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승리! 달리고 장구 치는 근대골목해설사 천성일
인간 승리! 달리고 장구 치는 근대골목해설사 천성일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2.06.16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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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장구, 마라톤, 댄스, 해설까지 인간 승리의 주역

70년대는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도시와 달리 시골에서는 통행시간이라고 해서 별다른 제약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기나긴 겨울밤이면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밤마실을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마실은 마을의 방언으로 밤마실은 밤에 이웃으로 놀러가는 것을 말한다. 어렸을 때 들었던 정겨운 이 말을 도심 한가운데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구 근대 골목으로 ‘밤마실’ 오라는 입소문을 타고 대구시민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다. 밤마실에 오면 청사초롱을 들고 해설사들로부터 곳곳에 숨어있는 골목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산예가, 이상화·서상돈고택 앞에서는 탁본, 압화, 달등, 시낭송, 장구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대구 근대골목 밤마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상돈 고택에서 제자와 장구 공연하는 천성일 해설사.     사진제공. 중구근대골목해설사회.
대구 근대골목 밤마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상돈 고택 앞에서 제자와 장구 공연하는 천성일 해설사. 사진제공. 중구골목문화해설사회.

그곳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우리가락과 대중가요를 넘나들며 흥을 돋우고 밤마실 나온 이들에게 장구 체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해설사가 있다. 그가 천성일 해설사(57)다. 그는 매주 금, 토, 일 3일간 이곳에서 장구 공연을 하는데 그를 만나기 위해 대명동에 있는 그의 강습실을 찾았다.

▶ 성장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영천 임고 수성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나왔습니다.

3남 1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지독히’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 밖에는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묘사를 지내는 10월이면 ‘묘사 떡’을 얻어 그것으로 며칠 동안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으니까요. 하루에 고작 서너 대의 버스가 들어오는 산골이었는데 한 번은 그 차를 놓쳐 집으로 돌아오다가 대문 앞에서 쉰 국수를 몇 번이나 씻어서 드시는 어머니를 봤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는지 평생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 형편에 공납금을 제 때 낼 수 없어 걸핏하면 복도에 나가 벌섰고, 수학여행 간다는 건 언감생심이었습니다.

형님은 중학교 졸업 후, 대구로 나와 스물다섯에 결혼했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나와 형님 댁에 있으면서 형님 처가의 소개로 칠성시장의 그릇도매점에서 일하다가 형님의 세탁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일하면서 회사 근처에 검도장이 있어 취미로 검도를 했습니다. 그 당시 형님은 제 명의로 대출받아 사업을 확장했는데 직원들의 월급은 챙겨주면서 돈이 부족하면 저와 동생의 월급은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챙겨주겠지 했지만 부도났고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았기에 저는 되레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피신처로 택한 것이 운전이었고 면허증을 일주일 만에 취득해 트레일러 운전했습니다.

마라톤대회에 300회 이상  참가하고 받은 메달들                                             우남희 기자
마라톤대회에 300회 이상 참가하고 받은 메달들. 우남희 기자

체격이 많이 왜소합니다. 젖은 물론이고 한창 먹을 청소년기에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왜소한 체격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외모를 보지 말고 석 달만 기회를 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했습니다. 석 달 뒤가 되니 그만두고 나갈까 걱정할 정도였으니 제 가치가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지금도 첫 이미지로 점수를 매기면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모로 불이익을 많이 당했기에 저는 절대로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취미로 검도와 마라톤을 하셨다는데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형님이 하는 세탁공장 옆에 검도장이 있어 취미로 검도를 했고, 마라톤은 우연찮게 하게 되었습니다. 검도 스승님이 제가 달려본 경험이 없다는 걸 아시면서도 단지 스승님보다 젊다는 이유로 달리기내기를 하자는 거였습니다. 스승님이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수 없어 처음으로 10km를 뛰었는데 제가 이긴 겁니다. 그 후로 첫 출전으로 북구청 주최 강북 마라톤, 이어 경산 하프마라톤, 경주 동아마라톤 풀코스 도전이 세 번째 출전경험이었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인천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308km를 횡단하는 울트라마라톤대회에 나가 완주했고, 대구 두류공원에서 광주 5.18 광장까지 215km를 달리는 동서화합 울트라마라톤에 출전하여 완주, 100km 이상의 울트라 마라톤을 57회 완주, 계명대 트랙을 100바퀴 이상 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마라톤을 하면서 주자走者를 위한 봉사단체인 ‘페이스메이커’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5시간짜리 페이스메이커를 100여 번 뛰었습니다. 완주와 우승메달까지 합하면 300개 이상이 됩니다.

