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단상(斷想)
봄날 단상(斷想)
  • 김종기 기자
  • 승인 2022.04.15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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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이 지난 탓인가 화창한 봄 날씨가 이어진다. 낮에는 덥기까지 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혹독한 겨울의 추위도 결국은 끝이 났다. 매년 그랬듯 아파트 앞 벚꽃이 절정이다.

매년 4월 봄이 무르익는 시기가 되면 젊어서 근무하던 직장의 2층 휴게실 생각이 난다. 휴게실에서 바라보는 앞산의 복사꽃이 유난히 아름답게 피었다. 그 꽃을 보면서 나는 올해도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괴로워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봄이 싫은 것은 아마 그때의 암울한 기억 때문인가 보다.

허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할까, 내 이름 앞에 딱 한마디만 붙인다면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돌아가신 부친은 항상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두 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부자’란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고, 마음이 착하고 고운 것도 아니니 ‘착한 사람’이란 소리도 듣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품위와 교양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지혜와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니 ‘품위’나 ‘지혜로운’ 사람이란 소리도 못 들을 것 같다. 그러면 내 이름자 앞에는 뭐라고 한마디 쓸 수 있을까?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지방선거가 시작됐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분들이 출마한다는 문자가 여럿이 온다. 참 정치하시는 분들은 대단하다. 현직에 있을 때 오지랖 넓게 여러 곳을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잠깐 만나 명함 교환한 것이 전부인데 고이 간직(?) 하셨다가 잊지 않고 출마 인사 보내주신다. 본인들 출마 지역구도 아닌데.

내게도 아는 지인들과 몇몇 분들이 이번 지선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했다. 자신의 실리에 따라 사람이 변하는 것을 자주 경험하다 보니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초월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냥 웬만한 것은 적당하게 흡수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 않은가 보다. 어차피 잊혀진 사람이고 잊혀질 사람이 다시 알려질 필요가 무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