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62) 써레와 로터리
[꽃 피어날 추억] (62) 써레와 로터리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4.28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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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부리며 힘들었던 농사가 쉽고 편리한 기계화 농사로 변모하였다.
소가 당겨 논을 편편하게 써레질하였던 써레. 유병길 기자

 

1950년 ~ 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3월이 지나 언 땅이 녹고, 날씨가 풀리면 보리 밀을 갈지 않은 1모작 논과 못자리 터로 남겨놓은 논을 갈기 시작하였다. 논둑에 조팝나무꽃이 하얗게 피어나면 항아리에 볍씨를 담그고, 물이 고인 모판을 소를 몰아 써레질하였다. 말뚝을 박고 세끼 줄을 치고 7일 정도 담근 볍씨를 뿌릴 물못자리 모판을 만들었다.

소가 써레질하였던 모습. 유병길 기자

 

6월 초 망종은 24절기 중 9번째 절기다. 망종은 ‘밀보리의 회갑’이라는 옛말이 있듯 망종이 지나면 밀보리가 익었다. 먼저 익은 밭보리를 베어 타작하고 나면 논보리 밀을 베고 소 쟁기로 논 갈기에 바빴다. 밀보리 타작을 하고 장맛비가 내려 논에 물이 고이면 “이라” “이라” 소리치며 써레질하는 소리로 들판이 시끄러웠다. 마른 논이 아닌 무논에서 써레를 잡고 소를 부리며 종일 일하면 주인도 지치고, 배까지 흙물 범벅이 된 소도 지쳤다. 소가 없는 집은 소가 있는 집에서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여주면 품앗이로 모내기 등 일하여 주었다. 논의 한쪽은 높고 한쪽이 낮으면, 써레 날에 새끼를 어러번 감거나, 긴 송판을 붙여 높은 곳의 흙을 낮은 곳으로 밀고 가서 편편하게 고르기도 하였다.

경운기가 써레질하였던 모습. 유병길 기자

 

60년대 후반 경운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중반 통일벼 재배로 농가소득이 오르자 너도나도 경운기를 구입하였다. 경운기 보급이 많아지면서 소가 하던 쟁기질, 써레질, 운반작업 등 일을 다 하였다. 농가에서 재산 1호로 소중하게 키우며 일을 시키던 소가 할일이 없다보니 너도 나도 소를 팔게 되었다. 농작업 능률이 높은 경운기가 많아지면서 부주의로 다치고, 운전미숙으로 넘어지고, 차량과 충돌하는 등 사고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트랙터의 로터리 사진. 유병길 기자
트랙터 로터리가 써레질하는 모습. 유병길 기자

 

80년대 초반 기계이앙이 시작되었고, 중반 트랙터가 확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었다. 경운 써레 등 농작업이 경운기에서 작업능률이 높은 트랙터로 넘어가게 되면서 소형 중형 트랙터가 많이 보급되었다. 1990년대 후반 벼농사는 거의 100% 기계화되었다. 경운기, 소형 중형 트랙터는 논을 갈고난 후에 로터리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대형 트랙터가 보급되면서 3~4년에 한 번 정도 쟁기로 논을 갈고 로터리를 하고, 그 중간에는 논을 갈지 않고 로터리 작업만 하고 모내기를 하는 실증이다.

70년대 초반 소를 팔고 정철에서 처음 경운기를 구입 하였다는 길윤균(79) 씨. 처음에는 운전이 서툴러 힘들었지만, 한 해 농사를 짓고 운전이 익숙하여지면서 기계의 능률과 편리함을 알게 되었단다. 경운기가 없는 집의 논밭을 많이 갈아 주었으며, 80년대 이앙기를 구입하였고, 90년대 중형 트랙터를 구입하면서 힘이 적게 들고 작업능률이 높은 기계화 영농을 하고있단다.  "소를 몰아 십여일 논을 갈았고,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면 새벽부터 밤까지 써레질하였고, 물못자리에서 키운 모를 새벽부터 쪄서 캄캄할 때까지 모내기를하였고, 낫으로 벼를 베어 발로 밟아 타작하였던, 50여 년 전 힘들었던 농사일을 생각하면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회상을 하며 먼 하늘은 바라보았다. 농사를 당장 그만 두고싶지만, 논밭을 놀릴 수가 없으니 힘이 닿는데까지 농사를 지을 생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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