마라톤대회장까지의 교통수단, 감기로 어렵게 완주했다는 등, 그 당시의 상황을 메모한 흔적들.    우남희 기자
마라톤대회장까지의 교통수단, 감기로 어렵게 완주했다는 등, 그 당시의 상황을 메모한 흔적들. 우남희 기자

김명민과 이봉주가 출연하는 ‘페이스메이커’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영화에 페이스메이커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정돈뿐만 아니라 아무리 바빠도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관계를 유지하고 술과 담배는 물론, 먹는 것도 소식을 합니다. 결백증이라고 할 정도로 깔끔하고 일할 때는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승부욕이 강하며 또한 늘 겸손한 편입니다.

▶장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검도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노령인구가 늘어나는데 계속 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댄스스포츠를 하게 되었지요. 5년도 채 되지 않아 코로나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대면 수업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는데 댄스스포츠는 대면 접촉을 해야 하는지라 한 마디로 직격탄을 맞은 겁니다. 저는 눈썰미가 뛰어나고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제 것으로 소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고장구를 처음 접한 것이 유튜브를 통해서였는데 유튜브로 독학하고, 일 년 동안 학원에서 배우고 겁도 없이 바로 강습소를 차렸습니다. 장구를 접한 지 3년이 채 못 되어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으니 속도가 빠른 편이지요.

마을금고나 농협에서 문화강좌를 많이 합니다. 처음으로 마을금고에 댄스스포츠 강좌를 신청했는데 춤 선생이 남자라고 탈락시키더군요. 두 번째 신청 때는 여선생을 데려가 1년간 강사료를 여선생에게 몽땅 주면서 저는 찬조출연을 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본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인정을 받게 되어 지금까지 강습하고 있습니다.

이젠 제가 강좌 개설을 원하면 마을금고에서는 무조건 하라고 할 정도로 저를 신뢰합니다. 아침 9시 30분에 주민들을 위한 생활체육반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2년 동안 무료로 강습했습니다. 지금도 어르신들을 위한 장구강좌를 하고 있으며, 중구 골목문화해설사들의 요청에 의해 주 1회 장구와 댄스스포츠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는데 무대에 오를 기회가 왔습니다. 다음달 7월, 컬러풀 페스티벌에 우리 해설사샘들과 함께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컬러풀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골목문화해설사들과 댄스 연습중이다.                      사진제공. 박미화
컬러풀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골목문화해설사들과 댄스 연습중이다. 사진제공. 박미화

저는 장구와 댄스 강습을 하면서 저 나름의 규칙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첫째, 무조건 잘한다가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한다고 칭찬합니다.

둘째, 지난 시간에 배웠다고 오늘 알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못하면 ‘그것도 못하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언행을 조심하고 상대편의 상황, 즉 눈높이에 맞게 이해하고 조바심내지 않고 기다려줍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놀아준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이 나이에 하겠어요?’라고 말하면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말하며 힘을 실어줍니다.

▶그동안 여러 공연을 다니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고 식은땀이 흐르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동문회에 갔는데 너무 긴장해서 음악이 맞지 않는데도 끝까지 공연한 것과 예술단체에서 울산으로 초청공연 갔는데 순서가 생각나지 않아 가만히 서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큰 실수를 했기에 오늘의 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구학원에 들어간 지 8일 만에 100주년 기념 큰 행사에 초대받아갔습니다. 물론 단독 공연이 아니기에 실수 없이 할 수 있었고, 5분 공연을 위해 왕복 3시간을 달려간 것도 생각납니다. 불러준다는 것만으로도 저로서는 감사했습니다.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창립 제60주년 기념 신춘음악회. 왼쪽이 천성일 해설사                           사진제공. 박미화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창립 제60주년 기념 신춘음악회. 왼쪽이 천성일 해설사 사진제공. 박미화

▶해설사를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문화재단의 예술 활동 공모전에 당첨되어 청라언덕에서 공연하며 근대골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중구 근대로의 야행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대구에 살면서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고 이렇게 대구를 알리려고 애쓰는 분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 연유로 인해 ‘예술인 해설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해설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낮에는 강습하러 다니느라 해설활동은 그리 많이 못하지만 지난 4월부터 밤마실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실 나왔다가 우리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면 힘든 줄 모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검도도장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수양이 되고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것으로 검도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검도 도장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고, 학부모님들로부터 들은 진정어린 감사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서입니다.

그의 활동이력을 말해주는 표창장, 위촉장, 단증들.      우남희 기자
그의 활동이력을 말해주는 표창장, 위촉장, 단증들. 우남희 기자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묻어둔 말하지 못한 사연들이 있다. 허나 그 사연을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어떻게든 한 번은 풀어낸다. 그래야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어질 테고 가볍게 그 일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성일 해설사는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아온 환경,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가슴 아픈 지난날들을 잊기 위해 검도면 검도, 마라톤이면 마라톤, 장구면 장구 등 하는 일마다 미친 듯이 몰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시간동안 그의 살아온 이력을 들으며 천해설사가 걸어온 길을 책으로 엮는다면 우리의 어머니들이 하시던 말씀처럼 책 10권으로 엮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왔기에 누구보다 더 베풀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같다. 앞으로 그의 앞길에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