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벚꽃 화관, 김천 연화지
왕벚꽃 화관, 김천 연화지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2.04.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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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팔경 중 벚꽃과 개나리 조화
연못 가운데 봉황대 경북문화재 제15호
벚꽃과 개나리가 연못 가운데 봉황대와 어우러진다. 장희자 기자

금릉 아름다운 땅, 맑은 물결이 일렁이네
물속에 비단비늘이 가득하고
바람에 수양버들이 나부낀다
푸른 것은 삼만개의 연잎이요 
붉은 것은 열 길의 연꽃이네 
좋은 경치를 감상함은 내 분수가 아니라
떠나는 수레타고 이곳을 지난다.

(아름다운 연화지,  유호인)

그대는 연화지에서 괜찮아, 괜찮아. 응원했다. 바람으로 햇살로.

연화지는 김천시 교동 820-1번지 일대에 있다. 조선시대 초기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된 저수지이다. 연화지(鳶嘩池)라는 이름은 1707년 김천에 부임한 윤택(尹澤)이라는 군수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군수는 솔개()가 못에서 날아오르다가 봉황(鳳凰)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꿈을 꾸고 난후 좋은 징조라 생각하고 이름을연화지(鳶嘩池)’라 지었다.

연못 가운데 있는 섬과 소나무가 수려하다, 장희자 기자

봉황대(鳳凰臺)는 연화지 가운데 있는 정자이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조선조 문신 임계(林溪) 유호인 등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장소이다. 처음에는 읍취헌(揖翠軒)이라고 불렀다. 당시 군수 윤택이 이름을 봉황루로 바꾸었다.

영조 47(1771)에 김항주(金恒柱) 군수가 연화지 북쪽 구화산에 있던 정자를 산 밑으로 옮기면서 봉황대로 바꾸었다. 정조 16(1792)에 군수 이성순이 개수하였다. 헌종 4(1838)에는 군수 이능연이 연화지 못 가운데로 옮겼다.

고종 33(1896)에  중수하였다. 1978년 김천시에서 시비 7백만 원으로 개수했다. 건물 규모는 앞면·옆면 32층 누각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19858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개나리와 벚꽃이 수면에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이다, 장희자 기자

1993년에 김천시가 29372(8,885)에 석축 조경을 하였다. 화장실, 평의자 등의 시설을 마련하여 시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후 연화지는 사계절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김천시는 202010월 관광객 유치 및 홍보를 위해 시민과 관광객의 추천을 받아 여덟 곳의 관광 명소를 선정했다. 연화지 벚꽃, 오봉저수지 둘레길, 난함산 일출·일몰, 사명대사 공원 평화의 탑 야경, 직지사 단풍나무길, 부항댐 출렁다리, 청암사 인현왕후길, 수도산 자작나무숲이다.

왕벚꽃이 등불을 켰다. 장희자 기자

 연화지 벚꽃이 김천팔경의 으뜸으로 손꼽힌다. 연화지는 사시사철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개나리꽃과 왕벚꽃이 어우러진다.

화관(花冠)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벚꽃이 질 무렵 흩날리는 꽃잎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편지이다.

연화지에서는 분수도 한 몫 한다. 장희자 기자

여름앤 연화지 수면을 뒤덮는 연잎과 그 사이로 수줍은 듯 내미는 연꽃이 방문객을 반긴다. 여름밤 연화지는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가을은 울긋불긋 절경이다. 겨울철 연화지는 고즈넉해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사이로 보이는 봉황대가 운치를 더해준다.

벚꽃을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 장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