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단상(斷想)
소나기 단상(斷想)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2.06.22 15:0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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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은 강가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어느새 24절기 중 열 번째 절기 하지가 다가왔다. 절기에 관한 기사를 쓰기 시작한 지도 두어 해가 됐다. 해당 절기에 알맞은 사진 촬영을 위해 금호강을 자주 찾곤 했다. 올해 가장 긴 날의 일몰 광경을 촬영하러 예정 시각(19:54)보다 삼십여 분 일찍 신천과 금호강 합수 지점에 도착했다.

동쪽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한데 서쪽 하늘에 걸린 해님이 겨우 얼굴을 내밀고 인사한다. 폰과 카메라로 번갈아 가며 구름 사이로 해님이 들락날락하는 광경을 찍고는 잠시 한숨 돌리는데, 난데없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쿠르르…, 쾅” 하는 소리에 백팩을 머리에 이고 무태교 방향으로 뛰다가 길가 쉼터에 잠시 걸터앉았다. 검푸른 강물 위에, 도로 위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와 함께 이내 주위가 어둑어둑해진다. 강변길에는 이미 인적이 끊어지고 땅거미가 깔리고 있다. 숲에서 소리가 나고 갑자기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에 슬며시 겁이 나기 시작한다.

영화 ‘범죄도시 2’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해서 아내와 같이 다녀온 게 바로 어제가 아닌가? 베트남과 서울을 오가면서 납치와 살인을 일삼는 조폭을 일망타진하는 근육질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의 이야기다. 무표정한 살육자 강해상(손석구 분)의 소름끼치는 연기와 마석도 형사의 눈부신 액션 뿐인 전형적인 느와르 영화다. 그러나 피비린내가 나는 살육 현장은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주머니에 든 것은 없지만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몸도 옛날 같지 않으니 덜컥 두려움이 앞선다. 비가 멎는 듯하여 재빨리 일어나 강변길을 벗어나서 자동차 불빛이 번쩍이는 순환도로에 이르니 그제야 안심이다.

‘소나기는 소등을 타고 나눈다’는 옛말이 있다.

도로에 빗발이 더욱 굵어지는데 횡단보도 신호등은 멈춘 듯 무심하기 짝이 없다. 어둡고 인적이 끊긴 유통단지 산업용재관 거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괴괴하고 간간이 불 켜진 지하실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와 목덜미를 잡아챌 것처럼 등골이 오싹하다. 쫓기는 듯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 어귀로 들어서니 빗방울도 약해진다.

땀과 빗물에 흠뻑 젖은 옷가지를 현관에서 벗어 던지고 씻고 닦고 가만히 돌아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에 아직도 괴한 두엇은 대적해 볼 것 같은데….’

아름다운 노을과 난데없는 소나기, 검푸른 강물과 땅거미 속에 불현듯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공포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소나기가 잦은 철이 됐다.

금호강의 노을(하지 무렵, 무태교 부근). 정신교 기자
금호강의 노을(하지 무렵, 무태교 부근).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