝을 앞쪽 두 구석에 땅 위 30cm 정도 올라오게 박고, 뒤쪽 두 구석에는 50cm 정도 땅 위에 올라오게 박고 위에 긴 서까래를 걸치면 직사각형의 온상이 되었다. 서까래와 땅 사이는 헌 가마니나 볏짚으로 막았다. 온상 위에는 가마니나 이엉으로 덮었다. 온상 속의 두엄이 썩으며 열이 나면 씨고구마를 넣어 고구마 싹을 틔워 키웠다. 고구마를 심을 때 길게 자란 고구마순을 15~20cm(7~8마디)정도로 잘라서 밭에 심었다. 고구마 순이 부족하면 2~3마디로 짧게 잘라서 심기도 하였다.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 유병길 기자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는 사랑방 구석에 수숫대로 발을 엮어 둥글게 세우고 고구마를 가득 넣어 보관하면서 솥에 쪄서 점심, 저녁밥 대용으로 많이 먹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주머니에 생고구마를 넣고 다니며 입으로 껍질을 깎아서 먹었고, 화롯불에 작은 고구마를 넣어 구워 먹었다. 썰매를 메고 얼음판에 나갈 때는 고구마 한두 개는 가져갔다. 찐 고구마를 칼로 잘라 하루 이틀 말리면 쫀득쫀득하여 아이들 간식이 되었고, 바싹 말려서 보관하면서 먹기도 하였다.

70년대 초반 통일벼 묘판 용 비닐이 처음 공급되면서 온상 위에 가마니 대신, 대나무 골주를 꼽고 비닐을 덮었고 밤에는 이엉을 보온하였다. 지온을 높여 고구마 싹이 빨리 자라게 되었다.

80년대 이후에는 비닐하우스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하우스 바닥을 파고 단열재로 짚을 넣고 씨고구마를 넣어 고구마 싹을 쉽게 키우고 있다.

 기형 고구마. 유병길 기자

옛날의 고구마는 대부분 물고구마였으나, 나중에 밤고구마가 보급되었다. 요즘은 호박 고구마, 속살의 색깔에 따라 노랑 고구마, 자색 고구마 등 다양한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섬유질과 무기물이 풍부하여 건강식품으로 재배되고 있다.

고구마는 꽃이 피지 않는 줄 알았다. 2010년대 지구온난화로 늦가을 기온이 높아 고구마를 늦게 캐었다. 고구마꽃이 핀 것을 처음 보게 되면서 즐거워하였다. 유리병에 물을 넣고 고구마 줄기를 꼽아 많은 분들에게 고구마꽃을 보여드린 기억이 있다.

예전에 보리 후작으로 고구마를 재배할 때는 10월이 되어야 고구마를 캐어 먹었다. 80년대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지역 낙동강 변에서 일찍 고구마를 심어 7~8월에 수확하여 판매하였다. 요즘 전라도 지역에서는 소득작목으로 대면적에 일찍 고구마를 심어 재배하는 농가가 많다. 빠른 농가는 7월 하순부터 고구마를 캐어 판매하기 때문에  8월 초순이면 햇고구마를 사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다. 저온 창고에 보관하면서 햇고구마가 나올 때 까지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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