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공간
소통과 공간
  • 석종출 기자
  • 승인 2022.05.2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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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면 공간은 무의미하고 빈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축하한다.

잘 한일인지 그렇지 않은 지는 세월이 필요하다.

70여 년 동안 대통령이 거주하고 집무했던 청와대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에게 개방했다. ‘청와대를 국민의 품으로’라는 약속을 지켰다.

 

대통령 관저 출입문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두고 설왕설래 중에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었다. 맞는 이론인지 혹은 누군가 주장한 학설인지는 모르겠으나 개방한 청와대를 둘러본 소감으로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공간이 어떤 의식을 지배한단 말인가?

방문하는 날 많은 인파에 밀려 나무를 보았는지 숲을 보았는지 아른아른 하지만 ‘구중궁궐’이니 ‘외부단절’이니 하는 표현은 걸맞지 않은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상도 합천에 있는 해인사(海印寺)나 경남 양산의 통도사(通道寺)에 온 느낌 정도도 들지 않았다.

관저 근처의 작은 계곡

청와대 본관은 외부만 볼 수 있어서 아쉬웠다. 관저의 한옥 기둥은 칠(도색)이 거의 벗겨져 있었으며 관저 안의 정원은 잘 생긴 소나무 한그루만 빼고는 그저 평범한 시골 텃밭이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웅장하지도 않았으며 문화재급 유물이나 시설은 보지 못했다. 권위와 위엄은 만들어진 것으로 느껴졌다.

 

 

한옥 관저의 일부분

넓은 정원은 잘 다듬어져 있었고 70여 년 동안 잘 보호받고 자란 수목(樹木)과 아주 작은 계곡 하나와 몇 채의 한옥집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관저 안에 있는 청안당

그렇다면 과연 소통(의식)은 공간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청와대와 인접하고 있는 경복궁은 태조 5년(1396년) 축조되었다. 당시 조선의 인구와 현재의 인구 수로 청와대와 경복궁을 대비해 보았다. 임금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했는지는 무지의 소치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언로(言路)를 열어놓은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만을 생각해 봤을 때 답은 분명하다.

소통은 사람과 사람이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다. 임금이 신하와 백성(지금은 조직 안의 관료와 주변 인물, 국민)과의 소통은 공간이 아니라 귀를 열고 있느냐 닫고 있느냐의 문제다. 순전히 의식의 문제다. 아무리 바르고 옳은 정보라고 해도 귀를 닫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애초부터 없는 것이나 같다. 받아들인다는 마음만 있으면 소통은 공간을 초월 하여 가능한 일이다.

작금에 인간이 우주 공간을 드나들고 있고 온 세계가 한나라처럼 연결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간의 타령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이 아니라 열린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