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60) 모란꽃 사랑
[꽃 피어날 추억] (60) 모란꽃 사랑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4.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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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은 ‘부귀’, ‘영화’, ‘행복한 결혼’이라는 꽃말이 있다.
활짝핀 모란꽃. 유병길 기자

 

195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 작천 할아버지 뒷마당에 어른 키만큼 큰 여러 포기의 모란꽃 나무가 봄이면 예쁜 꽃을 피웠다. 많은 동민들이 봄이면 모란꽃을 보며 즐거워하였다. 일 년에 한 번씩 애태우던 거대한 꽃다발이 발길을 가로막으면, 뒤 굽을 높이 들고 담 안을 훔쳐보다가 성이 차지 않으면 살며시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두 손으로 꽃송이를 살짝 잡아도 보고, 비단 같이 보들보들한 꽃잎을 어루만져도 보고, 두 팔을 벌려 안으려다 꽃 속에 안겨서 행복에 취하여 본 순간순간들. 몇 년 후 한약재로 뿌리를 캐 팔면서 포기나누기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귀한 약재로 취급하셔서 한 줄기 얻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했었다.

전 헌법기초위원, 초대 법제처장, 고려대학교 총장 현민(玄民) 유진오(鎭午 35세손)님이 모란꽃이 피었을 때 작천 할아버지 댁에 오셨다. 이때 새마 60여 호에는 이씨 김씨 유씨 정씨 박씨 등 여러 성씨가 어울려 살았다. 상주 군에는 기계 유씨가 오십여 호의 살고 있었다. 종친회에 관심이 많았던 유만식(萬植 37세손)님이 달성군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대종회와 인연으로 벽촌 상주까지 오셨다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모란꽃을 좋아하였지만 현민 할아버지를 만난 후부터 모란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모란은 ‘부귀’, ‘영화’, ‘행복한 결혼’이라는 꽃말이 있어 옛날부터 병풍, 도자기에 그렸고, 베게 잎, 횃댓보에 수를 많이 놓아 귀하게 사용하였고 간직하였다. 한 포기 키우기를 원하였지만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88년 여름 장맛비가 많이 온 후 유가면 가태리 영농후계자 곽동준 회장 집에서 장맛비에 무너진 담장에 깔려 가지가 부러진 모란꽃 한 포기를 얻어 화단에 심었다. 사랑을 쏟아 준 덕분인가? 이듬해 봄 화단에서 그렇게 좋아했던 두 송이의 모란꽃을 만날 수 있었다. 옮겨 심은 후유증으로 꽃송이가 크지는 않았으나, 삼십여 년 만에 어릴 때의 소원을 풀었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활짝 핀 모란꽃을 보는 순간 어릴 때 만나 뵈었던 현민 할아버지의 웃으시던 모습과 아버지와 사별하였던 아픔의 그 해가 생각났다.

모란꽃 나무는 2월에 붉은 잎눈이 기지개를 켜면 겨우내 꿈을 키우도록 눈을 보호하여 주던 마른 잎자루가 떨어졌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보호하고 성장한 자식이 노부모를 섬기는 우리 인생사와 같은 것 같았다.

 

붉은 새순이 자라는 모란꽃, 유병길 기자

 

붉은 새순이 자라고 꽃 봉오리가 달리면 연두색으로 변한다. 유병길 기자

 

다른 나무들은 봄에 초록색 새순이 돋아나지만, 모란꽃 나무는 겨우내 자랑하고픈 마음을 붉은 새순에 담아서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음에는 붉은 아가 주먹이 손가락을 펴는 것 같아 아름다웠다. 봄볕을 머금고 손바닥을 활짝 펴면서 푸른 옷 갈아입으면 여인의 자태를 풍긴다. 작은 꽃눈이 밤알 크기의 파란 꽃봉오리로 자라면 붉은 혓바닥 조금씩 내밀다가 활짝 꽃잎을 펴면, 붉은 용포를 걸치고 황금 왕관을 쓴 것 같다. 아가들의 머리만큼 큰 모란꽃 한 송이 한 송이가 파란 잎을 젖히고 수줍은 듯 고개 내밀고 활짝 웃으면 보는 이들의 마음은 설레었고, 붉은 꽃송이를 안고 쓰다듬으며 좋아하였다. 벌 나비와 어울려 사랑의 춤을 추고 나면 왕관의 황금 가루가 붉은 꽃잎에 사랑의 수를 놓는다. 사오일 지나면 꽃잎이 시들어가면서 떨어지는 아쉬움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그래서 꽃을 여인과 많이 비교하는 것 같다.

오늘도 화단을 붉게 물들이는 모란꽃을 바라보며 옛 추억을 되돌려본다. 매년 볼 수 있는 모란꽃이 있는가 하면 한 번 가신님들은 다시 만날 수가 없어 아쉬움이 쌓여만 간다.

모란꽃과 봉오리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모란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2~3년마다 분주를 하여 가식을 하였다가 희망하는 사람들한테 시집을 보내고 있다. 리어카, 지하철 타고 멀리 떠나간 모란꽃 나무도 있다. 그곳 토양에 잘 적응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랑받기를 희망한다. 모란꽃을 간직하고 싶어 폰으로 사진을 찍고, 보고 싶을 때는 열어 보는 것이 순간의 즐거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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