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다
참 좋다
  • 김황태 기자
  • 승인 2022.06.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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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로다

어제도 놀았는데 오늘도 놀고 내일도 노니 참 좋다. 장 노니 장로이다. 그대 장로에게 하늘의 축복이 있으리라.

어제 죽은 이들도 있는데 오늘 살아 있으니 신의 축복이려니 참 좋다. 오늘 살아 있어도 내일 살아 있을지는 모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날도 있었지만 땀 흘려 일하며 보람되게 산 날도 있었다. 내게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주며 운명에 이끌려 억지로 살아온 삶이지만 그래도 지금 살아 있으니 참 좋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났다고 하지 않는가.

가을은 낙엽을 타고 스르르 온다. 검은 머리카락은 눈 씻고 보아도 찾기가 힘들다. 눈은 점점 침침해져 원래 세상이 안개 낀 공원이다. 몸은 쭈글쭈글 바람 빠진 풍선 같다. 여기 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기억도 흐릿해진다. 잊힐 것은 기억되고 기억될 것은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다. 금방 본 것도 들은 것도 돌아서면 캄캄한 암흑이다.

음식을 질질 흘리며 먹는다고 아내의 지청구가 심하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이라고 가을이 오니 낙엽처럼 떨어지는 것인데. 늙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허허벌판이 된 이마는 반짝거린다. 이마에서 정수리로 진격은 계속되어 머리숱이 막 모내기한 논 같이 듬성듬성하다. 소갈머리가 없으니 주변머리도 없다. 흰 머리라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떨어지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다. 날개 잃은 백수이다.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인생이 무거워진다. 무념에 무상으로 머릿속을 가볍게 하여야 하겠다. 걱정도 팔자라지만 걱정을 걱정하지도 말자. 무의미한 얽매임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롭고 싶다.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자. 바람에 휘날리는 벚 꽃잎같이 가볍게 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전 주한 미8군사령관이 췌장암 투병 중 5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죽는데 순서 없다지만 조금은 젊은 나이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그 보다 10년을 더 살았다고 생각하니 덤의 삶이 감사하고 참 좋다. 오늘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면서 산다는 것 별 것 아니고 죽음도 아무 것도 아님을 실감한다. 삶과 죽음은 찰나요 한 몸이다. 숨 쉬면 살아 있음이고 숨 들이쉬고 내뱉지 못하면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환승일 뿐 그게 그거다. 죽어라고 아등바등 살 의미가 없지 싶다.

흔히 사람이 죽는 것을 돌아갔다고 한다. 온 곳으로 다시 간다는 이야기이다. 돌아가지 않는 영원한 삶은 없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야 돌아가는 것이다.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순서 없음이다. 천수를 다하고 좋은 날 좋은 시에 알아서 간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무리 염라부에 적힌 대로 가는 것이라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은 너무 빠른 애통한 죽음도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처음 승차한 버스에서 다른 방향의 버스로 갈아타거나 다시 돌아 올 때가 있다. 다시 돌아 올 경우에 일정시간 이내라도 같은 번호이면 요금이 다시 계산되지만 다른 번호이면 환승으로 인정되어 요금을 다시 내지 않아도 된다. 공짜라서 참 좋다. 부부간에도 같은 성격보다는 다른 성격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다르면서도 부부가 탈 없이 사는 것은 전쟁의 수위는 낮추고 인내의 수위를 올리기 때문이다. 남으로 만나서 님이 되는 것은 점 하나를 빼기 때문이다. 점을 빼지 않고 고수하면 남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점은 이해이다. 오해로 남이 되고 이해로 님이 된다. 교통수단은 갈아 탈 수 있지만 우리 인생은 환승을 하는 것은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것뿐이다.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로 다른데 만난 것은 인연이라는 운명이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자. 살기위해 죽어 살기로 했다. 할 말은 많지만 입을 닫는다. 25세에 요절한 천재시인 존 키즈의 묘비명“여기 물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있노라.” 인생의 덧없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은 혼자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노년은 외적으로 축소되고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올인이 부모의 마음이다. 장애인 부모의 소원은 자녀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라고 한다. 자식이 휘두른 흉기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가면서도 “얘야, 새 옷으로 갈아입고 어서 도망가라.” 그 모성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보지 말고 듣지 않아도 될 소리는 듣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살아온 삶이 참 아슬아슬했다. 삶이란 어차피 곡예이다. 극한 상황이었고 언제나 최악이었지만 쥐구멍에도 빛들 날 있듯이 살아 있어 살 수 있었다. 산 사람은 산다.

오늘 지금 살아 있으니 참 좋다. 가뭇없이 사라지면 그만이다. 까무룩 생각이 없다. 머릿속이 텅 빈 백지장 같은 느낌이다. 그냥 어우렁더우렁 살면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살아 있음이 참 좋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가져갈 것이 없어서 가벼워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