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62) 우리의 토종 농기구 호미
[꽃 피어날 추억] (62) 우리의 토종 농기구 호미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5.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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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는 풀을 매고 북을 주고, 감자 고구마 등 뿌리 농작물을 캐는데 사용한 농기구
호미의 종류. 왼쪽에서 두개는 일반호미 오른쪽호미는 양쪽에 귀가 달려 넓은 면적의 풀을 맬때 사용. 논을 매는 호미는 일반호미보다 귀가 넓고 뒤로 휘어져 논에 대고 당기면 흙이 잘 넘어졌는데 호미를 볼 수가 없다. 유병길 기자 

1950년 ~ 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 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설을 쇠고 나면 맨 먼저 호미를 들고 하는 일이 봄나물을 캐러 다니는 일이었다. 그때는 겨울에 많은 눈이 내렸다. 처녀들은 동생들과 같이 종다래끼와 호미를 들고 논밭으로 나갔다. 양지 바른쪽에는 파란 버금다지가 눈 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그때부터 여인들은 버금다지와 사랑에 빠졌었다. 다듬고 씻어서 재래기를 만들어 먹었고, 한 줌 쥐고 보리밥을 한 술 놓고 된장을 놓아 쌈을 싸서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서서 풀을 맨다는 선 호미(호빠)와 일반 호미로 풀을 매는 모습. 유병길 기자

땅이 풀리면 온 가족이 보리밭에 나가서 둑새풀을 호미로 매기 시작하였다. 거의 모든 논과 밭은 벼와 보리 밀 2모작 농사를 하였기에 봄철 내내 바빴다. 봄에 파종한 고추밭 목화밭 감자밭 참깨 들깨밭 등에 풀이 나면 호미로 매었다. 밭보리를 베면서 보리골에 콩을 뿌리고 훌칭이로 놀 골을 갈면서 콩 씨를 묻었고, 고구마 줄기를 호미로 심었다. 콩이 올라오면 호미로 풀을 매었고, 감자도 호미로 캤었다. 밭을 매는 호미와 논을 매는 호미는 크기 차이가 있었다. 논밭 집안 화단 등에 난 풀은 일 년 내내 모두 호미로 맸다.

지혜로운 조상님들의 유산인 우리의 호미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 미국, 영국, 독일, 인도, 호주 등으로 수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미는 7세기를 전후해 등장한 농기구로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날의 형태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발전하였다. ‘농사직설’에는 “호미 끝에는 백 개의 알곡이 생겨난다.” ‘금양잡록’에는 “주리고 배부름이 호미질에 달렸으니 호미질을 어찌 게을리 할 수 있으랴.” 기록되어 있는 호미의 역사가 있다.

비닐이 공급되면서 이랑에 비닐을 피복 호미질이 줄었으나, 요즘은 놀골에도 어려해 사용할 수있는 두꺼운 비닐을 덮거나 제초제를 살포 호미질이 많이 줄었다.  유병길 기자
비닐이 공급되면서 이랑에 비닐을 피복 호미질이 줄었으나, 요즘은 놀골에도 어려해 사용할 수있는 두꺼운 비닐을 덮거나 제초제를 살포 호미질이 많이 줄었다.  유병길 기자

 

제초제가 공급되면서 호미가 보리밭의 둑새풀을 매는 일과 두세 번 논을 매는 일도 없어졌다. 밭이랑에 검은 비닐을 피복 하면서 호미가 풀을 매는 노동력이 많이 줄었다. 요즘은 놀 골에도 풀이 못 올라오게 여러 해 사용할 수 있는 두꺼운 비닐을 덮거나 제초제를 살포 호미질이 줄었다.

트랙터 뒤에 달린 쟁기를 이용 감자를 캐고 있는 장면이다. 유병길 기자

 

감자 고구마 등 뿌리를 캘 때는 호미를 사용하였다. 대면적의 감자 고구마 등을 재배하는 농가는 호미 대신 트랙터로 쉽게 감자 고구마를 캐어 이랑에 놓으면 일꾼은 박스에 감자 고구마를 담고 있다. 기계화 영농으로 쉽게 농사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