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가운데 봉황대 경북문화재 제15호

금릉 아름다운 땅, 맑은 물결이 일렁이네
물속에 비단비늘이 가득하고
바람에 수양버들이 나부낀다
푸른 것은 삼만개의 연잎이요
붉은 것은 열 길의 연꽃이네
좋은 경치를 감상함은 내 분수가 아니라
떠나는 수레타고 이곳을 지난다.
(아름다운 연화지, 유호인)
그대는 연화지에서 괜찮아, 괜찮아. 응원했다. 바람으로 햇살로.
연화지는 김천시 교동 820-1번지 일대에 있다. 조선시대 초기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된 저수지이다. 연화지(鳶嘩池)라는 이름은 1707년 김천에 부임한 윤택(尹澤)이라는 군수의 꿈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군수는 솔개(鳶)가 못에서 날아오르다가 봉황(鳳凰)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 꿈을 꾸고 난후 좋은 징조라 생각하고 이름을 ‘연화지(鳶嘩池)’라 지었다.

봉황대(鳳凰臺)는 연화지 가운데 있는 정자이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조선조 문신 임계(林溪) 유호인 등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장소이다. 처음에는 읍취헌(揖翠軒)이라고 불렀다. 당시 군수 윤택이 이름을 봉황루로 바꾸었다.
영조 47년(1771)에 김항주(金恒柱) 군수가 연화지 북쪽 구화산에 있던 정자를 산 밑으로 옮기면서 봉황대로 바꾸었다. 정조 16년(1792)에 군수 이성순이 개수하였다. 헌종 4년(1838)에는 군수 이능연이 연화지 못 가운데로 옮겼다.
고종 33년(1896)에 중수하였다. 1978년 김천시에서 시비 7백만 원으로 개수했다. 건물 규모는 앞면·옆면 3칸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1993년에 김천시가 2만9천372㎡(8,885평)에 석축 조경을 하였다. 화장실, 평의자 등의 시설을 마련하여 시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후 연화지는 사계절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김천시는 2020년 10월 관광객 유치 및 홍보를 위해 시민과 관광객의 추천을 받아 여덟 곳의 관광 명소를 선정했다. 연화지 벚꽃, 오봉저수지 둘레길, 난함산 일출·일몰, 사명대사 공원 평화의 탑 야경, 직지사 단풍나무길, 부항댐 출렁다리, 청암사 인현왕후길, 수도산 자작나무숲이다.

연화지 벚꽃이 김천팔경의 으뜸으로 손꼽힌다. 연화지는 사시사철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개나리꽃과 왕벚꽃이 어우러진다.
화관(花冠)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벚꽃이 질 무렵 흩날리는 꽃잎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편지이다.

여름앤 연화지 수면을 뒤덮는 연잎과 그 사이로 수줍은 듯 내미는 연꽃이 방문객을 반긴다. 여름밤 연화지는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가을은 울긋불긋 절경이다. 겨울철 연화지는 고즈넉해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사이로 보이는 봉황대가 운치를 더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