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이
겨울 아이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2.04.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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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변공원 가로수가 전선으로
칭칭 감겨 있다

 

수변공원이다. 멀리 호수에 잠긴 아파트 불빛이 아름답다. 즐비하게 늘어선 겨울나무가 전선을 칭칭 감고 있다.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에도 무성한 잎새로 풍성했던 나무들, 단풍옷 벗고서도 아직 할 일이 남았던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야경 불빛을 즐기기 위해 나무에 꼬마전구를 달았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전구들이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휴식시간이 필요하지 않던가. 숨쉬는 나무에 설치된 불빛조명은 나무에 스트레스를 주고, 산소 저장량을 떨어뜨린다. 나무의 건강을 위해서는 야간 조명 노출시간을 6시간 이내로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동네에는 자녀교육에 유별난 혜미엄마가 있다. 그녀는 아이가 학과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학원 몇 군데를 보낸다. 초등학생인 혜미는 커다란 눈이 참 이쁜 아이다. 어느 날, 우연히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친 혜미엄마가 딸이 피아노와 미술에 소질이 보여 학원에 보낸다고 했다. 

어느 추운 날 밤이다. 혜미가 학원에 가기 싫다고 복도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다. 아이의 충혈된 눈동자와 부르튼 입술이 마음을 짠하게 했다. 엄마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지나친 과외가 내 자식 스펙쌓기에 급급한 그녀의 욕심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아이만은 낮에도 밤에도 반짝반짝 빛나야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어른들의 이기심이 이이들이 스스로 꿈을 가지기도 전에 그 희망마저 빼앗아 버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변가에 바람이 매섭다. 겨울나무가 파르르 떤다. 나무를 둘러싼 불빛 조명은 화려하건만 전선으로 휘감긴 나무는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바람 불던 날, 복도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던 겨울 아이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가 나즈막히 속삭이는 듯 하다. '그 누가 나에게 불빛 조명을 달아줄까. 물어나 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