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대신 가느냐?
네가 대신 가느냐?
  • 이한청 기자
  • 승인 2022.06.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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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잉꼬 떠나 보내기

아파트 화단을 지나가면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하는 곳은 화단 한 귀퉁이다.

지금은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지만, 봄에는 하얀 진달래가 만발했던 곳,

우리 집으로 입양 온 사랑 잉꼬가 14일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묻힌 곳이다. 잉꼬가 우리 집으로 입양을 오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갑자기 아내가 악성 뇌종양이라는 암 선고를 받고 당황하고 불안하고 초조해하자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라는 의미로 입양을 하게 되었다. 잉꼬나 새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상식도 없이 무턱대고 분양을 받아왔다. 집에 온 지 이틀이 지나자 손등에도 올라오고 먹이를 주면 잘 받아먹어 귀염을 받았다. 그러나 어디가 불편한지 암놈은 작은 소리로 삑~삑 소리를 내며 수놈이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녔다. 우리 집에 처음 올 때는 설사를 해서 털이 좀 지저분하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7일 새벽에 잉꼬가 있는 새장에서 푸드덕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고 보니 홰에서 자고 있던 미정(이름을 짓기 전)이가 바닥에 떨어져 푸덕거리고 있었다. 혹시 바닥 철망에 발이 걸렸나 하고 문을 열어보니 바닥 망에 걸리지 않았는데 주먹을 꼭 쥐고 쓰러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꺼내 책상 위에 뉘니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유명을 달리했다.

2월 19일 우리 집에 왔으니 꼭 14일째 되는 날 눈도 채 감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났다. 순간 얼마나 아팠으면 눈도 감지 못하고 죽었나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사람도 아닌 불과 작은 새 한 마리인데 눈도 못 감고 죽었구나. 눈을 아래로 쓰다듬으니 곧 눈이 감겼다.

딸이 일어나면 충격을 받을까 걱정되어 크리넥스로 싸고 하얀 종이 상자에 넣어 아파트 양지바른 화단에 묻어주고 돌아왔다. 잠시 후 둘째 딸이 일어나 “아빠! 미정이가 없어” 나는 담담하게 “죽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응 그렇게 됐어” 또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치를 챈 딸이 더 말을 않고 있더니 혼자 말로 “그래서 그동안 힘이 없어 보였구나”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수놈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먹이주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아침이면 문 열어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암놈은 그저 삑삑 소리를 낼 뿐이었다. 보채지도 아우성도 없이 그저 수놈을 졸졸 따라다니며 삑삑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 소리가 엄마 아파, 엄마 아파 소리 갔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힘이 없어 보여 엄마 젖 줘, 엄마 젖 줘, 하는 것 같다고도 했었다. 생각해보니 입양 시기부터 설사를 하기에 며칠 지나면 멎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잉꼬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사연은 갑작스럽게 암 3기 판정을 받고 충격으로 우울해하는 K 전도사에게 정서적인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떠나게 되므로 오히려 어떤 징조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한편으로 잉꼬가 사람 대신 희생양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판매업자는 14일 이내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한번 바꾸어 준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의심도 든다. 업자에게 연락하니 다시 한 마리를 보내 주겠단다. 비록 14일 동안이었지만 손을 내밀면 손가락 위로 얼른 올라 올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던 앵무였다. 먹이도 잘 받아먹으며 사람을 겁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냈다.

언제부터인가 잉꼬를 묻은 아파트 화단을 지날 때마다 묻은 곳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느 날 무덤가에 하얀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혼자 생각하기를 네가 다시 흰 진달래로 피었구나 생각했다.

업자가 대신 보내 준 잉꼬를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동물 병원을 찾았다. 변 검사를 해 보고 건강하다며 앞으로 영양제와 먹이 검진에 대하여 주의 사항을 듣고 돌아왔다. 처음 안 사실로 잉꼬는 설사를 파면 치명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 사전 지식도 없이 단순한 생각으로 데려와 짧은 삶을 살게 했다는 후회, 그리고 너무 무지해서 안 보내도 되는데 너를 먼저 보냈다는 때늦은 자책감이 들었다.

첫 입양 온 잉꼬 부부
첫 입양 온 잉꼬 부부
미정(이름 짖기 전)이 무덤 옆에 핀 하얀 진달래.
미정(이름 짖기 전)이 무덤 옆에 핀 하얀 진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