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운수 좋은 날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2.07.04 10:00
  •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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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玄鎭健)이 지은 단편소설
1924년 6월 [개벽] 48호에 발표
사진 김채영 기자
사진 김채영 기자

대구문학관은 지난달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문학관 4층 기획전시실에서 '현진건, 운수 좋은 날'을 마련하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소설텍스트전시회'라는 실험적이면서 이색적인 행사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대구문학관은 지역의 대표 근대작가인 현진건의 소설 읽기를 통하여 ‘읽고’ ‘보는’ 것, 즉 ‘느끼고’ ‘생각하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면서 ‘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돌이켜 본다는 기획 취지를 담고 있다.

사진 김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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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은 당대 가난한 하층민들의 현실을 고발한 소설이자 1920년대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다진 작품이기도 하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주인공 인력거꾼에게 비 오는 날 불어닥친 행운이 결국 아내의 죽음이라는 불행으로 역전된다. 제목부터 반어적(反語的)인 소설이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 한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행운이 불어닥친다. 아침 댓바람에 손님을 둘이나 태워 80전을 번 것이다. 거기에다가, 며칠 전부터 앓아누운 마누라에게 그렇게도 원하던 설렁탕 국물을 사줄 수 있으리라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를 1원 50전으로 불러 세운 학생 손님까지 만난다. 엄청난 행운에 신나게 인력거를 끌면서도 그의 가슴을 누르는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하던 마누라 말이 계속 마음에 켕긴다.

그런데도 그는 손님과 흥정하여 또 한 차례 벌이를 한 후 기적적인 벌이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선술집에 들른다. 훈훈하고 따뜻한 선술집의 생생한 분위기 속에서 얼큰히 술이 오르자, 김 첨지는 마누라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건주정을 하며 원수엣돈을 팽개치기도 하고 미친 듯이 울고 웃는다. 마침내 취기 오른 김 첨지가 설렁탕 국물을 사 들고 집에 들어오지만 이미 숨진 마누라와 빈 젖꼭지를 빨고 있는 개똥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았던 오늘 닥친 마누라의 죽음에 김 첨지 혼자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이 소설은 반어에 의하여 그 비극적 효과가 잘 드러나고 있다. 하나의 초점을 향하여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또한, 비의 배경도 아주 의미 깊게 설정되어 있다. 끊임없이 환기되는 불결한 겨울비의 이미지는 아내의 죽음을 예시하는 기능적 배경일 뿐만 아니라, 김 첨지가 놓인 추적추적한 환경 자체를 상징한다. 그것은 식민지 도시 하층민의 열악한 삶을 그대로 표상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작가가 현실을 이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실상에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첨지는 한 개인을 넘어 식민지 민중이 겪는 고난을 대표하는 전형으로 부각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김 첨지라는 인물전형의 창조는 1920년대 중반, 민중의 삶을 주로 다룬 신경향파문학(新傾向派文學)의 대두와 그 맥락이 닿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 개인의 문학적 변모에 주목하여볼 때, 이 작품은 지식인 중심의 초기 자전적 소설을 청산하고, 식민지의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여 그 가장 큰 희생자인 민중의 운명을 추구하는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현진건의 소설 중 사회의식과 반어적 단편 양식이 가장 적절히 결합된 것으로서 1920년대 사실주의적 단편소설의 백미로 평가된다.

사진 김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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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낮 기온이 36도를 기록하던 지난주말에 소설을 읽고 있는 한 남성(방정헌 부산 해운대구 54)을 만났다.

"학창시절에 빈처,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습니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중인데 잠시 귀국하여 친구 만나려고 대구에 왔다가 우연히 문학관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종이책으로 읽었던 작품을 벽면에서 읽는 맛이 색다르긴 합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소설 텍스트 전시회라는 사실이 흥미를 끌기 충분하군요."

사진 김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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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1900년 9월 2일 대구 우정국장이던 현경운의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독립 운동을 하던 형 정건이 있던 중국 상하이의 후장(扈江)대학 독일어 전문부에서 공부하다가 마치지 못하고 1919년 귀국한다. 이상화 · 백기만 등과 동인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20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같은 해 11월 『개벽』 5호에 「희생화(犧牲花)」를 발표한다. 그러나 황석우가 이 첫 작품을 혹평하는 등 작가로서 산뜻한 출발을 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1921년 1월 『개벽』에 「빈처(貧妻)」를 발표함으로써, 아직 사실주의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때에 사실주의 작가라는 칭호를 얻고, 192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발돋움한다. 『백조』 동인을 거쳐 ‘파스큘라’와 ‘카프’로 이어지는 현진건의 문학적 편력은 사상의 변천 과정과 맞물려 있는데, 이는 3·1운동 실패 이후 젊은 지식인들의 의식을 점유한 낭패감과 좌절감에서 비롯된, 계급적 한계에 대한 자각이 그 추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