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공직 마치고 고향에서 퇴임식하는 이상기 지천면장
35년 공직 마치고 고향에서 퇴임식하는 이상기 지천면장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2.06.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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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福 면장' 수식어 붙으며 고향 면장으로 금의환향
임기 중 면지 편찬위원회 구성 최초로 면지 발행
이상기 면장 부부(가운데) 좌 우백선기 군수 부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유무근 기자>

 

2022년 6월 지방 단체장 선거가 끝남에 7월 1일 취임 준비와 정년을 마친 단체장 퇴임식 행사로 지자체에서는 분주하다.

6월 27일 칠곡군 지천면 3층 대회의실에서, 이상기 면장 정년 퇴임식이 열렸다.

이상기 면장은 1987년 경북 의성군 축산계 공직에 첫발을 딛고, 1992년 칠곡군 축산과로 발령받았다.

2018년 사무관으로 승진하여 석적읍 부읍장, 칠곡군 축산과장을 거쳐 2020년 1월 지천면장에 부임했다. 공직생활 35년을 고향에서 마무리하는 행운의 면장이다.

행사 직전 대기석에서 인자한 모습 이상기 면장 부부    <유무근 기자>

 

이날 퇴임식 행사에는, 백선기 칠곡군수, 김윤호 전 문화원 원장, 지천면 발전협의회 하용석 회장, 지천면 부녀회 김영순 회장, 지역 단체장, 면민과 이상기 면장 일가 가족들 부모님이 참석한 가운데 200여 명의 축하 인파 속에 퇴임식이 있었다.

이날 선출직 3선 임기 퇴임식을 마치고, 사실상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참석한 백선기 군수는 퇴임식 축사에서 이달 6월 말에 이상기 면장과 함께 퇴임하는 동기라며 애정을 표하였다.

면정(面政)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남다른 추진력과 열정으로 <면지 편찬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여러 업적을 치하하면서 초임 시절 지천면 순회 시 있었던 정감이 있는 사례들을 들려주었다.

이 면장은 짧은 면정(面政)이었지만, 임기 동안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 업적이 많다.

* 지천 면지(面紙)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과거 수십 년 동안에도 의욕은 있었으나 예산 문제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사업들을, 이 면장은 면지 편찬위원회를 통하여 열매를 맺고 있다.

지역민의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지천면의 중점 사업인 면지 편찬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 낙화담 저수지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면지 편찬위원회의 도움으로 왜군에 쫒기다 낙화담에서 뛰어내린 열녀의 유래와 전설을 담은 ‘쌍열비(雙裂碑)’를 제작 설치하여 지역 관광명소 발굴에도 기여했다.

* '신동재 아카시아 벌꿀 축제'를 기획하여 1999년부터 시행한 최초 입안자이다.

동 축제는 개막 후 연간 수만여 명이 운집하는 지천면의 대표축제 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 2010년 전국적 구제역 파동 때는 축산과장으로 재직하면서, 17개 방역초소를 운영하고 양돈 농가 돈주(豚主)들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이 남아있지만, 발 빠른 살(殺)처분으로 지역에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칠곡군수, 경북도지사, 경북 선관위위원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고, 2007년 식품부 장관상을 받은 바 있다.

지역 단체장 및 내빈 200여 명이 퇴임식에 참석했다.  <유무근 기자>

 

그 외에도 틈만 나면 23개 마을을 발품으로 일관했다.

면장실 문턱을 낮추고 이장 협의회. 단체장과의 소통에 주력했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이날 퇴임식에서 이상기 면장은, 마지막 공직을 고향에서 부모님 앞에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군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강조하면서 잠시 목이 매이기도 했다.

주변에 있는 작은 것들이라도 관광 자원 발굴에 노력하였으며, 지천면 신리 ‘동물 화장장’ 허가 취소 승소는 면민의 한 사람으로 선물 같았다고 했다.

‘면지 편찬위원회’ 사업은 면민들과 가교역할이 될 수 있다고 ‘면지 위원회’를 구성한 의미로 퇴임 소감을 밝혔다.

식전 행사로 지역의보컬 댄스예술단에서 축하 공연을 하고있다.   <유무근 기자>

 

백선기 군수는 그제 퇴임식을 한 군수로서 마지막 공식 단상이라 면민들과 감회가 남다르다고 하면서, 초임 시절을 더듬어, 앞에 자리한 이 면장의 부친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10년 전 지천면 초도 방문 시 ‘지천면 6.25 참전 전우회’ 사무실에 인사차 들렸는데, 태극마크 선명한 모자를 쓴 어르신이 많았어요. “내가 이상기 아버지 되는 사람이다”라며 저에게 다가오셔서 두 손을 잡으시며, “군수 양반! 우리 사위도 군청에 있고, 우리 아들도 군청에 있는데, 둘 중 하나라도 면장 좀 시켜 주시오”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임기 동안 순차적으로 두 분을 모두 면장으로 발령을 내었습니다. 그것도 아드님의 고향인 지천면장으로 발령해 주었습니다. 내빈석에 앉은 부모님께 묻겠습니다. 어르신! 그때 기분이 좋으셨지요? “예”하는 어르신의 대답에 장내는 웃음소리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오늘 퇴임식이 있기까지 가족들의 인내와 희생에 감사 인사도 덧붙였다.

이상기 면장 부모(가운데)  좌 우 큰형 내외가 양친을 부축하여  식장을 나오고 있다.  <유무근 기자>

 

▶ 그는 어릴 때 집안 분위기가 유교적이었다.

부모님의 엄격한 가르침 속에서 자란 탓에 매사 예절바르고 성실하고 사리분명하다. 그에게는 남달리 일상의 생활신조가 많다. 시대변천에 따라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좌우명은 <효(孝)는 모든 일에 우선한다>이다

아버지가 몸소 보여주셨던 효는 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이 면장은 고향 지천면 심천리 경로당 어르신들로부터 효자 면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생활신조를 열거해 보자면, <성실(誠實)은 나의 양심이다>,<언즉 실행(言則實行)> 말에는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며, 하루를 마감하며 오늘의 일과를 돌이켜 성찰하는 일<일일삼성(一日 三省)>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과라고 한다.

3남 1녀 막내로 심천리에서 태어나, 퇴임 후에도 양부모님과 형제들이 건재한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이상기를, 고향 사람들은 '리틀 자이언트( Little-Giant) 福 면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른다.

단체장들이 준비한 감사패와 꽃다발이 이상기 면장께 전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유무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