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나는, 휴먼'
[장서 산책]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나는, 휴먼'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04.10 14: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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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Judith Heumann)은 194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주디는 생후 18개월에 겪은 소아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에 등록하러 갔으나, 원장은 주디가 화재 위험 요인(fire hazard)이라면서 입학을 거부한다. 초등학교에 가지 못한 주디는 집에서 캠프필드 선생님으로부터 가정교육을 받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애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인 ‘건강보호 21(Health Conservation 21)’의 대상자가 되어 공립학교에 다니게 된다.

1964년 십스헤드 베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롱아일랜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활발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교원 자격증 취득을 준비한다. 1970년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한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로이 루카스 등 변호사들의 도움과 미디어의 대대적인 보도에 힘입어 법정 밖에서 합의를 이루고 교사 면허를 취득한다. 이 해에 주디는 장애인들이 주체가 된 시민권 단체 ‘행동하는 장애인’을 설립한다.

1972년 ‘행동하는 장애인’ 동료들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활법 개정안 서명 거부에 항의하여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의 차선을 점거한다. 1974년 워싱턴의 윌리엄스 상원 의원실 입법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재활법 504조, 이후 장애인교육법으로 발전할 장애아동교육법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1975년에는 미국장애인시민연합을 공동 설립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해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1977년 자립생활센터 부소장으로서 키티 콘을 리더로 하는 ‘504조 회생 위원회’ 동료들과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하지 않는 카터 행정부의 조지프 칼리파노(Joseph Califano)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 항의하며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점거한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24일간 농성을 지속하며 청문회, 언론 보도, 워싱턴에 대표단 파견, 백악관 방문, 촛불 시위 등 다방면의 압력을 가한 끝에 서명을 이끌어냈다. 이 책 제 2부(129~215쪽)는 이 투쟁의 경과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980년 에드 로버츠, 조앤 리언과 함께 세계장애인 기구를 설립하고, 미국장애인법 제정 운동을 전개했다.

주디는 1992년 5월에 8년 연하의 호르헤 피네다와 버클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1993~2001년에는 클린턴 행정부의 특수교육 및 재활 서비스국 차관보를 지내고, 2002~2006년 세계은행 최초의 장애와 개발 자문위원, 2010~2017년 오바마 행정부의 국제 장애인 인권에 관한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며 세계 장애 운동의 리더로 활약했다.

장애인을 가장 적대시한 대통령은 2017년에 취임한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 기간에 장애를 이유로 한 기자를 조롱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훨씬 더 자주 조롱을 일삼았다. 트럼프는 장애 이슈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변화를 즉각 단행했다. 첫날부터 그는 오바마케어를 건드렸다. 그는 교육부장관에 장애인교육법을 잘 알지 못하는 벳시 디보스를 임명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6개월 후에 장애인들이 상원의 다수당 대표 미치 맥코넬의 집무실 밖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는 ‘접근 가능한 대중교통을 요구하는 미국 장애인들’이 조직한 ‘죽은 듯이 드러눕는 시위(die-in)’였다. 장애인들의 이런 시위로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292~294쪽)

2020년 이 모든 투쟁을 함께한 주디스 휴먼과 장애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Clip Camp)>가 공개되었다.

주디스 휴먼의 생애는 우리에게 장애 인권의 역사를 개인의 생애사와 연결해 살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의 이야기는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시작하지만, 사적인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구조와 연결되고, 당대의 인식, 정책과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된다. 주디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던 것, 교사 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경험은 개인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고 사회에서 분리하고자 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주디는 그저 시대의 희생자로 살 수도 있었지만, 장애를 가진 다른 동료들과 그 불합리한 상황을 사회적 문제로 해석하고 소송을 제기하고 조직을 만들어 투쟁하는 삶을 ‘선택’했다. 우리는 주디의 인생 이야기를 읽으며 사회결정론에 빠지지 않고, 구조의 제약 속에서 결국 변화를 만들어내는 행위 주체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이 사회 구조라는 틀 안에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어떤 선택을 하며, 그 관계와 선택들이 어떤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관찰하면서 공적인 역사에서 발화되지 않았던 진짜 주인공들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318~319쪽)

주디스 휴먼이 투쟁했던 재활법 504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내에서 제7조 제6항의 장애에 대한 정의에 부합하는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제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

이 책에서 주디스 휴먼의 생각에 공감한 부분을 인용한다. ‘누군가 당신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무시는 사람들을 침묵하게 한다. 의도적으로 해결이나 타협을 피하는 방식이다. 계속해서 무시당하다 보면 스스로를 무시당해 마땅하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에 자신이 이 세상에 무가치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최악의 두려움을 키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소란을 피울 것인가, 아니면 그냥 침묵을 받아들일 것인가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내몰린다. 당신을 무시하는 그 사람 앞에 서서 그를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은 예의 바른 행동의 규범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더 불쾌하고, 어딘가 위축되고, 품위가 손상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209~210쪽)

주디스 휴먼은 장애인 인권 운동의 길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힘을 모아 싸우고 버티고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송, 점거, 시위, 조직과 연대, 그리고 법률과 제도의 마련까지 주디의 인생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장애 운동가들이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과 장애 운동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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