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야 할 험산 준령
넘어야 할 험산 준령
  • 이한청 기자
  • 승인 2022.04.04 13: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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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산

 암 치료  투병기 3

대다수의 사람들이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그 당혹함에 좌절하기 쉽다. 어쩌다 나에게 그런 불행이 닥쳤나? 그럼 어쩌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내 생명이 시한부 인생이 되었나? 수많은 의문과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그런데 치료는 가능한가? 치료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고 하던데 그 비용을 어찌 충당하나? 주위에서 치료받는 분들이 후유증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더욱 큰 공포심에 붙잡힌다.

우리도 남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가장 가까이 있는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지만 수시로 무너지려는 자신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엄마의 발병 소식을 듣고 미국에 있는 큰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엉엉 울며 아빠 어떻게 해?' 하는데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태연한 척했다. '뭘 어떻게 해? 지금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세계에서도 수준급인데 치료하면 되지' 하면서도 그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탑승권을 구하는 대로 귀국하겠다며 '아빠 약해지지 마!' 하며 나에게 당부를 한다. 그리고 치료비가 얼마가 들던 자신들이 부담할 테니 돈 걱정하지 말고 모든 치료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중국에 있는 둘째 딸은 모든 국제선이 중단되어서 빨라야 한 달 후에나 귀국할 것 같다며 역시 약해지지 말고 치료비를 모두 자기가 부담할테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치료하고, 한국에서 안되면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라도 꼭 엄마 살려야 한다고 한다. 저희도 여유가 없으면서 우리 가정형편을 아니 치료비 때문에 주저하지 말라고 미리 다짐하는 마음을 알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이제 그 험난한 치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던가? 발병하자 어딘가 기대야 할 큰 힘이 필요했다. 긴 세월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섬기는 교회와 알고 있던 주의 종들과 수많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발병 사실을 알리고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치료과정은 참으로 멀고 험한 길의 연속이었다. 먼저 뇌의 중앙에 악성 종양이 자라서 수술할 수 없다는 부담이 마음에 절망감이 찾아왔다. 주위에서 암이라고 수군거림, 안쓰러워하는 눈치가 모두 부담이었다. 평소의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이웃이 닥친 불행에 위로한다고 전화로 흐느껴 울면 도움은 커녕 상심한 마음만 줄뿐이다. 이웃에 불행한 소식을 전해 줄 필요도 없는데 누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소천했다 또는 누가 악성 질환으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는 소식을 중환자에게 꼭 전해야 하는지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벨소리는 위로는 커녕, 절망을 주는 나쁜 소식(?) 때문에 핸드폰을 꺼버리게 되었다.

치료의 시작으로 감마나이프로 종양을 줄이는 수술이 4번에 걸쳐 시행되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설명하는 의료진에 이야기를 듣는 순간 또 걱정이 생긴다.

감마나이프를 하기 위하여 얼굴에 고정하는 방식이 마스크와 고정틀이 있는데 고정틀을 하기 위하여 얼굴에 마취하고 네 곳에 작은 구멍을 뚫고 틀을 고정한다고 한다. 나중에도 그 흉터가 남는다고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하나님, 구멍 뚫지 않고 마스크로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할 뿐이었다. 기도를 들어주셨던지 얼굴에 구멍을 뚫지 않고 4번의 수술을 마쳤다.

항암치료는 다섯 번에 걸쳐서 진행되는데 리툭시맙을 4시간에 걸쳐 정맥주사를 맞고 2일째 엠티엑스를 6시간에 걸쳐 맞고 또 빈크리스틴을 5분간 맞아야한다. 너무 위험해서 의사 입회하에 주사하며 조금만 흘러나와도 피부를 이식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했다. 또한 항암제 약을 복용해야 하고, 정맥주사 후 수액을 12개나 맞으며 해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과정으로 5번을 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가 2주 후에 다시 입원 치료해야 하는데 일주일까지는 늦어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입원하여 치료받으라고 당부한다.

입원실이 없다는데 무슨 수로 입원을 한단 말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란 의미는 아무리 비싼 입실료를 부담하더라도 들어오란 뜻인가? 2차 치료를 위한 입원통보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에 입원 신청이 밀려서 10일 정도 더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는 참으로 난감했다. 다시 전화해서 값의 고하간에 병실이 나면 연락을 달라고 하자 병실이 하나가 비었단다. 하루에 120만 원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루에 병실료가 적게는 70만 원부터 120만 원이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문제도 넘어야 할 아주 높은 산이었다.

그뿐인가 항암치료제 주사 후에 수액을 1리터짜리 12개를 3일간에 계속 맞고 소변으로 독소를 배출해야 했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반 후에 화장실 가야 하니 참으로 고통이었다. 또한 독한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빠지고 입안에 구내염으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심과 구토가 따르니 옆에서 보기가 안타깝기만 했다. 이런 과정을 5번이니 계속하려니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지칠 수밖에 없었다. 입원 예정일 전날에 코로나19 PCR 검사도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었다. 검사하려는 인원이 보통 400여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니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3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또 PCR 검사를 마치고 차를 타려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현기증으로 넘어졌는데 움직이지를 못했다. 가벼운 타박상이려니 생각하고 부축하여 집에 왔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에 4차 치료를 위하여 입원해야 하는데 움직이지를 못하니 난감했다. 잠시 후 아무래도 뼈에 문제가 있는 듯하니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다. 구급대원이 도착하여 4명이 들고 응급실로 갔지만 코로나19 중증 환자들로 병상이 만원이라 진료할 수 없다고 했다. 몇 병원을 들러서 관절 전문 병원에서 진료하니 MRI 상에 12번 척추가 뭉개졌다고 했다. 꼬리뼈로 관을 넣어서 부서진 뼈를 시멘트 한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미루고 관절병원에 3일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잠깐의 부주의로 큰 고통과 금전적 손실을 당했다.

왜 험한 시험이 계속되나? 치료비, 항암 부작용, 정서적으로 무너짐, 식사하지 못 함 등과 치료과정의 어려움과 수반되는 통증 모두가 험산 준령이었다. 다음부터는 체력과 돈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험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캄캄한 터널도 곧 벗어 날것을 믿고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갈 길을 막는 험한 산,  그러나 꼭 넘어야 할 산
갈 길을 막는 험한 산, 그러나 꼭 넘어야 할 산
좁고 험하지만 길이 있으면 갈 수 있다.
좁고 험하지만 길이 있으면 갈 수 있다.